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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Feb 01. 2018

츠타야는 츠타야가 아니다

허울 좋은 바람이 불고있다. 츠타야는 1983년 설립됐다.

츠타야 바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이칸야마 T-SITE의 바람이다. 서점을 서점 이상으로 바라보고, 책을 책 이상으로 생각하는 바람이 불고있다. 신간 위주의 배열을 벗어나 취향과 기호, 라이프 스타일 안에서 서점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이다. 블로그 곳곳이 다이칸야마 T-SITE 후기로 가득하고, '매거진 B'는 츠타야로 책 한 권을 가득 채웠다. 일개 서점으로서의 츠타야가 아닌 브랜드로서의 츠타야를 얘기하는 목소리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어딘가 과하게 가열된 바람과 집착을 느낀다. 츠타야가 어떻게 T-SITE로 확장할 수 있었고, 다이칸야마 T-SITE가 어떻게 일본의 삶을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게 했는지를 얘기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시간과 축적이 결여된 바람이 허공만 맴돌고 있다. 내게 츠타야는 패션지 퍼지와 뽀빠이를 타치요미(立ち読み, 책을 사지 않고, 혹은 사기 전에 서서 읽는 것)할수 있는 서점이었고, 우타다 히카루의 신보를 직원의 친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구매할 수 있는 레코드 숍이었다. 시부야엔 시부야의 츠타야가, 다이칸야마엔 다이칸야마의 츠타야가 있음에도 한국에선 다이칸야마를 츠타야와 동일시한다. 그렇게 결과만 쫓는 바람이 불고있다. 츠타야는 1983년 설립됐다.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를 보면 츠타야가 종종 등장한다. 세련된 디자인의 매장도, 모던한 느낌의 공간도 아닌 파란 색의 작은 헝겁 봉투로 등장한다. '최고의 이혼'에선 이혼 직전의 부부가 연체되는 DVD를 두고 다투는 일화가 있었고 '그래도 살아간다'에선 츠타야에서 빌린 에로 DVD를 보다 여동생이 살해되는 순간을 지켜주지 못하는 남자의 순간이 있었다. 츠타야는 렌탈 숍이었다. 1982년 오사카 히라카타(枚方) 시에 'LOFT'란 이름의 렌탈 레코드 숍을 오픈한 게 츠타야의 시작이다. 스타일도, 콘시어지도, 취향과도 거리가 먼 그저 그런, '북오프(Book Off)''와 같은 렌탈 숍이었다. 그리고 이 가게는 1년 후인 1983년 3월 'LOFT'의 자매 매장 '츠타야 히라카타역점'으로 이어진다. 설립자인 마스다 무네아키의 고향인 오사카를 중심으로 사업이 확장된 셈이다. 그렇게 '츠타야 레코드'가 시작됐고, 1994년 7월 우리에게 익숙한 '츠타야 북스'가 생겨났다. 일본 전역 서점 938개 중 812개를 점유하는 츠타야, 매상이 일본 최대 서점인 키노쿠니야(紀伊国屋)를 상회하는 1097억 엔의 츠타야, 시마네(島根) 현을 제외하고 47개 도토현부 어디에나 있는 츠타야. 다이칸야마 T-SITE가 츠타야는 아니다.



츠타야 다이칸야마 T-SITE는 훌륭하다. 세 개의 동이 세세하고 디테일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그걸 설명하는 건 무려 삶이다. 장르나 년도, 작가, 혹은 출판사로 구분하는 기존의 체계를 정면으로 뒤집은 이 발상은 서점의 혁명이자 서점이 아니다. 콘시어지 직원의 존재는 작은 발견을 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점을 작은 발견을 만들어가는 공간으로서의 서점으로 확장하고, 여행 코너에 붙은 'T TRAVEL'은 여행에 관한 모든 시간을 충족시켜준다. 이곳에선 비행기 티켓 수속은 물론 호텔 예약도 할 수 있다. 15만부에 이르는 서적과 잡지, 13만장에 달하는 렌털 CD, 8만 장을 넘는 영화 타이틀이 시간과 시간으로 세련되게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30여 년이란 시간이 쌓인 결과물이고, 812개 점포가 살아온 시간의 축적이며, 오사카의 작은 도시 히라카타 렌탈숍의 확장이다. 전쟁 영화를 고대 전쟁, 2차 대전 이전, 태평양 전쟁, 전후(戦後), 반전, 2차 대전 이후, 가공의 미래 전쟁으로 나누는 세세한 분류는 이렇게 고된, 지난한, 성실하고 근면한 태도와 자세의 결실이다. 츠타야를 말하면서 이 시간을 간과할 수 없다.



내게 츠타야는 다이칸야마보다 시부야다. 잡지가 유독 많고 스타벅스와 와이어드 카페가 층을 나눠 있으며 서서 책을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이곳은 내게 어디에도 없는 츠타야다. 츠타야는 지역에 따라 취급하는 도서, 음반, DVD의 종류와 양이 다르다. 시부야엔 패션, 컬쳐 관련 서적이 풍부하고, 키치죠지는 렌탈 전용 숍으로 운영되며, 신주쿠에선 DVD만 빌려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츠타야는 도시를 닮아있다. 츠타야 시부야는 시부야를, 츠타야 키치죠지는 키치죠지를, 츠타야 신주쿠는 신주쿠를, 다이칸야마 T-SITE는 다이칸야마를 닮았다. 그런데 우리는 츠타야를 얘기하며 다이칸야마 T-SITE만 바라본다.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만 따라한다. 콘시어지는 풍부한 지식이 없고서야 불가능하다. 큐레이션이란 분류의 가공과 포장이다. 그렇게 책은 책 이상이 되고 서점은 서점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이칸야마 T-SITE엔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본질을 추구하는 지적 세련됨이 담겨있다. 그러니 기본이 자주 무시되는 곳에서 타인의 시간을 따라만 하는 건 허울 좋은 꿈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렌탈 숍이 있던가. 우리의 백넘버 시장과 소장 문화는 얼만한가. 그러니까 우리에게 다이칸야마 T-SITE 바람이란 얼마나 허무한 몽상인가. 허울 좋은 바람이 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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