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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Mar 21. 2020

내가 아는 외로움,
시부야 우다가와쵸 13-17

미안해서 하는 이야기, WWW 나토리 타츠토시 名取達利



오래 전 그곳에서 본 영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본어도 잘 하지 못하던 시절, 그나마 외화가 낫겠다 싶어 골랐던 영화는 자막을 따라가기 바빴다. 당연히 남은 건 뿌연 스크린 속 탁한 공기 뿐. 하지만, 왜인지 그곳이 잊혀지지 않는다. 1986년 오픈해 30년 넘게 아트, 인디 영화를 상영하던 시부야 스페인자카의 ‘시네마 라이즈’ 이야기. 작은 창구에서 티켓을 사고, 나선을 그리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아, 시부야 한복판에 ‘아지트’가 있었다. 도쿄에 살던 시절엔 늘 주머니가 가벼워 찾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이곳에 돌아와 알게된 건 그곳의 폐관 소식이었다. 어느새 2019년, 그리고 ‘WWW.’ 도쿄의 지금을 옅보자고, 연호가 바뀌고, 올림픽을 기다리는 그곳의 오늘을 담고싶어 꾸역꾸역 여정을 꾸리고, 어쩌면 결국 보지 못한 영화의 ‘다음’이 보고싶었는지 모른다. 



‘시네마 라이즈’는 모두 2관으로 운영됐고, 1관이 폐관한 뒤 라이브 하우스 WWW가, 나머지 한 관 마저 문을 닫은 자리엔 WWW에 X 한 자만 붙여 WWWX로 오픈했다. 영화관이 떠나가고 라이브 하우스가 찾아왔다. 기사를 찾고 이곳저곳을 기웃대다 WWW는 올해로 10주년을 맞고, 그곳의 창립자인 나토리 타츠토시에게 메일을 보냈다. 갑작스레 얼그러진 계획을 봉함하려는 맘이, 아마도 도움이 됐다. “본래 최근엔 거의 모든 취재를 거절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신 메일 보고 호감이랄까, 이야기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혼자가 되고 취재를 의뢰하는 메일은 매번 나에 대한 테스트와 같아 살떨리게 되지만, 이제는 타인에게 말 거는 방벙을 조금 알 것 같다. WWW HEAD OFFICE. 나토리 씨는 주소를 일러줬고, 파르코 맞은 편, 작은 공원을 낀 진난(神南)에 하필이면 애매하게 도착해 2층 카페에서 800엔짜리 타피오카를 시켜놓고 고작 20분 남짓을 보냈다. 유독 뜨거웠던 9월 도쿄 시부야를 혼자서 걷고, 흔한 도쿄 빌딩의 3층, 짙은 녹색으로 칠해진 철제 문엔 포스트잇처럼 생긴 작은 종이에 WWW라고만 적혀있다. 잘 알지 모르지만, 무언가 틀리지 않았다는 마음에 왠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N 마실 거 뭐가 좋으세요? 커피랑, 홍차랑...

H 방금 카페에 있다 와서 괜찮아요.(웃음)

N 그럼 차 드릴게요.



나토리 씨는 혼자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무실을 걸어, 작은 방문을 열고 창가 의자에 앉아 페트병에 담긴 녹차를 가져오는 그를 기다리며, 이틀 전 긴자 ‘콘비니’에서 샀던 검정 숄더백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갈겨 써놓아 알아보기 힘든 노트를 꺼내고, 핸드폰에 녹음 어플을 켜고, 무어라 시작해야할지. 하필이면 연호가 바뀌는 4월 끝무렵, 5월을 기다리는 아침은 인파가 상당했다, 오는 길엔 소위 연초에 보이곤 하는 ‘하츠우리(初売り, 연초에 백화점 등에서 실시하는 첫 장사)’ 행렬이 길고 길었고, UPLINK의 아사이 대표는 ‘장사, 장사’라며 손사레를 쳤지만, 내겐 시작하는 그림이었다.


H 오는 길에 ‘하츠우리’ 행렬이 많더라고요. 연호가 바뀌어 레이와(令和)가 되었는데,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어떻게 느끼세요?

N 시작한 게 2010년 11월이었는데, 별로 연호랄지,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시 2000년대부터, 2010년대를 의식했던 감은 있어요. 메일로 설명해준 취지와 어긋날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왜인지 00년대로 시간을 정리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시작할 당시 2010년대의 컬쳐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별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달까. 그저 10년간 무언가를 하나씩 해가면서, 컬쳐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감각은 강하게 갖고있었는지 모르겠어요. 헤세이(平成)에서 레이와. 조금 더 지나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죠. 현시점에서는 제가 해온 것들을 별로 돌아보지 않아요. 

H WWW, 더블유더블유더블류가 맞나요?(웃음) 같은 발음을 세 번...좀 힘들어요...

N 맞아요.(웃음) 

H 오늘 아침엔 SPBS의 후쿠이 씨를 만났어요. 근래 공간끼리의 그라데이션, 장르간의 융합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곳도 10여 년전부터 책을 팔면서 출판을 하고, 잡화도 취급했잖아요. 외벽이 큰 창으로 되어있어, 내부의 사무실까지 들여다보이고요. WWW는 본래 영화관이 있던 곳이에요.

N 2, 3년 정도 장소를 찾고 있었어요. 도쿄 안에서 라이브 하우스를 할 수 있는 곳을, 여러곳을 다니며 알아봤어요. 저는 음악계에만 있어서 부동산 사정은 정말 아는 게 없었고, 찾고있던 이미지의 장소가 좀처럼 찾아지지 않았는데, 사람과의 연이랄까요. ‘시네마 라이즈’의 오너를 소개받는 기회가 있었고,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서로 나누게 됐고, 나이대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비슷함을 느꼈어요. 그 극장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었죠. 지금은 거의 시네콘 시장이지만, 당시엔 단관으로 한 작품을 한 달 반 이상 상영하곤 했거든요. 나름의 필로소피가 있고, 문화에 대한 독자적인 시선을 갖고있고, 그런 존경이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적인, 입지적으로도, 별로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 무드랄까.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도 그렇고,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숨겨져있는 듯한 느낌이 저의 감각과 닮았다 느꼈어요. 그렇게 여기서 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네마 라이즈’가 두 관 중 한 곳을 폐관한다고 해서, 그러면 끝이잖아요. 당시 저는 30대 중반이라 말하자면 내가 하고싶다, 하고싶다가 강했거든요. 영화라는 것에 대해 그곳에서 해온 것들, 그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운 점들도 많고, 문화를 만들어간다, 만들다기보다는, 문화와 마주해가는 감각이 강했던 걸로 기억해요. 

H 당시 갖고있던 이미지와 ‘시네마 라이즈’의 분위기?를 비슷하게 느꼈나봐요.

N 건물 자체가 비슷하다기 보다는, 부동산 입장에서는 보통, 일본에서는 ‘츠보(壺)’로 단가를 세는데, 1츠보 2만엔처럼, 최종적으로는 그런 조건이 맞지 않으면 빌릴 수 없잖아요. 하지만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그렇게 공통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명확하게 이런 곳이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확실하게 이미지화 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그저 여기서 해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있다’에 가까웠죠.

H ‘시네마 라이즈’는 팬도 많은 극장이에요. 부담은 없었나요. 영화의 속편을 만든다는 느낌이었을 것도 같아요.

N 물론 프레셔는 있었지만 그렇게 훌륭한, 문화를 발신해온 곳을 이어간다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잖아요. 당시에는 그 장소에 어울리는 것을 만든다, 그런 감각에 강하게 반응하던 때였고, 모두의 소중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해서 의식은 했어요. 사실 당시 도쿄에서 라이브 하우스라고 하면,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그 신이 대부분 스테레오 타입의 라이브 하우스 뿐이었어요. 다양성이 있다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음약의 다양성 뿐 아니라, 신의 다양성, 나아가 아트와의 다양성 같은 것들. 하지만 저희는 그런 일본의 라이브 하우스 컬쳐라는 지점에서, 다양성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해왔다는 느낌이에요. 

https://youtu.be/HVcsrSFIKII

H WWW같은 경우는 영화관 구조를 그대로 살려 단사가 있는 라이브 하우스에요. 개인적으로 키가 작아 항상 발꿈치를 세워야 하는 상황이 왕왕 있는데(웃음), 지난 odol의 공연을 보면서는 그런 수고가 전혀 없었어요.

N 우선 ‘라이브 하우스’에 대한 리스펙트의 반영이란 점은 분명 있어요. WWW는 단사가 있는 구조고, 이후 2관이 폐관하면서 2016년에 만든 WWWX는 플랫한 구조거든요. 심플해요. 저는 공간이 단 하나의 기능을 갖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갖고있었고, 문화는 다양성이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음악 안에서도, 밖에서 다른 장르와도. 예를 들어 당시엔 기타 록 신이 활기가 있었지만 저는 여러 장르의 다양한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 록이라고 해도 조금 다른 타입의 록 음악을 들을 수 있었으면 생각해요. 힙합도 마찬가지고, 음악 외의 아트와 관련한 것도 마찬가지에요. 라이브 하우스이지만, 음악 뿐 아니라 영화, 영상, 그런 것과의 조합도 당시부터 생각했어요. 말하자면 지금은 시티팝이랄지, 록도 그렇지만, 한국 음악이 흥하잖아요. 일부러 메인 스트림의 음악을 하지 않은 건 아닌데, 그 밖에서도 하려고 노력했어요. 


지난 여름 MONO NO AWARE의 라이브는 WWW가 아닌 X였다. ‘스카토’와의 더블 공연이라 잘됐다 싶었는데, WWW엔 한 층을 더 내려가 매우 매력적인 흡연 가능 라운지가 있다. odol의 공연을 보던 겨울, 시간도 마음도 타이트해 한 가치를 다 피우지 못하고 그곳을 나왔지만, WWW 지하는 파리의 실렌시오, 데이비드 핀쳐가 만들어 운영하는 붉은 빛의 와인바를 연상하게 했다. 시부야는 본래 언덕의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내게는 차가운 어둠의 편안한 지하 라운지와 같이 느껴질 대가 있다. odol은 4인조로 구성된 록밴드. 나보다 아마도 조금 키가 큰 미조베 료가 어둠에, 네온 사인에 취해 울부짓는 모습이 울고있는 도쿄와 같았다. 사실 그 날의 odol이 내겐 첫 odol이었는데, 모든 게 나의 이야기로 들렸다. 병원에서 보내던 텅빈 시간 속의 전자 사운드, 핸드폰의 전원을 모두 꺼달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돌연 찾아온 정적 속 외롭고, 차고 찬 우울의 멜로디가,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을 울었다. 갑작스레 응급차를 타고, 갑작스레 3개월을 병실에서 보내고, 갑작스런 꿈을 꾸고, 갑작스레 도쿄에 갔다, 갑작스레 넘어져, 갑작스레 돌아온 험하게 상처난 날들이 왜인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저 그곳에 내가 있어, 다행이었다.

H 이번에도 공연을 하나 보고 싶었는데, 아는 밴드가 하나도 없었어요.(미안한 웃음) 아티스트는 주로 어떻게 선정하세요.

N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아티스트랑 같이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아티스트가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중심으로 진행하기도 해요. 라이브는 여기서 끝나면 그걸 남길 수 없잖아요. 여기(시네마 라이즈)서 하고 싶엇던 것도, 라이브는 남길 수 없기 때문에, 막이 열리고, 끝나고, 그게 끝이기 때문에, 음악의 여러가지 체험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심플한 라이브 하우스에서는 좀처럼 하지 못하는 것들, 물론 어려움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음악적 체험이 충분히 표현될 수 있도록, 우리가 제안하기도, 때로는 아티스트를 서포트하면서, 그런 스탠스로 하고있다 느껴요.

H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의 테이스트랄까요. 베이스가 되는 취향이 닮았을 거라 생각해요.

N 초반에는 전부 제가 정했어요. 정했달기보다, 모두 다 제가 관여했죠. 그런데 지금은 멤버도 늘고, 2017년부터 WWW 라운지에 ℬ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다양한 이벤트도 해요. 기본적으로 서로 듣는 음악, 장르는 다르지만, 가치관이 닮았달까. 자연스레 ‘요즘 누구 들어?’, ‘어떤 음악 좋아’ 이런 얘기 많이 하거든요. 잘 언어화되지 않는, 서로의 공통 포인트는 갖고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걸로 결정을 해요. 

H 서로 다른 장르, 테이스트의 밴드가 공연을 해도, 그 기반이랄까요, 그런 라이브들이 쌓여가면서 어떤 이어짐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축적된 이미지가 WWW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N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매우 기쁘네요.(웃음) 저희는 장르랄지, 서로 다른 사람들간의 조합을 꽤 적극적으로 하고있는지 모르겠어요. 장르랄지, 정해진 틀로는 판단하려 하지 않아요. 무언가 공통되는 것, 그런 걸 찾고 있기 때문에 논의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각각의 디렉터가 결정하지만, 록만 하거나, 힙합을 중심으로 하거나, 그런 것과는 정반대라 생각해요.

H 개인적으로는 WWW는 하나의 시부야같다는 느낌도 받아요. 시부야스러움을 갖고있달까요. 사람도 많고, 특히나 스크램블 교차로는 떠밀리듯 걸어야 하지만, 사쿠라가오카쵸(桜丘町)에 가면 전혀 다른 데시벨이 느껴지고, 근래 오쿠시부(奥渋)라 불리는 곳들도 조용한 동네잖아요. 그래서 그저 복잡하고 시끄럽다고만 얘기하는 건 시부야가 아니라고, 약간의 반감(웃음)을 느끼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서로 오고가고, 스쳐가기 때문에 느껴지는 도시의, 타인의 체온같은 게 있어요.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지만, 누구도 홀로 두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요.

N 그러네요. 좋은 질문이라 생각하는데, 저희가 잘 모르는 부분이기도 해요. 좀 더 하다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부야와의 관계는 아직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H 아마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라서가 아닐까요. 서로 영향을 주거나 받거나 하면서. 저는 시부야란 거리가 저와 맞다고 멋대로 생각하거든요. 도심의 외로움이 느껴지지만, 주눅들지 않고, 나름대로, 멋대로, 외롭지만 멋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N 메모해도 될까요?(웃음, 나토리 씨가 옆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열었다.) 답 하기 전에 중요하니까 먼저 메모해도 될까요? ‘도심의 외로움을 주눅들지 않고, 나름대로 멋지게 살아간다.” 스고이. 지금까지 들은 말 중에 가장 기뻐요. 

H 저는 지금 해주신 말이 가장 기쁘네요.(웃음)

N 시부야도 지금 여러가지로 변하고 있잖아요. 오쿠시부, 사쿠라가오카도 그렇고, 파르코도, 재개발이 여럿 벌어지고 있는데, 문화적으로, 문화론적으로 시부야는 뭐랄까 이야기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그런 자리에 초청을 받기도 하는데, 저는 WWW의 창업자이지만, 단면적으로 나의 장소는 아니랄까. 손님들이랄지, 주변 사람들, 그런 관계로 인한 문화적인 곳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장소란 느낌은 없어요. 그러니까 에고스틱한 나의 장소는 아니죠. 사실 취재는 보통 거절하고 있어요. 근래엔 전부 거절하는데, 주신 메일을 보고 호감을 느껴서, 그리고 저희도 재작년부터 글로벌이랄까, 아시아를 의식하며 돌아보고 있거든요. 서울도 작년에 가서 10곳 정도를 돌아봤고, 홍콩이랄지, 상하이랄지, 컬쳐적 의미에서 공유할 수 있는 가치관이 많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공유해가고 싶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고 싶다 느꼈어요. 

H 한국은 외로움을 감춰야 하는 나라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론 해요. 도쿄는 상냥하게 대해주는 건 아니지만, 누구도 홀로 두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고, 나의 외로움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고, 즐길 수도 있고, WWW에 가면 나와 닮은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그런 무드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의 무언가가 시부야에 있다고 느껴요. 

N 저희가 하고 있는 일들과 시부야는 분명 영향이 있다고 느껴요. 강한 관계성일텐데, 시부야 라이브 하우스이니까 이렇다 저렇다는 판단은 전혀 하지 않고. 지금 해주신 이야기 직원들한테 함녀 모두 기뻐할 텐데(웃음) 메모해도 돼죠? 아마 누군가 비평해주면 좋겠다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기쁘네요. 더 생각해보고 싶어요. 


사실, 시부야를 잘 모른다. 스물 무렵에 처음 도쿄에 가 수 십번은 오고가고, 그곳에 살 땐 시부야 햄버거 가게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곳을 잘 알지 못한다. 유행하는 카페도, 맛있는 런치도, 힙하다는 레스토랑도 아는 게 별로 없다. 다만, 도시를 다니면서, 그건 만남이란 생각을 하고, 만남을 계속 이어가게 되는 건 어쩌면 착각일지 모를 나만의 ‘시부야’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힘들어지지만,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외로움을 본다. 지난 여름 인근의 9층 미용실에선 국도 246길이 내려다보였고, 저녁 퇴근 시간 멈춰선 차들의 행렬이 어디에도 없는 편안함이었다. 이제는 코엔도리(公園通り)를 걸어 마루이가 아닌(지금은 마그넷이 되어버렸지만), NHK 뒷골목을 걸으며 쇼핑할 줄 알고, 흡연을 하고 싶을 땐 도겐자카(道玄坂) 커브 길의 ‘프레쉬니스 버거’ 2층을 찾고, 파르코 지하 서점이 사라진 지금 SPBS에서 밤 10시까지 책을 구경할 줄 알지만, 그건 유행을 찾아 걸었던 날들 때문은 아니다. 아마도 여전히 괜찮게 살고있는, 그곳의 남아있는 나의 외로움 때문. 지난 달 좋아하는 서점 ‘츠타야’의 면접 때문에 찾은 도쿄에선 달랑 하루밖에 시간이 없어 키치죠지 쵸코크로 카페에서 달랑 20분만에 일어났지만, 제대로 구경도 못한 ‘파르코’ 시부야보다, 그 오후의 짧디 짧은 시간이 더욱더 안타깝다. 시절은 흐르고 변해 올림픽은 어쩌면 예정되로 찾아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나는 그곳에서 시부야를 보고싶다. 나는 어쩌면 그곳에서 너의 시부야를 만나고 싶은지 모른다.

H 조금 전 말씀하신 ‘잘 모른다’는 것, 그 자체가 시부야다움이라 생각해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타인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의식하지 않고, 그러니까 일부러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자신의 리듬으로 즐기는, 그런 자연스런 문화의 리듬이 WWW에도 있다고 느껴요.

N 재밌는 이야기네요. 저희는 저희가 하는 것들에 대해 그저 잘 모른다는 느낌인 것 같아요.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게 많고, 일을 할 때는 의외로 회의도 많이 하고, 검토할 건 확실히 체크하고, 그렇게 많이 판단도 거치지만, 시부야에 관해서는 모두 뭐지? 잘 모르겠다인 것 같아요. 재밌는 이야기네요.

H 근래 도쿄에 재개발 프로젝트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시부야 역시 변화가 심상치 않잖아요. 근 몇 년은 올 때마다 공사중이라 생각했는데, 실은 365일 공사인 것 같고, 그럴 땐 어디서도 사라져가는 것들, 무작정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터져나오기도 하는데, 얼마 전 시부야 츠타야에서는 처음으로 도쿄에 실망을 했어요. 좋아하던 6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보이던 타치요미 풍경이 모두 사라졌더라고요.

N 시부야스러움이 옅어지는 느낌. 지금의 도쿄, 재개발과 관련해서 저희는 별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마 영향은 있겠지만, 저희 자신을 향해 생각하는 거, 의식하는 건 아마 없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관광이랄지, 올림픽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와주니까, 그에 대해서는 포지티브한 입장인데, 관광으로 바라볼 때 문화는 역시 퇴보해간다는 느낌도 있어요. 다만, 저희가 생각하는 건, WWW란 플로어에 다양성이 있으면 좋겠다, 아시아 아티스트의 공연, 각국의 손님들, 특정 나라를 타깃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 인종, 국적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상태를, 우리 입장에선 만들려고 하는 감각에 가까워요. 관광이라기보다 문화적 교류랄까요. 역으로 일본 아티스트가 아시아 투어를 한달지, 그런 것들. 시부야스러움에 관해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하룻밤의 모임을 자주 생각해요.

H 시부야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은 어떠세요. 근래에는 역 주변에 여럿이던 흡연 장소도 대폭 축소되었더라고요. 

N 저는 90년대부터, 시부야를 거점으로 놀았다기보다(웃음) 역시나 레코드 가게가 많아서, ‘시스코자카’라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테크노, 하우스 음악을 취급하는 레코드 가게가 있어서, 음반을 사러 자주 다니곤 했죠. 당시엔 인터넷이 그리 활발히 작동하지 않던 상태라, 플라이어랄지, 음악 관련 정보를 찾으러 다녔어요. 제가 느끼기에 중요한 건 젊은 사람들이 별 이유없이 모이는 러프함이고, 개발로 인해 그런 장소들이 점점 없어지는데, 문화를 쇠퇴하게 하는 이유라고도 느껴요. 할 일도 없으면서 시간 떼울 수 있는 그런 느슨한 장소. 스트리트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진다는 건, 마을의 문화가 사라진다는 거고, 시부야는 원래 그런 곳이었거든요. 저도 쇼핑 센터 앞에 그냥 앉아있기도 했고.(웃음) 그런 곳들이 점점 사라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커뮤니티의 계절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도쿄에서 커뮤니티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개인주의 나라, 나와 너의 경계가 명확한 도시, 하물며 곳곳의 캡슐 호텔은 자그만한 박스 안에 하룻밤 혼자만의 시간을 꾸리기도 하는데, 그곳에도 커뮤니티의 계절은 흘러간다. 아마도, 올림픽을 향한 지난한 움직임이겠지만, 캡슐호텔에서 공공의 커뮤니티가 떠오르고, 나에 매몰돼 히키코모리를 이야기하던 도시가 너에게 다가가며, 이어짐, 헤세이 마지막 해 연말의 모리 미술관 전시 테마는 ‘이어짐(つながり)’이었다. 사람 사귀는 게 젠병인 탓에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커뮤니티를 정의하는 말에 물리적인 만남, 육체적인 관계에 한정하는 워드는 단 하나도 없고, 내겐, 그저 시부야가 그렇게 커뮤니티하다. 


N 커뮤니티에 관해서는 저를 포함 스태프 모두 강한 의식을 갖고있어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외로움이란 것도요. 예를 들어 일본의 상황을 이야기하면, 종신 고용이란 게 있고, 그렇게 회사에서 커뮤니티 공동체가 생겨나고, 그런 걸 중시해왔던게 고도 성장기였어요. 하지만 그렇게 격차가 생기고, 중간층이 파괴된 건 아니지만 해체되어 가고, 정치 상황도 비슷하다 느껴요. 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에서 컬쳐적 커뮤니티를 이야기하면, 내가 속하는 곳의 생존성에 관한 이야기라 생각하고, 손과 득을 떠나서 함게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감각은 꽤 강하다 느껴요. 얼마를 벌었나갸 아니라, 같은 걸 좋아하고, 함께 공유하는 감각.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고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 같네요. WWW 안에서도 여러 기획을 하고있는데, 서로 다른 커뮤니티끼리 자연스레 교류하는 ‘오마츠리’랄까요. 보이지 않는 그 무드의 움직임이 조금씩 가시화되어가는 것, 그걸 만드는 게 중요한 역할이에요.


H 이전 기사들을 찾다가’ 좋아하는 것을 해가는 일의 궁극은 ‘호텔’’이란 말을 봤어요. 

N 아마 3년 전 인터뷰에서 한 말 같은데, 정말 호텔을 하려고 한 말이라기보다, 조금 전 커뮤니티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저희가 생각하는 컬쳐라는 걸 인스톨하는 궁극적인 장치로서의 호텔을 생각해요. 도시에서 ‘장소(場)’는 중요하고, 그럼 도심에서 어떤 장소를 만들어갈 것인가, 어떤 사람이 모이고 함께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그 끝엔 호텔이 있다고 느껴요. 

https://youtu.be/wxB5lBauG9E

오모테산도, 국도 246 길변에 ‘꼬뮨2nd’를 운영하는 쿠라모토 쥰을 만나 포틀랜드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미디어 서프’라는 곳에서 말 그대로 다종다양한 미디어를 서핑하듯 도시를 탐색하는 사람이고, 국내에도 발간된 ‘트루 포틀랜드’를 그곳에서 펴냈다. ‘에이스 호텔’이 유행한 건 크래프트랄지, 킨포크 라이프랄지, 눈에 보이는 오가닉한 삶에 대한 수요 때문이겠지만, 쿠라모토는 호텔은 ‘새로움에 가장 열려있는 공간’이라 이야기했다. 자연스레 다국종다인종의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어쩔 수 없는 스쳐감의 교류가 태어나고, 자연스레 커뮤니티의 씨앗이 쌓여가는 곳. 도쿄의 캡슐 호텔이 어쩔 수 없이 갖게되는 공용 토일렛, 라운지에서 함께의 시간을 길어낸다면, 호텔은 본래 태생이 내일, 새로움을 향한 공간이다. 음악을 발신하는, 음악과 라이프, 컬쳐를 제공하는 WWW에서, 그곳을 만든 나토리의 사무실에서, 음악을 이야기하며 그는 “한국에도 얼마 전 다녀왔어요. 라이브 하우스, 클럽 열 곳 정도를 돌았죠”라 이야기했다. 힙합 클럽 한 곳을 이야기해주었지만, 까먹었다. 그런 도시의 찰나들. 한국에서 SIRUP은 어떻냐는 얘기에, 나는 “꽤 아는 사람이 있어요”라 이야기했는데, 그제 SIRUP은 올해의 ‘브렉 쓰루’ 상을 수상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몇 분. 이미 시간은 훌쩍 흘러, 왜인지 봄은 아직도 오지 않고, 모두가 자숙을 하는 시대에, WWW, 그곳의 모회사인 ‘Space Shower Network’에선 취소된 라이브들을 유튜브 중계하고, 그렇게 SIRUP의 라이브를 방구석 책상 자리에 앉아 처음으로 보았다. 해시태그는 #밤을넘어가다 #봄은반듯이온다. 그저 너의 조금의 온기라면, 충분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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