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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Dec 30. 2017

12월 23일,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관하여.

여기가 아닌 어디, 지금이 아닌 언젠가에 관한 엘레지, 고스트 스토리



늦은 밤 알 수 없는 어떤 소리, 수상한 인기척과 묘한 울림, 이상하게 굴절하는 햇살과 그렇게 그려지는 프리즘. 세상은 어쩌면 이곳이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또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영화 '고스트 스토리'는 공포로 감지되는 어떤 순간과 장면들을 현실 곁에 존재하는 다른 질감과 속도의 세계로 그려낸다. 오래 전 공포 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하얀 천을 뒤집어쓴 달걀 모양의 유령을 귀엽게 연출한 것부터 남다르다. 그에게 공포는 현실의 또 다른 장면이고, 지금의 또 다른 순간이다. C와 M은 시골 한적한 곳에 살고 있는 연인이다.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갑작스레 C의 죽음이 찾아온다.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하얀 천을 바라보는 기나긴 롱테이크를 지나 우리가 마주하는 건 시체가 된 C의 모습을 다시 오래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다. 유령이 된 C는 M의 주위를 서성인다. 살던 집에 돌아가 그녀의 곁에 머문다. 애절하고 아련하다. 물론 '고스트 스토리'에 공포 영화의 클리셰가 없는 건 아니다. 유령이 된 C는 책장의 책들을 떨어뜨리고, 접시와 온갖 주방 집기들을 던져 깨뜨리며, 전구의 불을 조작해 공포를 조성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가시적인 충격과 공포로 장면을 쌓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고스트 스토리'에서 진하게 다가오는 건 현실을 떠나지 못한 이의 시간과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울려대는 종소리의 혹독함이다. 우리 곁에, 지금과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현재에 떠밀려 멀어지는 이들과 시간이 있다.  



'고스트 스토리'의 화면은 1.85:1이 아니다. 인스타 그램의 프레임을 떠올리게 하는 4:3에 가깝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오래 이어지는 영화적 세계 밖에 존재하면서 의미를 갖는다. 데이빗 감독은 롱테이크를 많이 사용했다. C의 죽음 이후 울먹이며 파이를 먹는 M의 장면이나 시체가 된 C가 누워있는 병상을 온통 하얗게 담아내는 장면 등이 그렇다. 반면 굵직한 사건과 시간들은 생략하거나 점프한다. 방에서 나와 현관을 나가는 장면을 M의 옷만 바꿔 연결한 장면은 빠름을 모토로 흘러가는 지금의 시간을 그려내고, 나아가 허물어진 집 위에 세워지는 빌딩의 공사 현장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대의 아픔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이 함께 흘러간다. 여기서 영화는 공포의 장르에서 벗어나 공포에 본질에 접근한다. 무서움의 감정이 이질적인 것,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대한 공포임을 얘기하고, 그렇게 공포를 무서움의 자리에서 내려놓는다. C는 떠나갔지만 여전히 곁에 있다.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고스트 스토리'는 공포를 아련함으로 엮어낸다. 책장에서 떨어진 책의 어느 페이지를 보고 M은 과거를 떠올리며 C가 만든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슥슥 바닥을 끄는 소리와 함께 C가 다가오고 M의 손끝이 그곳에 가 닿으려 한다. 여기 밖 또 다른 곳에서 지금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이승 곁에 저승이 다가오며, 유령이 된 C가 M과 함께 있다. 한편의 시와 같다.



영화의 초반 M은 어릴 적 기억을 술회한다. 이사를 할 때면 작은 메모에 좋아하는 것,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집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고. 다시 돌아왔을 때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게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돌아오는 것, 남아있는 것. 영화에서 이 두 개의 모티브는 주요하다. 쓸려가는 시간 안에서 기여코 머물고 있는 것들은 현실을 외연으로 확장하는 조각이 된다. 애달프고 간절하게 다른 시간을 품어낸다. 한 해가 저물려 한다. 하지만 한해의 끝이 시간의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는 베토벤의 9번째 심포니를 얘기하는 점성술사가 등장한다.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닳은 베토벤이 이제 사람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들도, 딸도 없는 베토벤에게 남아있는 건 몇 곡의 음악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남아있는 것들을 쉽게 간과한다. 영화에서 C가 아닌 또 다른 유령은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라 말하며 사라진다. 허무하게 내려앉는 하얀 천이 밀려나는 시간의 눈물로 남는다. 기억하는 것, 남아있는 것들의 시간을 사는 것, 밀려난 것들을 생각하는 것. '고스트 스토리'는 사랑 영화도, 공포 영화도 아니다. C와 M의 이름이 추상적인 이니셜로 설정된 건 사랑이란 현실적인 감정만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루가 남았다. 24시간이고, 1440분이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시간은 그 이상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지 않은 시간을 마주하는 것만큼 지나간 시간을 바라보는 새해를 맞고 싶다. 어제 밤 부엌에서 수상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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