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03년, 왜인지 오다기리 죠를...생각하다.
오다기리 죠를...생각하다
세상이 돌연 방문을 굳게 닫고 꽁꽁 얼어붙은 시대, 오다기리는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이상한 촬영을 하고있었다.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이라는 시절 이시이 유야는 그의 첫 ‘한일 합작' 영화를 만들었다. 그건 오다기리의 어눌한 (좀 저렴한 표현이지만) ‘에로 오야지'처럼 밖에 들리지 않는 한국어 만큼, 이상하고, 또 이상했는데, 예고편을 보고 난, ‘잘못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같네'라 중얼거렸다. 영화의 제목은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원제는 ‘아시아의 천사(アジアの天使).’’ 그렇게 현실과 너머를 방황하던 너의, 혹은 나의 이야기가 에구머니..불시착! 떨어져버렸다. 하지만 가혹한 시절 이 영화를 지탱해준 건 ‘상호 이해'이란, 어떤 순진무구의 이상이었고, 몇 번의 당혹스러움과 놀람, 몇 번의 민망함을 무릎쓴 눈물을 지나 난, 이건 빔 벤더스의 ‘베를린의 천사'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여기도 거기도 아닌, 바로 나의 곁, 나로부터의 ‘천사.’ 하지만 현실에 천사는 보이지 않고, 결국 중요한 건 당장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 이 시절의 합작, 그 영화는 보기좋게 흥행에 실패했다.
오다기리 죠의 요즘이 이상...수상하다. 최근 그의 작품이라면 대부분 드라마 조연(심지어 까메오)이거나 몇 편의 합작 영화들 뿐인데, 2019년 첫 장편 연출작 ‘어느 선장의 이야기'가 어쩌면 그 시작...예고였는지 모르겠다. 사실 어느 하나 알고보면 예고없이 찾아오는 ‘오늘'이란 없으니까. 오다기리, 그는 오래 전부터 품고있던 영화 제작, 연출, 혹은 그 너머를 향한 ‘창작자'로서의 2막을 요즘, 펼쳐보이는 모양새다. 바로 얼마 전 NHK에선 각본부터 연출, 캐스팅과 심지어 편집까지 모두 도맡아 완성한 드라마 ‘올리브한 개 gosh!! 이 녀석'를 선보였고, 그 작품은 근래 히트작 고갈이란 일본 TV 업계에 작고도 의미있는 반응을 불러모았다. 무엇보다 OTT가 기세를 뻗치고 광고주 만화 원작 중심의 TV 드라마가 여전히 텃새를 과시하는 가운데, 오다기리의 이 드라마는 이야기, 창작, 영상 콘텐츠로서의 표현,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오늘이 늘 어제에게 그랬듯. 좀 마케팅적으로 이야기해보면 플랫폼 과열 속에 가려진 것들을 그리는 플래쉬백.
아무튼, 이 드라마는 결혼 후 둘째 아들을 병으로 잃은 뒤 작품 활동을 멈췄던 배우자 카시이 유우 마저 (까메오이지만) 출연하는 등, 초호화 캐스팅을 등에 업고 만들어졌다. 나가야마 에이타, 타이가, 이케마츠 소스케, 중년으로 넘어가면 마츠시게 유타카, 나가세 마사토시...그 수만 주연급으로 한 다스가 넘는데...이런 건 어느 잘 나가는 방송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이라기 보다 질감의 라인업이 아니다. 어쩌면 세월의 아마도 인맥의.
드라마는 경찰 수사물이지만 전형적 일본 TV 수사물(나아가 민방 중심의 드라마)을 도발하고, 다수의 메타적 요소를 삽입, 다층의 이야기를 전개...라기 보다 확장한다. 심지어 오다기리는 무려 강아지 탈을 쓰고 경찰'견'을 연기하는데, 그 탓에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일본의 30년 장수 수사물 ‘파트너(相棒)' 시리즈의 콤비 그 하나를 人가 아니라 犬로 치환했을 뿐인데, 수사물이 놓치곤 온 수사의 실마리가 여기저기 발에 치인다. 작품 외적으로 이야기하면, (국영 방송이란 이점에 힘입어) 광고주 입김 밖에서, 안전 위주 원작 중심 제작의 관행을 뒤집고, 나아가 NHK의 제작상 제한까지 역으로 이용하며, 30년 연기 인생의 숨겨진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해낸다. 가령 상품명, 고유명사가 포함된 대사가 등장할 경우, 모자이크를 얹거나 ‘삐' 소리를 그대로 노출하는 등. 이런 걸 '메타의 메타' 드라마라 할 수 있을까. 요즘은 ‘메타 버스'가 화두라 하던데...
다시 오다기리 이야기로 돌아오면... 한 때 오다죠=예술병(혹은 중2병)과 같던 시절, ‘멋' 만으로도 개성파 배우는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다. 일련의 청춘 배우는 곧 방황의 아이콘이었고, 그렇게 오다기리가 아사노 타다노부, 그 뒤를 잇든 아티스트 ‘풍'의 연기자로 입지를 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몇 번의 실패, 도전, 그리고 '고독한 창작'의 길을 지나 그가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나이고 나일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한 표현이고, 이제와 돌아보면 영화로서의 ‘지속하는 예술'에 다름다. "예전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싶은 마음이 있어 시나리오 쓰는 걸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를 화면으로 옮긴다는 건,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기분이 강했고, 이번 드라마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아마 10년도 더 전의 일이에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이 시절의 ‘한일 합작’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에서 오다기리는 대수롭지 않게 ‘멋'을 내려놓고, 영화의 엘리트 코스,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이케마츠 소스케를 전적 신뢰하며 20살 가까운 나이 차에도 ‘형(극중에서도 형제 관계)’이 아닌 ‘동료'의 자리로 한 발짝 물러선다. 아무리 실패한 사업가라 해도...동대문 야전시장에서 구한 듯한 ‘돕바'를 영화 내내 입고 나오던 작품은..없었다.
무엇보다 오다기리의 NHK 드라마는 최근 방송 콘텐츠가 요동치는 가운데, NHK의 ‘신기류',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이라 점쳐지고, 그에 기쁨을 담아 공감하면서도 난 나와 동시대를 살고, 방황했던, 그리고 걸어왔던 그(와)의 오늘이 마치 나의 것인냥, 맞이해 반갑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소 주책인 줄 알면서도 내심 기뻐하지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대를 포기하지 않고 동시에 ‘나'를 외면하지 않았던 지난한 어제, 그리고 오늘. 별로 화려하진 않지만, 이곳에 도착한, 그리고 지속되는 계절. 그의 오늘에 난 지나간 나의 어제를 떠올리고, 이곳에 지금 오다기리 죠가, 다시 시작한다.
**아래는 5년 전 어느 무렵, 적었던 '오다기리 죠' 사람은 왜 어느 특정 누군가에게 자신을 이입하게 되고 마는 것일까. 좋아하게 되는 배우는 많(겠)지만, 계절을 함께하게 되는 배우는...얼마 되지 않느다고 느낀다. 10년이 훌쩍 넘어 다시 그를 이야기하고 있을 줄은...당시의 나로서 예상할 수 없었고, 그런 게 아마 내일일까. 요즘 레터가 '거의 본업?'인지라..오다죠号 남겨놓아요.(현재는 멤버쉽 오픈, 추후 모두 공개됩니다)
https://brunch.co.kr/@jaehyukjung/14
https://maily.so/tokyonotable/posts/acd575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