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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08. 2018

한국엔 없는 것,
일본이 시간을 사는 방법

일본에서 마주한 끝나지 않는 엔드롤, 그런 마음


어딘가 백화점 광고를 닮았다고 하여 말이 많았던 영상. 2017년 일본을 달궜던 코미디언 블루종 치미에가 시청자를 어느 쇼핑몰로 초대하는 듯한 오프닝과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빵빠레는 오해를 살만 했다. 뒤이어 이어지는 퍼퓸의 비비드한 컬러 의상과 세트도 흡사 쇼핑몰의 풍경같다. 하지만 영상은 일상이 축제로,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스며드는 소중한 시간을 그려낸다. 쇼핑몰과 쇼윈도, 길거리와 2층 버스를 지나는 길가엔 칸쟈니8와 아라시, 세카이노오와리와 토키오가 있고, 도시의 전광판, 도시의 어느 뒷골목, 이름 모를 어느 언덕길의 계단과 어느 바와 클럽 한 켠엔 마츠 다카코와 아이돌 멤버들이 걸어간다. 우체통 앞에서 편지를 보내려는 호시노 겐과 고층 빌딩 옥상에서 노래를 부르는 후쿠야마 마사하루까지. 하늘에서 빛나던 스타가 일상 곁에 내려 앉았다. 영상은 풍선을 띄우며, 불꽃을 터뜨리며 한 해의 마지막을, 새로운 시작을 축하한다. 지난해 68번째 방송을 마친 NHK '홍백 가합전 紅白歌合戦'이 시간을 사는 방식이다.  



이미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세 번의 입원을 마치고 나는 도쿄 어느 비지니스 호텔에 있었고 TV를 보았다. 일본의 국민적 아이돌 그룹 스마프가 데뷔 25년을 맞이했던 때고, 그들의 해체 소식이 들려왔던 때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40번째 싱글 '고마워요 ありがとう'를 불렀다. 새하얀 무대와 하얗게 빼입었던 멤버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멜로디가, 선율이 그쳐도 그들은 퇴장하지 않았다. 조명도 꺼지지 않았다. 해체를 했었도 이들의, 이들과 함께했던 우리의 시간마저 끝난 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냥, 그렇게 있었다. 청중들도, 일본의 많은 사람들도, 그리고 나 역시 그랬다. 정적은 지나간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소리가 되었고, 그런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의 TV에선 기대할 수 없는 정적이다. 한해를 보내며 많은 방송국들은 특별 프로그램을 꾸린다. 수많은 시상식과 총정리에 가까운 가요 프로그램, 그리고 뉴스 총결산과 같은 것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어떤 시간도 느끼지 못한다. 지나간 것들에 대한 미련이, 어떤 공감이, 잊지 않으려는 애절함이 결여된 시간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지난해 역시 그렇게 흘러갔다.



일본의 장수 음악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는 매번 테마가 있다. '노래하자, 설날에는 전원이', '노래로 이어지자'와 같이 화합과 희망을 노래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2015년부터 3년간 '홍백'은 연이어 '꿈을 노래하다'를 테마로 삼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아픔을, 2016년 쿠마모토 지진의 상흔을 기억하며, 이를 잊지 않겠다고, 그렇게 노래하자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방송이 사건으로 기억되는 상처와 아픔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결혼하고 5년도 되지 않아 남편을 잃었던 배우이자 가수 오타케 시노부는 자신을 구원해준 노래라며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2016년 '홍백'에서 불렀고, 개인적 사정으로 가수의 꿈을 포기했다 10년전 다시 재기한 엔카 가수 이치카와 유키노는 2016년 데뷔 23년만에 '홍백' 첫 출전을 이뤄냈다. 더불어 쿠마모토 지진 피해 현장의 아이를 출산한 가정을 방문해서는 상처의 틈에서도 태어나는 생명을, 그런 시간을 담아내기도 했다. 개인의 시간이 우리 모두의 것으로 흘러가고, 그렇게 남겨졌다.



아무로 나미에가 결혼과 1년의 공백 후 다시 '홍백' 무대에 등장해 흘렸던 눈물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스마프가 안녕을 고하며 고개를 숙인 무대에 흘러갔던 정적 역시 그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야 TV에서 시간을 느낀다. 우리가 상을 나눠가지며 자화자찬의 시간을 보낼 때 일본은 함께 한 시간을 간직하고 멀어지는 것들을 추억하며 무엇보다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렇게 떠들었고, 그렇게 시끄러웠지만 나는 연말 그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세월호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 일본의 TV엔 기쁨만큼 아픔의 자리가 있고, 웃음만큼 눈물의 시간도 흐른다. 그 어떤 작은 시간도 외면하지 않는 상냥함이 그곳엔 있다. 그것은 현대 시대의 아날로그이고, 디지털 시대의 눈물이다. 사이하테 타히의 시를 쇼핑몰 루미네 계단에 쓰며 크리스마스의 적적함을 얘기하고, 모델 나리타 료가 낭송하는 그녀의 시가 울려퍼지는 도시에서, 뭐가 나올지 모를 꾸러미 후쿠부쿠로福袋를 자신에게 선물하며 설레이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외면 끝에 흘러 내리는 눈물 곁엔 반듯이 따뜻한 입김이 불어오는 곳. 새해의 초입에서 이런 시간을 생각한다. 일본이 잊지 않으려고, 간직하려고 애쓰는, 햐지만 여기엔 없는 그러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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