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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Dec 03. 2017

돌연 끝나버린 산책, 다니구치 지로
谷口ジロー

홀로 느긋한 만화를 만들고 있는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새로움이다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계속될 것 같았다. 도쿄의 구루메 거리를 지나 동네 골목, 그리고 에도(江戸)의 곳곳을 누비던 그 길에 끝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길 바랬다. 다니구치 지로의 부고는 너무나 돌연 찾아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최근 입원과 퇴원이 반복되는 생활이란 건 흘러오는 얘기로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신작을 위해 프랑스 파리의 아파트를 1개월간 빌린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 <천년의 날개, 백년의 꿈(千年の翼 100年の夢)>이란 이름의 만화로 펴냈었다. 심지어 201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예문화훈장 슈바리를 받으면서는 ‘에도(江戸、작품, ‘에도 산책(ふらり)')를 지나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昭和)까지는 해보고 싶다’고도 말했었다. 그런데 그가, 영영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 마치 <개를 기르다(犬を飼う)>의 탐이 그랬듯 안탑깝게, 애절하게.  



다니구치 지로는 다르다. 여느 일본 만화와 달리, 소위 아니메들과 달리 느린 시간을 산다. 유럽의 만화 밴드 데시네(Bande Dessinée)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가 말하는 그의 만화는 컷과 컷 사이에 생략이 없고 배경 하나하나에 삶이 있다. 그의 만화는 천천히 보아야 하는 만화다. 천천히, 공을 들여 바라보아야 풍경이 제대로 보이고, 인물의 감정이 그려지며, 이야기의 결이 살아난다. 그래서 다니구치는 일본에서 별로 인기가 없다. 실제로 그의 작품 <에도 산책(ふらり)>이 만화 주간지 ‘모닝(モーニング)’에 연재됐을 때, 다니구치는 ‘이건 안되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만화가 다른 만화들의 스피드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더, 그의 만화는 소중하다. 그는 천천히 봐야만 보이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삶의 정수를 길어낸다. 유럽에서 그의 작품이 영화 감독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쿠스미 마사유키는 다니구치 지로와 모두 두 번을 함께했다.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와 <우연한 산책(散歩もの)>. 쿠스미는 다니구치를 ‘조용함을 품은(静かなる) 도전자’라 표현한다. 도전자, 둘은 새로웠다. 1990년대 당시 요리 비평가인 야마모토 마스히로나 미슐랭 붐이 불고 있던 한가운데서 둘은 ‘안티 구루메’를 외쳤다.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먹는지, 그러니까 주인공 이노카시라 고로가 어떻게 공복을 채워나가는지가 중요한 만화를 만든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탄생이다. 이는 다니구치 지로를 얘기하면서 간과되는 부분이다. 그의 느긋한, 기분 편한 화풍에 가려져 그의 차이, 새로움은 자주 거론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니메 왕국에서 유독, 거의 독보적으로 홀로 느긋한 만화를 만들고 있는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새로움이다. 심지어 <에도 산책>은 이름도 모르는 주인공이 새의 시점이 됐다, 고양이의 시점이 됐다 하면서 에도를 바라보는 것, 그것만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서 더욱 그가 그립다. 그의 산책이 자꾸 생각난다. 오늘은 우연한 산보를 해야 할 것 같다.


'바자'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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