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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Feb 28. 2018

우리는 모두 하나의 고독

혼자로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발상


한 장의 사진의 기억. 기이한 모습에 마음이 혹했다. 어둠과 빛의 공존, 혼자인 듯 둘인 피사체, 외롭지만 어딘가 따뜻한 감촉. 현실을 이탈한 듯한 사진집의 제목은 'Intimacy.' 느끼지 못했던 거리감, 친밀함과 친근감의 실천이 눈에 보였다. 아마도 5년 전 어느 방에서의 기억이다. 모리 에이키(森栄喜)는 1976년에 태어났다. 이시카와 현 카나자와 출신으로 미국 파슨스 미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09년 도쿄 소년들의 포트레이트를 담은 포토집 'Crows and Pearls’를 시작으로 그의 연장선인 'Tokyo Boy alone(2011)’과 혼자에서 둘이 된 사진집 'Intimacy(2013)'를 발표했다. 'Intimacy'는 39회 기무라이헤이 상 수상작이다. 'Intimacy'의 표지가 되기도 한 사진의 기이함과 어색함은 모리 에이키의 일종의 선언에 다름없다.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에서 생경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담아내는 것이 모리 에이키의 사진이다. 거짓말처럼 투명한 고독, 청결하게 빛나는 햇살, 물리적 거리가 아닌 정서적 거리로 다가가는 카메라는 기존의 풍경에 가려있던 찰나의 감각을 그려낸다. 'Intimacy'는 그저 평범한 남자 커플의 일상을 그린 일기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풍경에 파장을 일으키는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내일이다.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동이 나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 KEN NAKANISHI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다. 기본 요금에도 미치지 않는 거리를 지나 도착하니 갤러리는 건물의 5층에 있었다. 간격이 좁은, 비탈길과 같은 계단을 벌벌 떨며 올랐던 기억이 난다. 새하얀 벽에, 사람은 직원과 나, 단 둘이었고, 벽에는 모리 에이키의 새로운 전시 'Family Re-gained'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빨간 필터로 40여 쌍의 가족을 담아낸 모리의 새 사진은 보다 강렬했고, 보다 위험했으며, 보다 급진적이었다. 빨강이란 노골적인 선택, 'Family Re-gained'에서 풍기는 전복의 메시지, 동시에 혼자에서 둘, 그리고 함께로 나아가는 어떤 시간의 연속. 그는 '사람이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살게 되면,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만남과 결혼, 그리고 출산과 양육으로 규정된 시간을 의심하는 시선이다.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은 모두 가지각색의 가족이다. 남자만 둘인 가족, 아빠가 둘인 가족, 남자 혼자의 가족. 그는 이들과 뒤섞여 피사체가 되기도 했다. 일본의 도쿄도 사진 미술관의 카사하라 미치코는 '혼자로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 매우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생의 수만큼 가족의 형태도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모리 에이키가 바라보는 미래는 단수가 아니다.

'Family Re-gained'는 'Intimacy'와 꽤나 다르다. 무엇보다 빨간 필터를 투영해 담아낸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분위기가 아스라질 듯 흔들리는 가녀린 톤의 'Intimacy'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리의 사진에서 빨강은 우리 사회 내의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은유한다. 이질적이고 위화감이 느껴지는 익숙치 않은 풍경. 모리는 '빨강의 'too much'한 느낌은 알고 찍었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가족들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것보다 '아직은 조금 익숙하지 않아요'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하지만...'이란 도전을 담았다. 그에게 가족은 꽤나 먼 대상이었다. 결혼도 양육도 아직은 미지수인 동성애자 모리 에이키에게 가족은 어디까지나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장남이다. 하지만 2015년 미국의 동성혼 합법 결정, 근래 대만에서 보여진 동성혼 실현을 위한 움직임이 그의 의식을 변화시켰다. 모리는 'Family Re-gained'를 '스스로 지워버렸던 가족을 만든다는 가능성 같은 걸, 내 안에서 부풀려 본 기록집이에요'라고 정의했다. 체념과 포기의 마음이 '어쩌면', '혹시'의 시간을 열어젖혔다.

그렇다고 그가 어떤 거창한 의도나 사상을 가지고 촬영을 한 건 아니다. 그는 그저 찍고 싶은 걸 찍었고, 그런 기분으로 촬영을 했다. '찍고 싶다는 기분이 다였어요. 그게 핵이 되었고, 촬영을 하는 이유가 되었죠. 다 찍고나서 '내가 왜이리 이렇게 찍고 싶어했지?'라고 묻자 왜인지 매우 폴리티컬해져버렸어요.' 도쿄에서 진(ZINE)을 만드는 카나이 후유키 역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인터뷰에서 내게 말했는데 모리의 사진 역시 그러하다. 언어가 다소 날카롭고 강해 위험하고, 영상이 때로 프로파간다의 위험을 안고있다면, 모리는 보는 이의 마음에 자연스레 침투해 자연스레 퍼져나가는 사진의 잔향을 그린다. 기존 체재를 부정하는 메시지, 가족의 의미를 뒤흔드는 암시보다 모리 에이키는 지독히도 투명하고 하염없이 고독한 누군가의 시간이다. 요지 야마모토가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느껴지는, 그 절대적인 고독과 광기는 무엇인가'라고 했듯이. 하지만 'Family Re-gained'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가족의 형태에 대한 재고, 빨갛게 바라본 세상, 그렇게 도출되는 다양성. 모리는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제도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두가 법적으로 결혼을 할 필요는 없어요. 단, 하고 싶은 사람이 하지 못하는 세상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Tokyo Boy alone' 속 혼자는 Intimacy' 속 둘이 되었고, 다시 'Family Re-gained'의 함께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기에 앞서 하나의 고독이란 사실. 모리 에이키의 사진이다.

photo_eiki mori

#morieiki #kennakahashi #fuyukika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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