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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Dec 16. 2019

어떤 회복에 관하여

두고 온 노래를, 어제 그곳에서 마주했다.


#01 자기 것도 아니면서. 일본이 참 잘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자기 것도 아니면서'인데, 나폴리탄, 도리아, 오무라이스, 함바그 스테이크가 일본 오리지널이고, 프랑스에서 우리의 믹스 커피처럼 마시는 카페 오레가, 일본 스타벅스엔 어김없이 적혀있다. 록본기에 있다 내일 마치다시로 이전 오픈한다는 '스누피 뮤지엄.' '자기 것도 아니면서' 오늘 황당한 일을 겪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누구는 기자라 하고, 누구는 선생님이라 하고, 누구는 작가님이라고도 부르고, 누구는 OO 씨라 하기도 하지만, 또 누구는 기래기라 이야기한다. 개인적인 메일의 일부가 무단 유포되고, 잘 알지도 모르면서, 자기 것도 아니면서 참 열심히 떠들고, 수 만 팔로워를 거느린 사람이 피해자 행세를 하는, 누가 약자이고, 누가 갑질을 하는지 아리송해지는 시절에, 나는 그냥 마음껏 약자이고 싶다. 고작 한 사람 자리에, 딱 그만큼의 자리에서. 그런 거리감을 생각했다. 

#02 벌써 두 해나 흘러 빵을 공부하던 무렵의 기억은 길 잃은 순간만 여기저기 남아있고, 절반의 체념으로 끝나버린 시간은 어딘가에 숨어 '싱글즈'에 연재를 시작하며 문득 그 시절을 떠올렸다. 말하자면 절반의 결과만 얻은 셈인데, 세상은 그런 반쪽짜리 어제에 별 관심이 없다. 사실 10년을 넘게 글을 쓰며 연재가 많지도 않았지만, 처음은 아니었고, 이 무렵, 어딘가에 무언가를 쓴다는 건 왜인지 홀로 의미심장하다. 나머지 절반을 이어가겠다는, 다소 유치한 망상이기도 했고, 여전히 나를 모르는 나는 이 우연의 시작이 지나간 어제의 어떤 답일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어떤 근거도, 증거도 없는 소박한 망상. 하지만 그제 아침 문 너머 들려왔던 옥상달빛에, 세상은 가끔 망상이 된다. 시작부터 얘기하면 8년 즈음, 이사를 하고도 왕복 2시간의 단골 카페를 다니며, 눈인사를 나눌 뿐 별 다른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 비하인드의 사장 님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인터뷰라고는 해도 좀처럼 마주할 수 없었던 시간을 함께하고, 촬영이 끝나고 그곳에서 아스파라거스 샐러드를 주문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그곳에 흘러나오던 옥상달빛. 한동안 많이도 울고 기댔던 날들이 떠올라 부끄러운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세상엔 분명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의 세계, 망상의 축, 무력한 기억의 계절같은 게 흘러간다. 이제야 이름을 알게된 사장님은 'CD를 정리하다 그냥 꺼내봤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기도 하다는 걸, 이젠 조금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못난 어제도 빛을 내는 날이 때로 찾아온다. 세상의 절반은 어쩌면 망상 한 뼘이다.

https://youtu.be/FsFppdOa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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