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이기 앞서 한 사람의 인간이다
모두가 엄마가 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딸은 누군가의 엄마다. 단순하고 명료한 사실이고 대부분의 경우 여자의 삶을 규정한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 명료한 문장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질곡의 드라마가 숨어있다. 장난에 불과했던 외침이 남자를 치한으로 몰아가고 누군가의 취기가 남자를 선로에 떨어뜨린다. 설상가상으로 소리를 지른 여자와 선로에 넘어진 남자는 형부와 처제 사이며, 심지어 언니와 동생은 20년 넘게 보지 않고 살았다. 둘은 아빠가 다르다. 딸과 엄마, 가족과 또 다른 가족. 평범할 것 같은 풍경 속에 뒤틀린 시간과 오래된 상처가 쌓여있다. 하염없이 애달프고 하염없이 구슬픈 시간이다. 고통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픔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카모토 유지는 화해나 속죄, 용서를 말하지 않는다. 삶은 그렇게 명료하고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음을 직시한다. 고통을 어떻게 해소하고,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지를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Woman'을 비롯 'Mother', '그래도 살아간다' 등에서 보여준 모나고 뒤틀린 드라마는 삶에 흐르는 진실된 시간을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Woman'은 2013년 방영된 드라마고 'Mother'은 지금 한국에서 정서경 극본 이보영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어 방영되고 있다. 엄마는 그저 사람이고, 여자는 그 중 하나며,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제목에서도 보이듯 'Woman'은 여자의 삶을 서술하는 드라마다. 어릴 적 집 나간 엄마를 원망하며 살았던 아오야기 코하루(마츠시마 히카리)는 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두 아이와 외롭게 살아가고, 애지중지 자란 코하루의 동생 시오리(니카이도 후미)는 뒤틀린 애정에 방황한다. 둘은 아빠가 다르고 코하루는 난치병에 걸린다. 극적인 장치와 설정을 통해 이야기를 비현실적으로 끌고가는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픔과 고통에 상처와 슬픔을 더해 흘러가는 드라마는 삶의 어떤 정수를 길어낸다. 딸과 엄마도 궁합이 맞지 않을 수 있음을 그려내고, 딸로 태어났지만 언젠가 엄마가 되고마는 현실을 응시한다. 매우 비현실적이지만 몹시 현실적이다. 드라마가 절정에 달하는 건 돈과 양육, 그리고 병에 시달려 코하루가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대목에 이르면서다. 코하루는 '미워요. 용서할 수 없어요.'라 말하며 '도와줘요'라 울부짖는다. 아픈 아오야기, 환자 코하루이지만 병 걸린 엄마는 되고 싶지 않은 코하루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그는 그저 딸로서 자리한다. 속절 없는 세월이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모든 게 선명히 드러난 순간 이들이 택하는 건 용서나 속죄와 같은 '편한 선택'이 아니다. 자신을 자책하며 건물 옥상에 오른 시오리에게 엄마는 말한다. '인생 끝났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아픔을 호소하는 코하루에게 엄마는 말한다. '응. 응. 응.' 그저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이란 게 이 세상엔 존재한다. 코하루의 엄마는 골수 이식 검사를 받는다. 시오리 역시 이를 따른다. 결과는 엄마는 불가능, 동생은 가능으로 드러나지만 드라마가 말하는 건 이런 단순하고 명료한 선택이 아니다. 아픔과 마주하고, 슬픔과 나란히 하고, 고통을 살아가는 것. 어쩌면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코하루 못지 않게 불우한 시절을 보낸 코하루의 남편 아오야기 신(오구리 슌)의 시간 역시 아픔과 슬픔에 충실하다. '한달에 한 번 찾아오는 날을 기다리는 게 좋았어요. 남들이 불행하다 말했지만 집안일 하는 게 즐거웠어요.' 싱글맘의 이야기를 넘어서고, 속죄와 용서의 서사를 뛰어넘는 순간이다. 드라마를 보며 몇 번이나 마음이 울컥했다. 그저 조금 오르막길일 뿐(ちょっと坂道だけなのだ)이란 대사나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태풍이 계속되길 바랬다는 코하루의 이야기, 그리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우울의 눈물을 떨궜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위로, 위안, 용서, 속죄가 구원하지 못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사카모토 유지가 바라보는 사람은 기본 선하다. 물론 살인을 저지르고 취기에 사람을 죽음에 모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잘못과 고통의 정답이 없는 것이 사카모토의 드라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미 생겨난 아픔이다. 이미 틀어진 시간이고 이미 덧난 상처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하나 뿐인지 모르겠다. 그저 살아가는 것, 아픔을, 절망을, 고통을 사는 것. 그렇게 시간을 지내는 것. 사카모토 유지는 당연하게 간주되는 시간을, 관계를, 삶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엄마도 한 사람의 여성임을, 나아가 사람임을, 딸은 언젠가 엄마가 되고 그렇게 상대가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무리하게 정답을 찾으려 애쓰면 힘들어진다고 사카모토는 믿고있다. 아빠를 잃은 가족은 그저 3인 가족으로 온전하고, 싱글맘의 여자는 그저 아이와 단란하게 사는 가정의 가장이다. 궁합이 맞지 않는 부모 자녀도 분명 존재한다. 결국 남는 건 하나 뿐이다. 우리는 모두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이기 앞서 한 사람의 인간이다.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우리는 읽을 수 없다. 그걸 읽을 수 있는 건 오직 아이들 뿐이고 남겨진 사람들 뿐이다. 시간은 용서와 속죄, 화해가 아닌 고통과 아픔, 슬픔과 함께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