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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05. 2019

타인의 뉘앙스, 도쿄

타인의 평범한 하루가 물들이는 내일이 흘러간다.


그저 아주 조금 다른 시간인지 모른다. 구두를 닦아 마스터. 노상에서 시작해 신쥬쿠 한복판 이세탄 백화점 진출. 올해로 서른인 남자는 할아버지 공방을 이어받아 콜라를 만들고, 일본에서 단 세명 현존하는 여자 목욕탕 벽화 화공 타나카 미즈키는 얼마 전 부상을 당했다. 어쩔 수 없이 취재에 응하지 못한다는 그의 마음이 메일에 짙게 묻어있었다. 일본은 가끔 어제를 닮아있다. 오늘보다 오늘같은 오늘을 살고, 어제를 닮은 내일에 여유를 찾고, 어디에도 없는 설렘으로 내일을 살아간다. 일본엔 '구두닦이 마스터 대회'라는 게 있고, 지난 해엔 29살 테라시마 나오키가, 올해엔 일본에서 구두닦이 최고봉으로 불리는 듯한 하세가와 유야가 트로피를 가져갔다. 교토역 앞 거리, 나고야 중심가 한켠, 수트를 갖춰입고, 머리에 포마드를 곱게 바르고, 샐러리맨들의 한걸음, 한걸음에 광을 내고 빛을 만든다. 길거리 구석에 있지만 가장 빛나는 자리, 콘테이너 박스 속, 구석으로 밀려나는 잿빛의 그림이 아닌  누군가의 한 걸음 곁. 어느 발걸음도 소홀히 하지 않는 타인의 평범한 하루가 물들이는 내일이 흘러간다. 그런, 도쿄를 생각했다.

https://youtu.be/DzsQR1h7TPs

사실 그렇게 아날로그가 그리운 것도 아니다. 딱히 새로운 내일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노 재팬 시대라 하지만 소니의 새로운 이어폰이 불러오는 향수가 그저 나는 아늑하다. 오래 전 학교를 다니던 동네의 모르던 길을 걸으며  커피도, 케이크도, 햇살도, 그저 충분했다. 어쩌면 목욕탕을 개조한, 어쩌면 아닐지 모를 오래된 2층 건물에서 아는 친구의 모르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제자리에 있다. 변해버린 거리를 걸으며, 이미 20년이 훌쩍 흘러버린 시간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밥을 먹고, 나이를 먹고. 계속 나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나이를 먹으니 주책만 늘어 마음은 점점 약해져가지만, 얼마 전 무심코 켠 TV에서 고독한 미식가는 "실패를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실패'라고 말했고, 나는 나일 수 있어 어쩌면 다행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noise canceling. 왜인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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