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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02. 2017

땅내음도 자연인 곳, 인도

여행의 출발점에 서 다시 델리를 떠올린다.

땅내음이 났다. 비행기를 타고 7시간.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 국제공항을 벗어나자 흙냄새가 풍겨왔다. 싫지 않았다. 시간은 밤 10시. 가로등 불빛이 뿌연 황토 막을 뿌렸다. 푸근했다. 낡은 온풍기 앞에 선 것도 같았다. 땅의 기운이 만물의 리듬을 지배하는 곳. 도심의 네온사인, 우퍼 스피커의 소음이 사라진 여행지에서 새로운 리듬의 공간은 여행자의 로망을 채워준다. 여행지 인도가 걸어온 길이라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그리고 빤하게도 인도에서는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 고집도, 불평도, 화도, 기쁨도, 그리고 슬픔도 건조한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세상에 천국이 있다면, 인도는 인간이 바라 마지않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피난처 정도가 아닐까. 세상의 노여움이, 그리고 모든 성취가 평범한 일상 속에 침묵한다. 슬퍼도 기뻐도 희로애락이 있기에 사람은 살아간다. 하지만 인도에서 희로애락은 그저 한줌의 모래와 같다. 홀리스틱(Holistic). 인도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 한글로 풀자면 전체주의. 아마도 이보다 넓은 품의 단어는 없다. 인도에서 여행은 그저 그 품에 안기는 일이다.


인도의 수도 델리(Delhi)는 일종의 메트로폴리탄이다. 17세기 이슬람 왕조 시절 수도로 만들어진 올드 델리(Old Delhi)를 비롯해 영국 통치 시절 수도로 건설된 뉴 델리(New Delhi), 야무나(Yamuna) 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갈린 기타 7개 지역을 모두 델리라 부른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공식 수도로 지정된 뉴 델리가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고 있지만, 수백 년의 역사와 새로움이 혼재하는 이곳에서 올드와 뉴는 그저 시간의 선후 관계를 지칭할 뿐이다. 델리는 여전히 인도의 광활한 역사를 품고 있고, 동시에 무한히 팽창하고 있다. 무굴의 황제이자 건축 광이었던 샤 자한(Shāh Jahān)이 아그라에서 델리로 수도를 옮기며 지었다는 레드 포트(Red Fort),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 역사가 무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저자 거리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 등 수 백년의 시간이 도시 길목 곳곳에 있고, 뉴 델리를 중심으로는 고층 빌딩과 쇼핑몰이 나란히 늘어서있다. 소와 동고동락하며 신을 모시는 사람들 옆으로 고급 세단의 승용차가 지나가는 모습도 왕왕 눈에 띤다. 브라질, 러시아, 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 Brazil, Russia, India, China)라 불리며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떠오른 인도. 이곳에서 이제 ‘신의 나라’라는 말은 반쪽짜리 형용이다.


쿠뚭 미나르(Qutub Minar)에 도착했다. 1993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쿠뚭 미나르는 붉은 벽돌 탑이었다. 조금씩 둘레를 줄여가며 올라선 모양새가 정갈하게 아름다웠다. 72.5m의 5층 탑 구조로 각 층마다 외부 발코니로 통하는 길이 있고 그 길을 모두 379개의 나선형 계단이 잇는다. 1193년 최초의 무슬림 왕조인 쿠뚭 딘 아이박(Qutub din Aibak)이 건축을 시작한 이 탑은 150여 년 후인 1386년 완공되었다. 빨간 벽돌 하나하나에는 코란의 글귀가 새겨져있다. 이처럼 과거의 건축은 종종 시간과 신앙의 퇴적물이다. 소처럼 팔다리가 긴 개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탑 앞을 지나갔다. 억겁의 시간이 느릿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델리의 유적지는 무거운 땅덩이와 같다. 인간의 찬란한 역사를 전시하는 대신 땅과 하늘과 인간이 꾸려 낸 시간들을 축적한다. 그 차이가 인도를, 델리를 ‘신의 나라’의 영역으로 이끈다. 꾸뚭 미나르를 나와 델리 남쪽에 위치한 후마윤의 묘(Humayun‘s Tomb) 역시 무굴 역사의 거대한 조각이었다. 1565년 무굴 제국의 왕비 하제 베굼(Haji Begum)이 남편인 황제 후마윤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무덤은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인도 남부 아그라(Agra)의 타지마할(Taj Mahal)과 함께 인도의 대표적인 이슬람 건축으로 꼽히며, 199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넓은 정원, 정사각형으로 재단된 연못과 못을 따라 정돈된 길, 공사 중이라 다소 멋을 잃었지만 기품을 간직하고 있던 돔 모양의 묘가 600년 이전 역사의 한 챕터를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었다. 시간은 흘렀어도 이곳은 인도다.


인도를 향한 짝사랑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로 향했다. 올드 델리에서 뉴 델리로 가는 길은 매우 혼잡했다. 특히 올드 델리 기차역을 지날 때에는 차가 움직이는 시간보다 서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대통령 궁(Presidential Palace)을 중심으로 도로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는 뉴 델리와 달리 올드 델리의 이곳저곳은 길 상태가 험악했다. 인도에는 사람들의 체증이 심했고, 차도에는 멈춰있는 차와 행상인이 거친 실타래처럼 얽혀있었다. 복잡한 길이 시원하게 뚫린 것은 인디아 게이트에 거의 닿았을 때다. 1931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을 위령하기 위해 세운 이 탑은 높이 42m 아치에 9만 명 장병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뉴 델리 중앙 차로 중심에 우뚝 선 모양이 프랑스의 개선문을 닮았다. 1972년에는 인도 독립 25주년 행사가 치러졌으며, 그런 이유로 인디아 게이트는 인도 시민들에게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지금은 시민들의 소풍 장소로 인기가 높다. 델리의 유적들은 시간의 두께를 증명하듯 위용이 대단했다. 미적으로 아름다웠고, 역사적으로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든 돌아서는 발걸음이 경쾌하진 못했다. 관광지 사이를 어지럽게 휩쓸고 다니는 행상인들,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 한국인을 찾아 삼성, LG 공장에 취업할 수 없냐고 묻는 젊은이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인디아 게이트 앞에서 만난 두 청년은 심지어 연락처까지 적어줬다. 두 손이 참 민망했다.


델리는 변화한다. 아무리 많은 여행자들이 ‘신의 나라’라며 동경해도 이곳의 사람들도 현재를 산다. 뉴 델리 지역의 거리는 여느 경제 도시 못지않게 복잡하며, 델리 북쪽의 하리아자(Haryana) 지역은 서울의 강남을 연상케 하는 고급 주택가다. 정치, 경제, 문화 어느 하나 100% 신성한 것은 없다. 일정을 함께 했던 한 인도 전문 여행사의 대표는 인도의 공무원 비리가 심각하다고 했다. 실제로 호텔에서 받아본 신문에는 지역 공무원의 비리 연루 뉴스가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빈부 격차는 날로 더해가고, 경제 발전으로 인한 악질 범죄도 늘어가고 있다. 사람들도 순수하지만은 않다. 델리의 시장 빠르 간지(Pahar Ganj)을 방문했을 때 행인들은 카메라에 돈을 요구했다. 함께 간 사진가는 미안함에 몰래 찍지 못했고, 죄책감에 돈을 건넬 수는 더 없었다. 이곳은 인도임과 동시에 도시며, 여행지임과 동시에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막연한 동경과 낭만을 꿈꿀 때 이곳 사람들은 현실의 잇속으로 응대할지 모른다. 델리의 풍경은 뒤틀린 그림으로 보일지 모른다. 인도는 ‘신을 너무 괴롭혀 신의 나라’라는 말도 있다. 신의 세계는 끝났다. 오로지 우리만 그 끈을 놓지 않았다. 단지 일방적인 짝사랑의 함수가 인도를, 그리고 델리를 ‘신의 나라’로 포장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여행은 꽤 깊은 오해의 산물이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7시간. 인천공항에 닿았다. 리무진을 기다리며 한 광고를 보았다. 공항버스에 새겨진 그 광고는 이집트 기자지구 옆의 골프장을 선전하고 있었다.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 현장에 21세기 인류 최대의 오락물 골프장이 들어선 것이다. 오늘날 여행 산업에서 이 씁쓸한 사실은 오히려 세일즈 포인트가 된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동남아시아 여행의 5할 이상은 섹스, 카지노, 골프가 차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심지어 필리핀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 마닐라에서 영어는 경쟁력이다. 우리는 새로운 낭만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동시에 익숙한 즐거움에 맞춰 여행을 즐긴다. 인도에 대한 환상도 그 애매한 저울질 속에 있다. 물론 아직도 인도 남부의 휴양지 고아, 북부의 티베트 자치구 다람살라 등 인도에는 여행자를 유혹하는 장소들이 무수히 많다. 하지만 동시대의 여행을 말할 때, 델리는 인도 여행의 불편한 진실도 넌지시 드러낸다. 인도의 관문 델리에서 환상의 이면을 보았다. 여행은 항상 한 움큼의 숙제로 남는지 모르겠다. 다시 땅내음이 났다. 여행의 출발점에 서 다시 델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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