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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27. 2017

일본 TV엔 있고 한국 TV엔 없는 것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가 보여주는 차가운 도시의 상냥함



일본에 '집, 따라가도 될까요? 家、ついて行ってもいいですか'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도쿄 테레비에서 하는 심야 방송으로 도쿄 밤거리를 걷는, 혹은 앉아 있는, 때로는 누워있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어 '집에 따라가도 되냐고' 물으며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OK를 하면 집까지 찾아가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이모저모를 묻는다. JTBC에서 강호동과 이경규를 내세워 '한끼줍쇼'란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이 방송을 보고 따라한 게 아닌가 싶었던 방송이기도 하다. 그런데 두 프로그램, 제목부터가 수상하다. 야밤에 집에 따라가도 되냐니 황당하기 그지없고, 생판 처음보는 사람에게 한끼줍쇼라니 이렇게 무례한 구걸도 없다. 실제로 '집, 따라가도 될까요?'에서 꽤 많은 사람들은 제안을 거절하거나 손사례를 친다. '한끼줍쇼'는 쌍욕을 듣고 있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묘한 건지 2014년 1월 시작된 '집, 따라가도 될까요'는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방송되고 있다. 방송이 시작되고 4년이나 되었으니 이 황당무계한 제안을 수용한 이들이 꽤나 많았다는 이야기다. 밤의 도시, 프로그램은 외로움에 온기를 더한다. 상냥한 간섭은 도시의 마음을 달래준다. '집, 따라가도 될까요?'의 성공 비결이다.


프로그램의 요지는 간단명료하다. 택시 요금을 대신 지불할 테니 집까지 따라가도 되냐는 것이다. '한끼줍쇼'와 달리 받는 만큼 주는 게 있다. 그러니까 오고가는 관계다. 때로는 택시 요금이 아닌 회식의 비용이나 마사지 비용을 대신 치뤄주기도 한다. 지불하는 품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방송사가 시민의 집을 거저 촬영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끼줍쇼'와 달리. 그리고 '집, 따라가도 될까요?'는 심야 방송이다. 방송 시간만 심야인 것이 아니라 촬영도 심야에 이뤄진다. 차가 끊겨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차비를 대신 지불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이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청자의 필요가 먼저였던 방송이다. '한끼줍쇼'와 달리. 그렇게 따라간 집들은 가지각색이다. 예순이 되도록 혼자인 노인의 5DK가 있는가 하면, 화재 후 도쿄로 이주해 네 가족이 1LDK에 살고 있는 가족도 있다. 게다가 '집, 따라가도 되나요?'는 이야기를 뽑아내는 재주가 있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질문이 그 집의 아픔이나 지나간 상처를 들춰내곤 한다. 다소 언어 폭력이 될 법한 순간도 더러 있지만,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도 사람들은 밤의 기운을 빌려 술술 털어놓는다. 차가운 도시의 밤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도시는 외롭다. 밤의 도시는 더욱 외롭다. 차게 식은 아스팔트는 쓸쓸하게 빛이 나고, 무표정의 건물들은 도시의 민낯이다. 간섭을 사양한다. 도시는 그러하다. 혼자에 익숙하고 혼자에 의존하며 혼자로 완전한 도시는 혼자로 온전하다 하지만 이렇게 차가운 도시는 종종 관심조차 간섭으로 몰아간다. 우리가 외로워지는 이유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간섭받고 싶어진다. 고독이 외로워지려 할 때, 외로움이 아픔이 되려할 때 우리는 간섭을 갈망한다. 일본의 밤거리를 생각해보았다. 도쿄에 살던 무렵 새벽까지 가게에서 있다 지하철도, 버스도 다 끊겨 망가킷사까지 걸었던 그 때를 생각해보았다. 택시를 타기에 당시 내 호주머니는 너무나 빈약했기에 어쩔 수 없이 걸었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의미가 다가왔다. 밤중에, 나만 깨어있는 것 같은 야밤중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아직은 남아있는 도시의 작은 상냥함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은 운이 좋은 건지, 능력이 좋은 건지 회마다 코끝이 찡해지는 드라마를 보여준다. 사고로 다리를 절단할 뻔 했으나 극복해낸 중학생 소녀, 화재로 집이 다 타버렸지만 그 덕에 도쿄에 올라올 수 있었다는 가족, 회사가 도산해 모든 걸 일었으나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말을 쉴 수 있어 좋다고 말하는 전직 자영엽의 남자 등. 밤에 찾아온 이러한 드라마는 타인의 숨결이다.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나 말고 이 도시에 누군가가 함께라는 걸 프로그램은 느끼게 해준다. '한끼줍쇼'와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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