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없지만, 그곳을 생각하는 것. #의 서점
책방이 변신을 하기 시작했을 때, 잡화를 팔고, 작은 커피 스탠드를 곁에 두고, 테이블에 몇몇 그림을 장식하기 시작했을 때, 이건 어쩌면 책을 읽으며 벌어지는 하루의 편집본이란 생각을 했다. 지난 여름 호스텔과 책방을 섞어놓은 신쥬쿠 카부키쵸의 'Book and Bed'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도, 책장에 묻힌 객실 문을 열고 잠에 들었지만, 책을 읽다 잠이 드는 건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Book and Bed'는 부동산 회사 R-Store에서 프로듀스하는 공간이고, 그걸 기획한 리키마루 씨는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자기 싫어지는 날"같은 걸 염두하고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이야기했다. 책을 읽다보면 커피가 마시고 싶기도 하고, 배가 고파질 때도 있고, 가끔은 술이 생각날 때도 있는데, 도쿄 하츠다이, 신쥬쿠에서 한 정거장 거리엔 그야말로 그런 책방이 있다. 책상을 의미하는, 하지만 잘 쓰지는 않는 다소 옛스런 이름, 文机. 이미 6년 전 문을 열었고, 주인 아쿠츠 타카시는 사실 책과 별 인연도 없는 사람이다. 책방엔 모두 1만 2천 권 정도의 책이 있지만, 아메리카 문학을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따라 북남미 문학 서적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여기에선 책을 살 수가 없다. 오직 읽기 위한 곳, 책과의 밀도 높은 시간을 지향하는 곳. 책의 사용법은 다종다양하게 변해가지만, 커피도 팔고, 밥도 팔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그렇게 별난 '후즈크에'는 가장 오래된 책과의 시간을 그린다. 어쩌면 책이니까, 혹은 도쿄라서 벌어지는 그림들. 코로나 시절을 맞아, 그는 또 별난 아이디어를 하나 공개했다.
'3월 한달은 문을 닫습니다 & 자택 후즈쿠에를 개최합니다.' 도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후즈크에는 독서를 하는 공간이고, 돌아보면 그 행위에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고, 아쿠츠 씨는 '태그를 덧붙여 여러분의 독서 시간을 알려주세요'라고 썼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해도, 벌써 몇 주가 되어가는 사이 #自宅フヅクエ가 붙은 트윗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별 도움도, 의미도 없을지 모르지만, 문장이 쌓여간다. 본래 후즈쿠에엔 몇 가지 보기에 따라선 황당한 룰들이 있는데, 어쩌면 이건 책들이 가져다주는, 책이기에 꿈꿔보는 작은 희망같은 건지도 모른다. 무슨 일인지, 몇 달 전 '한겨레21'에 기사를 쓰며 정리해두었던 인터뷰 파일은 실종됐고, 그나마 남아있는 그의 말들을 다시 한 번 옮겨본다. 먼저 그곳의 룰을 소개하면, '동반 입장은 가급적 사양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왔을 때는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주세요. 책 외의 작업을 하실 수는 있지만, 노트북 사용은 자제해주세요.' 카페에서도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겐 꽤나 너무한 조건이지만, 그곳엔 오리지널 탄 카레가 있고, 10여 종의 칵테일을 마실 수도 있고, .아이리쉬 커피도 있다. "책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손님들에겐 '심하다'고 느낄만한 룰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너와 너'의 서점 영업 시간은, 12시 개점 22시 폐점. 갑자기 좁아져버린 생활 반경에 마음은 좀이 쑤셔도, 일상이라는 건 해시태그에 담아보는 의지, 용기, 그리고 희망같은 것들에도 일어난다. 그곳에 없지만, 그곳을 생각하는 것. 그저 그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코로나 언제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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