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서점 '분끼츠' 하야시 이즈미 부점장 인터뷰, 책방과 '만나다'
오자키 유타카를 아시나요? 일본의 뮤지션, 90년대 일본 젊은 청춘들의 대변자처럼 떠올랐다 허무하게 져버린 비운의 음악가. 2019년 잡지 ‘Pen’이 그의 특집을 한 건, 스물 여섯 나이에 세상을 떴던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함이었고, 2019년 4월 25일, 그 날은 이곳이 아닌 멀리, 저 너머에서 맞이하는 그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하지만 20주년도, 30주년도 아닌 그런 날들에 세상은 별 관심이 없고, 어디에도 좀처럼 기록은 되지 않는다. 그의 그 한 권을 사기 위해 지난 5월 도쿄에서 시부야 츠타야를 들렀을 때, 고작 발매 1주일이 지났을 뿐인 그 책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시간은 이미 오래 전 어딘가에 멈춰있는데, 세상은 자꾸만 오늘을 밀어낸다. 6층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면 나란히 서서 잡지를 구경하던 사람들에 이끌려 어느새 곁에 서고, 그렇게 있다보면 한 시간은 금방 흐르곤 했던 시부야 츠타야의 잡지 코너는, 6층과 7층이 계단으로 나뉘어 Shelf67이 되어있었다. 메일로 취재를 하며 그곳의 홍보 담당 타다 다이스케는 “엘레베이터로 이동하는 다른 플로어가 아닌, 계단으로 걸어가는 동일한 플로어”를 의식했다고 했지만, 작은 단사 하나 차이로 곁에 카페 ‘와이어드 카페’가 함께였던 시절이 내겐 더욱 ‘이어짐’의 그림으로 보인다. 단사의 수가 아닌, 사람의 인기척. ‘이어짐’의 말은 분명 그런 뉘앙스의 단어다. 생각보다 많이 달았던 시폰 케이크 하나와 담배 한 대를 피고 포트의 홍차가 다 식기도 전 그 곳을 나왔다. 2019년 05월 첫 날, 4월 말 발매된 잡지를 사지 못했다.
책방이 떠나고, 책방이 찾아왔다
오자키 유타카의 ‘pen’ 특집호 이야기를 하면, 이 책은 그 날 저녁 록뽄기 ‘분끼츠’에서 살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오자키의 음악을 알게 된 건 그가 일본을 흥분하게 하던 그 한복판의 시절이 아니라, 10년도 넘게 지나 3~4년 전 무렵이지만, 오자키 유타카의 영향들, 엑스재팬이랄지, 스마프랄지, 하마자키 아유미랄지, 아무로 나미에랄지, 그런 숫자들로 환기되는 것들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로 남아있는 영향들을 이야기하면, 10년 넘는 무명 시절을 보냈던 록밴드 ‘Creephyp’의 보컬은 이름을 오자키 세카이칸(尾崎世界観)으로 바꿨고, 영화 감독 마츠이 다이고는 ‘내가 나이기 위해서(僕が僕であるために)’를 그대로 차용한 타이틀 ‘너는 너라서 너이다(君は君で君だ)’란 작품을 이케마츠 소스케와 함께 만들었고, 20년 넘게 오자키의 죽음을 추적해온 사토 테루 감독은 지난 해 ‘오자키 유타카를 찾아서’란 다큐까지 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의 삶을 기록한 한 권을 사기 위해 인터뷰가 끝난 뒤 하야시 이즈미 부점장에게 물었다. “펜 있어요?” ‘분키츠’는 국내에선 돈을 내고 들어가는 입장료를 받는 서점으로 화제가 됐지만, 단 880엔 짜리 잡지 한 권을 사며 나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의 자리를 생각한다. 시간에 밀려가지 않고 어제를 기억하는 공간들. ‘분끼츠’가 문을 연 건 2018년 겨울, 그곳은 본래 38년간 책을 팔던 ‘아오야마 북 센터’의 뒷자리이다. 하야시는 “이곳에 맥도날드나 편의점이 생기면 서운할 것 같았어요”라고 얘기했다. 4월, 특히나 1일이 되면 장국영을 기리는 것처럼, 도쿄엔 오자키 유타카를 떠올리는 계절이 있고, 그건 아마 도시가 간직하는 사람의 자리, 어쩌면 책방에 기대하는 오늘일지 모른다. 1500엔, 비싼가요, 싼가요. 저녁 6시, 폐점을 3시간 가량 앞두고 사람은 적지도 많지도 않았다.
Q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에요. 지난 번엔 오전 중에 와서 줄 서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지만, 나갈 땐 행렬이 꽤 길더라고요. 록뽄기 역까지 이어져있었어요. 한국에서도 유료 서점으로 화제가 됐거든요. 좀 남사스럽지만, 1500엔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저항감 같은 건 없어요?
하야시: 들어오기 전에는 비싸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지만, 어떤 거 할 수 있냐고 물어봐요. 실제로 들어와 이용하신 분들 중에서 비싸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었어요.(웃음) 1500엔이란 금액이 무엇에 대한 대가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생각하고, 책방에 들어가는데 돈을 지불했으니 무언가를 얻어야 하는데, 무엇을 얻었냐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생각해요. 많은 걸 얻어간다 느꼈다면 비싸지 않을 거고, 별로 좋은 발견을 하지 못했다면 비싸다고 답하는 것 같아요.
Q 입장료가 있다는 것에 더불어 공간이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있어요. 하나하나 말들이 조금 옛스러워 음독을 몰라 고생하기도 했는데요.(웃음) 지금 말씀하신대로 사람 제각각의 사용법, 책방의 서로 다른 다섯가지 사용법을 제안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하야시: 말씀하신 대로 그런 의미에요. 손님에 따라 이곳에서 지내는 방식이 여러가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뒹굴며 지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집중해서 잡업을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그 날의 목적, 집중해서 책을 읽고 싶다거나, 기분에 따라 다른 사용법이 가능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에리어를 준비했고, 그 중 킷사실(喫茶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있어요. 하루종일 있어도 괜찮겠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고, 책을 마주하는 것 역시 그 관계가 깊을 수도 있지만 얕을 수도 있고, 얕을 때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어요. 책과의 사귀는 방법을 다양화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분키츠’는 들어서면 오른편에 작은 전시 공간(전시실), 왼편 계단의 벽을 활용해 잡지 코너가 있고, 카운터에서 입장료를 지불하면 동그란 뱃지를 준다. 그걸 몸에 착용하거나 지참하면 그곳에서의 자유로운 시간이 확보되는 상태. 조금 들어가 몇 개의 계단을 오르기 전까지, 그러니까 전시실과 잡지 코너는 무료로도 이용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르면 아트, 디자인, 문학, 코믹스 등 마음대로 책을 골라볼 수 있는 ‘센쇼실(選書室)’, 느긋하게 책을 음미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1인 스탠드로 구비된 ‘열람실(閲覧室)’이 있고, 그 뒤로 회의를 하거나 독서 토크를 진행하거나, 3인 이상이면 이용할 수 있는 ‘연구실(研究室)’이, 1500엔 입장료에 포함되어있는 무한 리필 커피와 차에 더불어 10여 가지의 간단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킷사실(喫茶室)’은 들어가 바로 정면에 넓게 준비되어 있다. 책과의 깊은 관계, 집중해 독서를 하는 시간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여지없이 취재로 찾은 그곳에서 나는 먹지 못한 뒤늦은 점심을 그곳의 하야시라이스로 떼었다. 레이 카와쿠보, 언더커버, 요지 야마모토의 두터운 양장본 책을 한 켠에 두고, 그 날의 그 오후가 지금도 종종 생각나곤 한다.
“신간도 구간도, 잘 팔리는 것도, 팔리지 않는 것도 동일하게 취급해요”
Q 말씀하신 대로 서점 내에 의자도 있고, 소파도 있고, 카펫이 깔린 거실같은 공간도 있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구성이에요. 하지만 독서는 아직까지 혼자, 집중해 책을 마주하는 일이란 인식이 있고, 그래서 이런 공간들, 기존의 틀을 벗어나, 혼자의 시간에서 벗어나 그려내는 공간이 일종의 커뮤니티를 의도한 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어요.
하야시: 책은 느긋하게 혼자 읽는 것만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요. 지금 여기(인터뷰를 하던 곳)는 연구실이란 이름이고, 회의를 할 수 있게 만든 건, 책을 읽다 무언가 막혔을 때, 생각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힌트가 될만한, 뭐랄까요, ‘번뜩임의 통로’같이, 자극을 받고 사고가 유연해지고, 깊어질 수 있도록 궁리했어요. 뒷쪽 책장에 책들을 진열한 것도, 계속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눈에 들어온 책에서 힌트가 될만한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책과의 밀도로 따지면 이곳(연구실)은 비교적 얕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강렬한 만남이랄까요, 그런 걸 지향하고 싶었어요.
Q 요즘은 책방이 힘들다고 하잖아요. 심지어 하루에 세 곳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도 보았어요. 반면 그만큼 새로운, 기존과 다른 책방들이 많이 늘어난다는 느낌도 받는데요, 이러한 책방의 다양화, 새로운 독서의 방식이 지금의 책방 업계, 위기를 타계할 방법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하야시: 저는 독서 자체도, 책방도 좀 더 다양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책방은 좀 더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생각하고, 책도, ‘책을 산다, 읽는다’처럼 진지한 것만이 아니라, ‘그냥 가봤는데 재밌네’와 같이, 좀 더 편하게 접하는 방식도 전혀 좋다고 생각해요. 독서에 대한 의지도 중요하지만, 좀 더 자유로운 사용법이 있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느껴요. 저희는 에리어를 여러 개로 나누어 놓았고, 그만큼 손님 본인에게 맡기는, 어떻게 사용해줄지, 가능하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고 싶어요. 손님들의 그런 시간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이랄까요. 그 시간이 방해되지 않도록 기반을 마련해놓는 게 '분키츠'란 책방의 역할이라 생각하죠.
Q 그런 면에서 ‘책방은 이제 더이상 책을 파는 장소가 아니다’란 말이 점점 현실이 된다는 느낌도 받아요. 오히려 지금의 변화를 보면 다소 철지난 얘기처럼도 들리고요.
하야시: 책방은 책을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정보를 취함하고, 수집하는 장소이기도 해요. 그리고 어떤 정보를 취하느냐는 손님에게 맡겨도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책방들은 베스트셀러랄지, 신간, 잘 팔리는 것들을 중심으로 어필하고, 혹은 책방을 운영하는 쪽의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내며 ‘이걸 팔고싶다’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만, 물런 그런 책방에도 재미는 있고, 그런 곳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좀 더 손님이 능동적으로 책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갖추고 있는 3만 권은 모두 한 권씩만 두었고, 신간도 오래된 책도, 잘 팔리는 것도, 팔리지 않는 것도 동일하게, 플랫하게 취급해요. 그런 의미에서 책방 각각의 농도 차가 생기는 것 같아요.
Q 책방에 들어서면 왼편에 잡지 코너잖아요. 그런데 그 잡지 책장의 랙을 열면 그 안에 관련 서적이 들어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어디에도 써있지 않아서 그냥 왔다가, 조금 분하다 싶었죠.(웃음) 최근 도쿄에서 ‘이어짐’이란 키워드가 자주 보인다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책과 책의 이어짐을 의식했다는 생각도 들었죠. 한 권의 책을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게 시작일 수 있는, 점점 이어지고, 그만큼 책과의 시간이 넓어지는, 어쩌면 지금의 책방 사정도 풀어주지 않을까란 기대도 조금 들더라고요. 잡지 책장은 어떤 흐름의 작업이었나요.
하야시: 말씀해주신 그대로에요.(웃음) 잡지는 사실 놓을까 말까 고민했어요. 지금은 일본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잡지가 너무 팔리지 않고, 진열을 한다고 해도 절반 이상이 반품되는 상황이니까, 잡지를 취급할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때, 여기 아루치 카즈키도 같은 팀이었는데, 잡지가 팔린다고 들이지 않을 게 아니라, 잡지의 기능, 장점, 사용 방식을 생각하자고 이야기했여요. 잡지의 장점이라면, 여러 특집이랄지, 편집에 의해 정보를 큐레이션하는 매체잖아요. 그래서 무언가 알고 싶을 때, 서적은 테마가 핀 포인트라 어디서부터, 무엇보다 건드려야 할지, 읽어야할지 모르지만, 잡지는 하나의 ‘입구’로서 접근하기 쉽다랄까, 흥미의 계기로 진입이 비교적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흥미의 입구, 문으로서요. 그렇다면 실제 문을 이미지화해서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었고, 그렇게 지금의 모습이 됐어요. 흥미의 문을 연다는 게 책의 문을 여는 것이라 생각하고, 책을 열면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비유가 아닌 실제 형태로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죠.(웃음)
Q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재밌다 느꼈어요. (웃음) 근데 선전을 거의 하지 않으셨죠. 이 콘셉트는 전시실 테마로 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하야시: 취재받을 때는 말하기도 했지만, 굳이 표지를 만들어 알리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기는 했어요. 모두에게 ‘여기 열어보면 좋아요’라고 일일히 조심스럽게 말할지, 알아차리는 사람만 알고 즐기는, 조금 시크릿한 곳으로 남겨둘지.
흥미의 문을 열어주는 70개의 작은 문
Q 그 아이디어가 실용적이라 느낀 건, 실제로 개인적으로는 잡지를 읽다보면 체크를 하곤해요. 흥미가 있어서 나중에 찾아봐야지 하고, 접어두거나 해요. 결과적으로 거의 찾아보지는 않지만요.(웃음) 그런데 랙 안에 관련 서적이 있다는 건 그걸 도와준다는 거잫아요.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여기가 원래 ‘아오야마 북 센터’의 록본기 지점 자리였어요. 38년간 운영을 했던. 이곳에 문을 열기로 한 이유는 어떤 건가요.
하야시: 지금 ‘분끼츠’ 오너와, ‘닛판(일본출판협회, 日本出版販売, 관공서 이름같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다)’이란 회사가 같이 진행한 기획이에요. 리스트리뷰터, 책 중개 업자인데, ‘아오야마 북 센터’도 저희(닛판) 거래처였고, 하나의 서점으로 책을 도매했어요. 그런데 그곳이 폐점한다고 해서, 거래처이기도 했고, 그와는 다른 축으로 ‘분키츠’ 기획은 진행되고 있던 참이어서, 장소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 이곳으로 정하게 된 거에요. 입지랄지, 유동 인구랄지 검토하고, 그 이상으로 40년 가까이 책방을 했던 곳이라서, ‘록뽄기 문화’의 상징이기도 해서, 그런 곳이 닫는다면, 편의점이나 맥도날드 같은 게 들어서면 좀 아깝다,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책방 경영이 힘들다고 하지만, 하루에도 3곳이 문을 닫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보기만 하는 건 움츠러들 뿐이고, 정말 어디에도 방법이 없는 걸까 생각했을 때, 그렇지 않다는 걸 실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이곳으로 한 이유도 있어요. 그런 마음을 부동산 주인(웃음)에게 전했고, 몇 번 이야기를 하며 부탁을 해서 빌릴 수 있었어요.
Q ‘아오야마 북 센터’는 아침 8시까지 영업하고 그러지 않았나요? 독특한 서점이란 인상이 있었어요.
하야시: 아마 5시까질거에요. 90년대 전반 정도까지 아침 5시까지 문을 여는 시스템이었어요. 이후에 일단 스톱하긴 했는데, 그래도 꽤 상징적인 책방이었죠.
Q 보통의 책방과는 다른, 팬도 많은 책방이란 점에서, 그리고 38년의 숫자에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하야시; 아...있었어요. 꽤 전설적인 곳이라, 팬이 많은 책방이라, 모두의 청춘 시절이랄지, 추억의 장소이기도 해서, 그걸 훼손하면 안된다, 어떻게 잘 계승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저도 매우 좋아하던 책방이라, 왜 제가 이 책방을 좋아했는지, 그 기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공간 만들기, 책 고르기에 반영했던 것 같아요.
Q 왜 좋아했던 것 같나요?(웃음)
하야시; 음...뭔가 계속 있을 수 있네 싶어서(웃음)...취급하는 책도 그렇고, 뭔가 좋은 의미에서 확 드러내지 않는, 나서지 않고, 좀 숨기려는 느낌이 있었어요. 들어가면 가장 메인 진열대 히라다이(평대, 平台)에 독특한 미술서가 있달지, ‘여기에 이걸 두는 거야?(웃음)’ 싶을 정도로, 그런 독자성 같은 게 있었어요. 단지 시중에 팔고있는 것만은 팔지 않는다는 의지같은 걸 느꼈기 때문에, 그런 철학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앟던 것 같아요. 그 뿐 아니라 무엇을 팔 것인가, 책을 놓아두는 방식이랄지, 뭐랄까요, 책방으로서의 도전 정신? 도발적이라고 말하면 실례지만, 능동적이랄까요. 그런 것들. 지금 와 생각하면 매우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하고, 그런 게 좋았다고 생각해요.
Q 입구에 들어서서 왼편의 계단(지금의 잡지 코너)은 본래 있던 계단 구조를 그대로를 살렸어요. 오래 전의 것을 살려서 새로운 것을 마든다는 건, 어떤 마음이었나요?
하야시: 새로 책방을 한다고 해서, 전혀 새롭게 한다는 건, 이전의 것을 소중히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혀 다르게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역시나 책방을, 업데이트란 말은 좀 그렇지만, ‘책방 네오(noe)’랄까요. 다른 형태의 책방을 하는 방식으로 이전의 책방을 계승하는 방식을 고민했고, 전혀 다른 것으로는 본래의, 이전의 것을 이어갈 수 없고, 그렇게 할 마음은 애초 없었기 때문에, 여기가 사랑받았던 이유, 내가 이곳을 좋아했던 이유를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이 계단도 그렇고, 저 벽(연구실 구석의 벽)도 예전 것 그대로에요. 책장을 뗴어냈더니 저런 게 나오더라고요. 그걸 일부러 남겨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두었어요.
“요즘엔 좋아하는 책방이 자꾸 없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제가 신입 사원으로 ‘키노쿠이야’에서 일했을 때, 그곳이 신쥬쿠 남부 지점이었는데, 그곳도 없어졌거든요. 시대가 변하면서 없애지 않는 게 답은 아니겠지만, 없앤 다음에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 곳을 좋아했던 이유, 그런 유산
Q 근래 도쿄를 비롯 다양한 형태의 책방이 늘어난다고 느껴요.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의 츠타야는 ‘셸프67’이 되었고, 카페, 바, 그리고 간단한 음식도 제공해요. 소위 융합, 심리스의 변화들이라고들 하는데,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세요.
하야시: 저도 여러 종류의 책방이 있다고 좋다고 생각해요. ‘키노쿠니야(紀伊国屋, 신쥬쿠 동쪽 출구, 소위 ‘알타 스튜디오’ 옆, 만남의 장소로 많이 쓰이는 대형 서점)’라고 아세요? 제가 거기 영업 담당을 했어요. 그래서 더 여러 타입의 책방에 익숙하달까, 역시 큰 책방은 큰 책방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예산도 충분하고, 주최하는 행사랄지 그런 것들이 지금 저희랑은 전혀 차원이 다르죠. 하지만 그런 곳만 있거나, 우리같은 곳만 있으면 재미없다 생각해요. 철학이랄까, 책방에 대한 나름의 시선을 갖춘 책방이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준비해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본래 ‘닛판’이란 중계업자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중계 업자로서도, 출판사로서도, 책방에 무엇을 환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그 뿐 아니라 책 업계를 벗어나, 부동산이랄지, 다른 업태, 광고 등 그런 사람들과 서로를 채워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존속할 수 있게 갖춰가는 것, 남아있고 싶은 사람들이 제대로 영업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갖춰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여러 책방이 존재할 수 있고, 손님은 경우에 따라, 취향에 따라 책방을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저 선택받을 수 있도록 준비할 뿐이죠. 어려워요.(웃음)
Q 그리고, 제가 어젯밤 신쥬쿠 카부키쵸의 ‘북 앤드 베드’에 묵었는데요. 책이 그렇게나 많은데 책방은 아니라는 느낌이었어요. 그저 책과 함께 있다는 감각이랄까. 반면 어쩌면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저 책을 조금 더 일상에 가져오기 위한 공간들이 그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야시: ‘북 앤드 베드’는 책방이라고 하면, 저도 별로 그런 느낌은 없어요. 책과 함께 공간에서의 시간을 지낸다는 의미에서 책방으로 수렴되고, 그런 형태로서는 좋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책을 만나는 하나의 기회니까요. 그런 기회가 줄어드는 것보단 늘어나는 게 당연히 좋은 일이죠. 하지만 저희같은 경우에는, 일하는 입장에서도 정말 ‘책방’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물론, ‘만난다는 것’, 책 한 권을 만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지내다’, ‘알다’, ‘만나다’, ‘읽다’, 책의 여러 용도가 있다면, 저희는 ‘만나다’인 거죠. 하츠다이(初台)에 ‘후즈크에’란 책방이 있어요. 거기는 정말 읽기 위한 공간, ‘읽다’에 특화된 가게에요. 그렇게 ‘읽다’와 우리는 ‘만나다’, 그리고 ‘북 앤드 베드’는 ‘지내다’, 지금까지는 모두 한 종류의 책방이던 것이, 세세하게 분류를 나누어 다양한 모습을 그려간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책방이란 개념(受け皿)이 이 만큼의 책방 만을 받아들였다면, 그걸 늘여감으로 인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필연적으로 그릇이 커져가는 걸 의식해요.
Q 모두 3만 권의 책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3만 권 모두 원 타이틀 한 권이고, 진열을 바꾸는 주기나, 센쇼의 기준은 어떤 것들이에요?
하야시: 정기적으로 바꾸지는 않아요. 신간은 매일 나오잖아요. 신간을 넣고 있기 때문에 매일 반듯이 조금씩은 달라져요. 동시에 책이 팔린 자리에 다시 한 번 그 책을 넣을 것인가, 아니면 넣지 않을 것인가, 그건 책마다 다르고, 책 하나하나에 대해 어떻게 할지 스태프들과 이야기하며 정해요. 그래서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진열도 매일 조금씩 차이를 두려고 해요. 놓는 장소를 바꾼달지, 미묘하게 매일 바뀌는 거죠
Q 책이 팔렸을 때 그 책을 다시 둘지, 혹은 책을 바꿀지에 대한 기준은 어떤 건가요? 분명 매상 만은 아니라 생각해요.
하야시: 일단 전체적으로 장르로 책들을 명확히 나누고 있어요. 그리고 ‘핵’이 되는 책을 처음 3만 권을 고르는 단계에서 먼저 정해요. 예를 들어 ‘핵’이 되는 책을 정하면, 그 책에서 이 책으로 이어지고, 그걸 ‘혼도오시’라 하거든요. 책간의 이어짐을 의식하기 때문에 새로 출판된 책이라 하더라도 그 책이 어떻게 이곳에서 이어짐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 안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혹은 새로운 ‘핵’이 되는 책일지, 전체적인 밸런스를 궁리하죠.
Q 3만이란 숫자는 어떻게 나온 계산이에요? 계속 유지하실 예정인가요?
하야시: 저희는 확실히 ‘아오야마 북 센터’의 장서보다는 훨씬 적은 절반 정도일텐데, 책이 없어보이거나 숫자가 적으면 그만큼 선택지가 좁다는 거잖아요. 그건 책과의 만남을 줄이는 거라 생각하고, 그래서 나온 숫자가 3만 권이에요. 2만 5천이어도, 3만 5천이어도 사실 별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넣어보고 ‘꽉 찼다’는 느낌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서, 이 숫자는 유지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실 더 이상 들어가지도 않아요.(웃음)
‘읽다’와 ‘지내다’와 ‘만나다’, 책방의 농도
Q 기본적으로는 장르별로 나누고, 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하지 않고의 구성인데, 선택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소외를 낳는 일이기도 하다고 느껴요. 얼마 전 스다 마사키의 라디오를 듣다 한 청취자가 다이칸야마 츠타야에 갔다가 사려는 책이 없어 ‘잘난척 하네’라 얘기하더라고요.(웃음) 우스개 소리지만, 그 기분이 알 것도 같았거든요. 근래의 책방들은 나름의 개성들을 갖추지만, 그렇게 커스터마이즈 적인 요소가 늘어날 수록 소외받는 부분도 생겨나는 건 아닐까요.
하야시: 뭐랄까. 소외라기 보다는, 책은 당연히 형태가 있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한계는 어찌할 수 없어요. 놓을 수 있는 제한적인 공간이라는. 그래서 실제로 놓고싶지만 좋지 못하는 책이 정말 많아요. 저희는 소외라기보다는, 선택한다는 의식이 강하고, 그 대신 고르지 않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른 것과 고르지 않은 것, 골랐다면 왜 골랐는지를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게 중요해요. 이건 다양화와도 이어지는데, 저희가 고르지 않은 책을 다른 어디 책방에서는 고르곤 하잖아요. 그러면 손님 입장에서는 본인이 찾는 책이 있는 곳, 자신에게 좀 더 다가오는 책방을 좋다고 느낄 테고, 그렇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Q 확실히 언젠가부터 책방엔 모든 책이 전부 다 있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네요. 요즘은 특히 아마존 때문이겠지만, 규모에 따라 이 책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나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 것도 같아요. 하지만, 잡지 코너의 경우 정말 마이너한 잡지들 뿐이더라고요. 모르는 잡지가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도쿄진’이랄지, ‘보그’도, ‘바자’도 없고, 이런 라인업은 어떤 궁리에서 나온 건가요.
하야시: 잡지 코너 역시 장소적인 한계로 무엇을 놓을지에 대해 많이 숙고해요. 지금은 좀 늘이거나 줄일까 조절하고 있는 중인데, 고른 기준은, 잡지는 면(面)으로 놓잖아요. 표지가 바로 보이는 거기 때문에, 하나의 장정으로서 아름다운지, 매호 일정 퀄리티가 유지되는지, 그리고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지. 만드는 사람의 열의랄까요, 그런 게 전해지는 게 좋다고 느껴요. 저희가 매출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통 서점에선 볼 수 없는 ‘벌레(虫)’라든지, 아는 사람만 아는, 정기구독하는 사람들만 알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알면서 정말 놀란 게 많거든요. 매우 재밌다 생각하고, 그걸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렇게 보아주시면 기쁠 것 같아요.
Q 근래의 도쿄를 보면 ‘이어짐(繋がり)’이란 말을 자주 떠올리게 해요. 지난해 록뽄기 ‘모리 미술관’의 마지막 전시도 ‘이어짐’이 테마였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책과의 이어짐, 그리고 그에서 나아가 책과 사람의 이어짐, 사람과 사람의 이어짐의 그림이 지금의 도쿄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런 경향은 근래의 일인가요?
하야시: 최근에 확실히 강해진다는 느낌은 받아요. 저는 역으로 해외 사정을 전혀 몰라서, 서울이나 미국이나 밖에서도 책방이 어떤 거점이 된다는 뉴스는 접하지만 실제로 체험한 적은 없어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책방 뿐 아니라 예를 들어 식당이나 잡화점에서도 서로 다르지만 각각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마을을 부흥시킨달까요. 그런 의미엥서 ‘이어짐’은 확실히 지금의 키워드가 되어간다고 생각해요.
하야시 라이스와 링고 쥬스와 Rei Kawakubo
Q 더불어 ‘킷사뗑(喫茶店)’의 존재가 부곽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제가 외부인이라설까요?(웃음) 최근 ‘쥰킷사’란 말도 유행했고, ‘분끼츠’에도 ‘킷싸실’이 있잖아요. 전 지난 5월에 하야시 라이스를 먹었어요.
하야시: 그곳은 ‘스마일즈(Smiles)’라고, ‘분끼츠’ 내장 인테리어랄지, 전반적인 콘셉트, 디자인을 함께 진행한 회사가 있어요. 메뉴는 기본적으로 그곳에서 구상을 하고, ‘도쿄 수프 스톡(Tokyo Soup Stock)’이라고 아세요? 전체적으로, 나폴리탄은 좀 예외지만, 킷싸의 오래된 느낌을 의식했고, 가능하면 스푼 하나로 먹을 수 있는 것, 한 손에 책을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구성했어요. ‘킷사뗑’스러움을 중시한 면은 있어요.
Q 오늘 아침에도 ‘도쿄 수프 스톡’ 먹었어요. 부드러워서 아침에 딱이라 올 때마다 먹는 것 같아요.(웃음)
하야시: 밥을 거기서 개발해요. 저도 맛있어서 좋아해요. 소재도 나름의 고집이 있고, 저희의 외부 컨설팅을 담당하기도 해서, 입장료 아이디어, 점포 내부의 ‘보이는 방식’이랄지, 이런 것들을 함께 정하기도 해요.
Q ‘아오야마 북 센터’는 아침 5시까지 했고, ‘분끼츠’는 밤 11시까지 문을 열어요. 밤에 불을 밝히는 서점, 이라고 하면 도시만이 가질 수 있는 로방이란 느낌도 있어요. 동시에 책방이 일상에 좀 더 스며들어간다는 느낌도 들고요.
하야시: 늦게까지 영업하는 건, 보통 회사에서 일이 끝나면 19시 정도잖아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들려서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19시에 끝나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 신경 쓰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생각하기 때문에, 23시로 정했어요. 폐점 다 되었다고, ‘빨리 돌아가주세요’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막차 신경 쓰지 않고 충분히 책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 23시라 생각했어요.
이 글은 4월 30일, 새로운 연호 ‘레이와’ D-1, 비오는 록뽄기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이제야 적어보는 지난 시간의 기록이다. 이상하게 유독 변화하는 도쿄의 지난 여름을, 무엇으로도 남겨두고 싶어 시작한 기획은, 여러번의 메일이 오고가다 어그러졌고, 그렇게 몇몇 잡지에 조금씩 그곳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원고 몇 개를 쓴 게 전부였다. 오랜 쉼의 시간 이후 조금 움직여보려 했던 당시의 나는, 기사가 실린 책을 보낼 재량도, 부탁할 능청도 모자라, 동네 우체국에 가 개당 7만 원이 조금 넘는 우편을 세 곳에 보냈었다. 그 날의 1/10도 되지 않는 그 몇 자가 그곳에 도착할 생각에 마음은 오래 불편했다. 하야시 부점장은 책과 관련 다양한 기획을 하고싶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는데, 얼마 전 ‘분끼츠’와 '트라이 픽스'가 함께하는 책을 보면서 마시는 맥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내가 잊고있던 사이 그곳에서의 이야기는 오늘도 하루의 일상을 쌓아가고, 나는 이렇게 많이 늦은 이 시절에 다시 한 번 그곳을 생각한다. 비자도 막혀버린 지금, 이 글은 또 얼마나 무력할까 싶지만, 그 날의 난 매우 씩씩했다. 록뽄기 ‘분끼츠’는 이제 막 시작한 두 살배기 도쿄의 책방이다.
THANKS to IZUMI HAYASHI, KAZUKI AR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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