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른다. 아픈 이에게나, 힘든 이에게나, 똑같이 평등하게.
아픔을 아픔으로 치유한다. 슬플 땐 더 슬프려 하고, 아플 땐 더 아프려 한다. 물론 몸이 아픈 건 돈 백 억을 준다해도 싫지만. 때로는 위로보다 비슷한 경험의 공유, 공감이 더 힘이 된다. 나약한 자의 자기 위안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럴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그랬다. 우연히 드라마 하나를 보았다. 제목이 '휠체어로 나는 하늘을 난다(車椅子で僕は空を飛ぶ). 제목부터 눈물이 난다.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양키 청년으로 나오는데 무려 담배를 피우고(쟈니즈 중에서도 가장 동안인 그가!!), 보쿠(僕)가 아닌 오레(俺)라 자신을 칭하며 말도 안되는 남자인 척을 한다. 갑자기 불구가 된 야세베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작 목표가 휠체어를 편하게 탈 수 있는 정도인 현실이 그에겐 너무나 급작스럽고, 어마어마한 공포다. 그에겐 자신이 어릴 때 홀로 떠나버린 엄마가 있고, 그 외엔 아무도 없다. 갑자기 다가온 공포, 그렇게 망가진 일상, 자연스레 드러난 상처, 홀로 남겨진 자신. 나는 또 이입하고 말았다. 하세베가 남같지 않았고, 그의 부서진 일상이 남의 것 같지 않았다.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드라마는 시련에 처한 사람이 겪는 꽤나 진부한 패턴을 고스란히 옮겨온다. 갑작스레 변해버린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 현실을 받아들이며 하나씩 일상을 찾아가려는 노력의 단계, 그럼에도 다가오는 절망감과 최악의 선택 앞에 서는 자신. 이 과정이 내게도 똑같이 있었다. 일년 전 10월 어쩔 수 없이 눌렀던 119는 꽤나 긴 병원 생활을 가져왔다. 폐렴이란 진단을 받기가 뭐 그리 힘들었는지 병원을 세 곳이나 옮겨서야 병명을 알았고 그렇게 뒤늦은 치료가 시작됐다. 아프면서, 병원에 있으면서 나는 혼자였다. 가족이 있어도, 종종 병문안을 와주는 사람들이 있어도 아픔을 100% 이해해준다는 건 불가능의 일이었다. 세상이 나만 빼고 잘도 돌아간다는 생각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고립. 이 단어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10여 년의 경력이 단절됐고, 복귀의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잃었다. 정신을 잃었다. 눈을 감으면 입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해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다른 세계와 마주하는 듯한 경험을 했다. 이 일은 지금도 신기한 감각 그대로다. 나는 혼자였다.
드라마는 출연진이 호화롭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둘이나 나오고 그라비아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우에토 아야가 아픈 과거를 품은 여자로 출연한다. 이세야 유스케가 심리 카운셀러로, 이케마츠 소스케가 먼저 다리가 불구된 재활 선배로 출연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하세베, 니노미야 카즈나리다. 제목에 주어가 바로 그이니 더이상 말할 것도 없다. 하세베는 이케마츠가 연기한 타케히로가 자살하자 자살의 명소로 간다. 타케히로는 죽기 전 하세베에게 전화를 했었고, 이를 하세베가 무시했었다. 하세베는 자신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민폐라고 말한다. 엉망진창으로 살았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며, 더불어 다리까지 불구가 됐으니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절망의 끝은 아마도 여기라고 생각한다. 존재 자체가 짐이 되는 것, 내쉬는 숨 조차도 폐가 되는 것. 나 역시 나의 존재가 가족에게, 주변에게 민폐가 된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생각은, 감정은 서서히 찾아와 무시무시하게 내 일상을 집어삼켰다. 하세베는 자살의 명소, 벼랑 끝으로 향하며 자신이 폐를 끼친 사람의 수를 세기 시작한다. 한 사람, 두 사람... 끝이 없이 이어진다.
하세베가 마주하는 마지막이 무엇일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하세베의 앞에는 바다 깊숙이 떨어지는 벼랑이 보이고, 등 뒤로는 그의 자살을 멈추려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지켜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술회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도와줘요(助けて)'. 눈물이 흘렀다. '도와줘요'란 단 네 글자에 생에 대한 절실한, 처절한 갈망이 느껴져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그저 살고싶다는, 죽기 싫다는, 어린 아이의 울음같은 마음이 다가와서였다. 과거를 고칠 수 없기에 사람은 자살을 결심하곤 한다. 과거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에 사람은 죽음을 선택하곤 한다. 시간은 이들에게 지옥과도 같아 흘러도 흐르지 않게 자리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어쩌면 지금도 그 자장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은 엄연히 흐른다고 느낀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면 시간이 흐른만큼 자신도 변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생각을 해보면 그렇지 않다. 폐를 많이 끼친다는 건 그만큼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하지만 아플 때는, 힘들 때는 그 정신 차린다는 것이 좀처럼 되지 않는다. 우울은 우울을 찾고, 슬픔은 슬픔을 찾는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아픈 이에게나, 힘든 이에게나, 똑같이 평등하게. 그것만은 진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