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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14. 2018

왕복 4시간 동네 카페,
b-hind에 가다

비하인드와 나의 그라데이션


한남대교가 아닌 양화대교를 건넌다. 34번에 1400번을 타면 472번을 타는 것보다 1500원이 더 든다. 사람을 피해 10분 정도 걸어도 괜찮지만 버스를 타면 고작 한 정거장 사이에 3년 전 어느 날의 기억이 스쳐간다. 마포구 서교동 404-26, 비하인드. 이태원에서, 합정동에서, 신사동에서, 서울을 넘어 논현동에서 그곳에 간다. 오래 전 어느 여름 문턱, 친한 선배와 함께 커피를 마셨고, 왜인지 일찍 일어난 일요일 아침, 아직 준비중인 가게의 오픈을 기다렸고, 끝도 없이 눈이 내리던 날, 눈에 갇힌 마음을 녹이고 말 할 수 없이 부끄러운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칠 수 있었던 곳, 나는 아직도 골목 뒤에 숨은 가게, 그 곳에 간다. 여느 때처럼 커피를 주문하고 토스트 한 조각을 시키고, 애매한 허기를 샐러드로 채운다. 1년 넘게 동네의 주민이었음에도 가게를 자주 찾게된 건 강 건너 이사를 한 뒤이고, 퇴원 후 본가에 돌아와서는 왕복으로 4시간 남짓이 걸리지만, 여전히 나는 그곳에 간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바보같이도 그런다. 그저 평범한 메뉴, 오래 있기엔 배고픈 메뉴, 하지만 결코 실패는 없고, 그렇게 단정하고 담담한 20여년의 시간.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지금을 이어가는 곳. 어제를 닮은 그곳에서 나는 왜인지 나의 내일을 기대본다. 카페가 뭐 별거라고, 비하인드는 내게 왕복 4시간짜리 동네 카페다.  

올해 여름 알게 된, 도쿄에 사는 카나이 후유키는 그림을 그리는 남자다.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느껴지는 그의 그림은 요즘 조금 인기를 타는지 며칠 전 도쿄 타마시(多摩市)에서 열린 'Cinra' 주최 행사에서 그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가 판매됐다. 'Cinra'는 지금 일본의 서브 컬쳐를 가장 다양하고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는 곳이고, 그곳의 연례 행사와 같은 'Town'은 올해 '학교, 청춘'을 소재로 했다. 카나이는 의뢰를 받고 '학교'라면 트라우마 밖에 없어 떠오르는 게 없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Fine, I've got Imaginary Friends'라 쓰여진 애달프고 싱그러운 그림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캐리가 되어 그렸어요.' 첫 회사를 들어가고 3년 즈음, 혼자 일어나고 자기 시작한지도 그 즈음. 나는 카페를 전전했다. 작은 오피스텔이 있던 곳은 역에서 도보 3분이었지만, 나는 회사가 끝나도, 일이 마무리되어도 왜인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홍대에서도 아마 가장 붐비는, 걷고 싶은 거리라고 하지만 절대 걷고 싶지 않은 거리 한 켠엔 2층 스타벅스가 있었고, 그곳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 오가는 사람들의 개미같은 하루가 그려졌다. 지금은 없어진 스타벅스에서 지금은 없어진 쵸코 퍼지 케이크를 먹고, 어쩌면 아메리카노 아니면 카푸치노와 단둘이, 하루가 끝나려 하는 저녁 무렵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의 난 아마 조금의 객기로 '아직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나는 어느 때보다 외로웠는지 모른다.

비하인드엔 새우 아스파라거스 샐러드란 메뉴가 있다. 카페가 유명해진 건 키오스크 토스트 덕이지만 새우 아스파라거스를 커피와 함께 시키면 대충 할인이 된다. 소위 패스트푸드 가게의 세트 할인이 그곳에도 있다 .메뉴에도,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지만, 계산을 할 때 왜인지 덜 나온 듯한 느낌이 그곳의 방식이다. 대부분 무언가를 쓰고, 책을 읽거나 오래 있다 오기에 요리 메뉴를 시키고, 때문에 조금은 넓은 테이블이 필요하지만 나는 그 날의 가게를 보고 앉을 자리를 정한다. 가리모쿠 소파 자리가 두 테이블 있지만, 내가 자리를 잡는 건 안쪽의 4인석이 아닌 창가의 2인석이고, 마주 보고 앉게 되는 넓은 테이블에선 누군가의 시선을 비켜 가방을 놓는다. 꽤나 오랜 시간을 다녔지만 그곳의 주인과 나눈 말은 아마 커피콩 한 봉다리 정도, 기껏 주문하는 건 조금 다른 토스트거나 며칠 전 먹었던 샐러드. 하지만 나는 가게 앞에 내가 아는 르노 자동차가 보이면 왜인지 마음이 개인다. 조금 힘을 주어야 열리는 문을 밀고 들어가, 단정한 인사말과 함께 손떼가 묻은 메뉴판을 몇 장 넘기고, 그저 어제와 비슷한 말과 동작으로 보내는 비하인드에서의 몇 시간, 그렇게 며칠, 그렇게 몇달. 가게 앞의 승용차는 제네시스가 되었고, 문앞엔 '조금 세게 밀어주세요'란 종이가 붙었다. 어쩌면 누군가와 사귄다는 건 이런 시간의 그림같은 게 아닐까. 아마도 같은 빌딩에서 일하는 긴 파마 머리의 여자는 얼마 전 전자담배로 바꿨다.

비하인드가 있는 팜파스 건물 옆에선 최근 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옆에 자리했던 스페인 요리집은 주인이 바뀐건지 외관이 달라졌다. 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가엔 보지 못했던 가게가 몇 군데 생겼고, 시간은 흘렀지만 고작 몇 개월이다. 사실 비하인드가 위치한 곳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조금만 골목을 벗어나도 쓰레기를 피해 걸어야 하고, 알 수 없는 작고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은 걷기에도 편하지 않다. 하지만 상수동과 합정동 사이, 그보다 어느 뒷골목에 왜인지 오래 전의 내가 남아있다. 담배 파우치와 핸드폰을 차례로 잃어버릴 뻔 했던 날, 그렇게 기묘하게 무서웠던 날, 나는 비하인드의 소파에 앉아 마음을 달랬고, 꽁꽁 얼어붙은 마음 탓에 누군가의 시간에서 도망쳤던 날, 나는 또 다시 비하인드를 찾아 쌓인 눈길을 걸었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일 수도, 상권의 풍파를 이겨낸 자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그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싶고, 혼자 웃었던 시간의 기록을 남기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비하인드의 간판은 짙은 나무빛에 작은 알파벳을 b-hind라 썼고, 그건 이미 미니멀리즘 유행이 일기 십여 년 전의 일이고, 그곳에서 커피를 내리는 주인은 오래 전 머리를 잘랐던 상수동 헤어숍의 노마 씨를 떠올리게 한다. 우유가 커피에 스며드는 시간, 비하인드와 나의 그라데이션이 그곳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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