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지속되는 엔딩, 그러니까 영원한 휴가.
오가는 사람들이 꽉 매운 빌딩 숲, 쓰레기만 나뒹구는 텅 빈 골목. 길 위를 거니는 사람들과 황폐한 거리 한켠에 덩그러니 놓여진 차 한대. 카메라가 한 도시의 상반된 두 모습을 교대로 비춘다. 소음과 정적이 교차한다. 그리고 이 안으로 웬 남자 하나가 걸어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일리시어스 크리스토퍼 파커. 남자는 페인트 스프레이를 들고 거리에 낙서를 하기 시작하더니 벽 한 쪽에 '알리, 진짜 끝내준다'라고 쓴다. 알리, 이는 일리시어스 크리스토퍼 파커의 애칭이다. 이후 영화는 이 남성의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의미심장하다. "이야기들의 점을 하나씩 연결하다보면 마지막엔 어떤 그림이 될 것이다. 나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갔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다." 일리시어스 크리스토퍼 파커는 방랑자다. 그는 떠돈다. "시간이 지나 느낌이 왔"을 때, "어떤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을" 때 그는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난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를 떠남의 길로 이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파커가 찍는 점, 그 점이 그리는 그림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파커는 ('알리, 진짜 끝내준다'라는 낙서에서 암시가 되지만)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전쟁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그곳으로 가 건물의 잔재를 밟으며 걷는다. 뒤이어 아빠의 죽음 이후 미쳐버린 엄마를 찾아가고, 계속 걸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베란다에 나앉아 헐벗은 채로 뭔지 알아 듣지 못할 노래를 부르는 여자, 거리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남자, 극장에서 팝콘을 파는 여자 등. 이렇게 여러 개의 점을 찍는다. 이 중 극장에서 만난 흑인 남자와의 대화가 또한 의미심장하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는 색소포니스트는 자신의 자리를 찾으러 끊임없이 유랑한다. 그렇게 미국에서 유럽으로 떠난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그의 처지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거리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의 다음 소절을 기억해 내지 못한 채 같은 멜로디만 반복한다. 이 남자에게 크리스토퍼 파커의 모습이 겹쳐진다. 기억나지 않는 멜로디와 보이지 않는 그림, 이렇게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기한 없이 유예된다.
크리스토퍼 파커는 혼자다. 차를 훔쳐 파리 행을 결정한 뒤 집에 돌아오니 여자 친구인 엘리아는 떠나고 없다. 그는 모두가 다 혼자라 생각하고, 그것이 자신이 계속 떠나는 이유라고 말한다. 사회 생활 4년차 무렵 회사가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거리를 자주 배회하던 때가 있었다. 여기가 아닌 저기가 더 궁금했고, 이곳의 내가 아닌 다른 곳의 내가 되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가, 이곳이 아닌 곳의 그림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바다를 건너 도쿄에 가서도 나는 꽤나 많은 길을 걸었다. 더 많이 걷지 못해 답답했고, 그래도 보이지 않는 그림에 서러웠다. 계속 걷고 있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짐 자무쉬가 <영원한 휴가>를 만든 게 스물 일곱 때, 크리스토퍼 파커의 극중 나이가 대략 스물 다섯, 짐 자무쉬 감독은 다소 자전적일 것 같은 이 이야기를 통해 영원히 방황하고 떠나야 하는, 그렇게 되고야마는 우리의 필연적인 삶을 그린다. 뉴욕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크리스토퍼 파커가 탄 배 위로 '오버 더 레인보우'가 흐른다. 그런데 멜로디가 자연스레 이어지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바다를 가르는 배와 끊임없이 일어나는 물보라, 영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지속되는 엔딩, 그러니까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