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라는 우연’을 쫓는 모두 3개의 상상
아마도 우연히 시작된 일일 것이다. 날이 좋은 날 화보 촬영을 마치고 스타일리스트 츠구미(현리)와 택시에 동석 이야기를 주고받다 그녀의 이야기 속 남자가 나의 옛 남친이란 사실을 알게된 건, 아마 우연에 의한 것일 것이다. 츠구미의 이야기는 첫 만남이었음에도 맘이 통하고, 그렇게 느껴지고, 그래서 뭔지 모르겠지만 인생 최고의 하루였다며, 일견 사랑 보다 꾸며지지 않은, 보다 ‘마법’에 가까울 ‘교감’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모름지기 대화란 주고받는 말. 남자의 연애 이력을 설명하는 대목에 하필 나의 경험이 떠올라, 더구나 말로서 드러나 츠구미의 이야기 속 남자가 나의 외도로 2년 전 헤어졌던 남자 친구란 사실이 밝혀지는 건, 그야말로 조금 더 우연한 순간일 것이다. 츠구미와 남자 사이의 교감이 마법같은 것이었다면, 이곳의 나의 우연은 보다 장난같은 것. 이후 츠구미가 먼저 내린 뒤 영화는 왔던 길로 방향을 돌려 지나온 길을 달려가지만, 그 순간 그곳에 남겨진 나의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어쩌다 알아버린 우연한 발견이 늦은 밤 거리에 택시를 돌려세울 뿐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그저 침묵으로만 남은 충동이 그곳에 밤 거리를 달린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단편집 ‘우연과 상상’이 그 첫 장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탈 것’의 영화라 이야기된다. 동시에 ‘말의 영화’라고도 불린다. 모두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우연과 상상’은 1장, ‘마법(보다 불확실한 것)’으로 문을 여는데, 여기엔 그 둘이 모두 작용하고 있다. 츠구미와 나,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는 일이 끝나고 함께 택시에 타고있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주고받는다고는 해도 대부분 츠구미가 남자를 처음 만나게 된 일을 일방적으로 털어놓는 식인데, 자신의 이상형과도 연애 스타일과도 거리가 먼 남자에게 느낀 알 수 없는 설렘을, 사랑인지 일반 사람에 대한 호의인지, 아니면 아오야마에 자택 겸 오피스를 갖고있는 일견 선수처럼 보이는 남자의 하룻밤 작업인지, 겨우 알 수 있는 말들로 털어놓는다. 마치 그 날 밤 둘 사이에 오고갔던 ‘교감’의 정체를 찾아가기라도 하듯 팽창했다 수축하고 무언가 확신에 다다른 것 같은 순간, 침묵한다.
사실 일본에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며 이렇게나 내밀한 이야기를 남이 보는 자리에서 한다는 건 현실적이지 못한 상황인데(백미러로 운전수가 잠시 흘겨보는 장면이 스친다), 하마구치 영화에서, 차 안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확보된 환경 안에서 인물 간의 말이란 거리감에 의해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은 곧 말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그건 츠구미 못지않게 메이코에게도 작용해, 메이코가 츠구미의 이야기 속 자신과의 접점을 발견해버린 건, 그렇게 말이 이끌어낸 감정의 궤적. 츠구미와의 절친한 관계, 가까운 거리감이 열어버린 2년 전 종결된 관계의 속마음, 나아가 둘 사이의 대화가 부린 작은 ‘마법’에 다름 아닐지 모른다. 온전히 진심으로 묻고 답하는 관계에만 비로소 도착하는. 그래서 때때로 위험한.
‘마법’, 혹은 ‘보다 불확실한 것’에서 하나의 전환이 찾아오는 건 택시에서 먼저 츠구미가 내리고 혼자가 된, 경쾌하게 주고받던 말들이 활기를 거둔, 메이코가 ‘왔던 길로 다시 가주세요’라고 말하며 방향을 돌리는 택시의 사뭇 달라진 정적에서이다. 여기서 이 U-턴은 무언가 불안하게 느껴지는데, 하마구치의 바로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우린 이미 이와 비슷한 예상 밖의 U-턴을 마주한 적이 있다. 심사차 블라디보스토크에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주인공 카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기상 악화로 일정이 미뤄진 탓에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향하던, 미필적 고의의 그 돌아감. 이후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의 외도를 목격하게 했던 그 우연한 사건의 시초. 다만 카후쿠의 돌아감이 마주하지 않았을, 어쩌면 오지 않았을 ‘사건’ 이후, 우연한 시간의 시작이었다면, 여기서 메이코의 유턴은 이미 드러난, 절친한 친구가 자신의 옛 남친과 서로 좋은 시간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그러니까 우연이 벌어진 후 그를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돌리는, 다분히 자의적 선택의 돌아감이다.
돌려 말하면 카후쿠의 내일을 암시하고 있던 U-턴과 메이코의 나도 모르게 어제로 향하던, 앞뒤가 뒤바뀐 충동의 U-턴. 그곳에 메이코는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하지만 행동에 확신이 보이고, 2년 전 남자 카즈아키(나카시마 아유무)의 사무실에서의 그녀는 어딘가 츠구미와 나눴던 말들을 직접 부딪히며 증명해보이려 하는 것 같다. 2년이란 공백이 무색하게 끝나버린 헤어짐, 주고받은 상처, 그리고 오해와 어쩌면 외면의 기억이 즉흥의 감정속에, 보다 날것으로, 말과 말이 아닌 육체를 통해 관계하고 부정됐다 잠시 서로를 끌어안는다. 말하자면 그녀는 지금 우연 그 한.복.판.에 서있는지 모른다. 하마구치 영화에서 남녀 관계를 이렇게나 치밀하게,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장면을 난 본적이 없고, 물론 메이코, 여자가 끌어가고 있는 전개이지만 이건 떠나갔던 여자(‘여자 없는 남자들’)가 다시 돌아와 벌어지는, '그 후'의 상황임에 분명하다. 하마구치는 이 영화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원작으로 한 ‘드라이브 마이 카’를 준비하던 시기에 찍었다.
그런데, 그렇게 메이코(우리)는 자신에게 다가온 그 우연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을까. 메이코와 카즈아키는 몇 번의 말과 몸의 다툼 이후 어쩌면 진짜같은 포옹을 하려하지만, 노트북을 두고간 여직원의 방문에 중단되고, ‘맘에 두는 여자가 아니라면 따라가면 안돼죠.’ 결국 관계의 형태를 만들어버린 건, 떠나버린 여자와 쫓아가지 않는 남자, 감정이 아닌 생각이었다. 경계의 안과 밖. 상상은 결국 현실이 되지 못한다.
1장의 결국은 삼각의 구도를 가진, 하지만 보다 ‘나’의 내면에 기운 이야기는 후반의 삼자 대면 이후 다소 의뭉스러운 인상을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2장. 비교적 빠른 단계에서 영화는 작은 힌트를 하나 던져준다. 선생과 학생들이 모인 듯한 교실, 진행중인 수업의 주제는 ‘타인을 느끼게 되(하)는 것들’에 대한 ‘디스커션’이다. 달리 말하면 타인과 관계하게 되는 시작점들. 하지만 돌연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영화는 조금의 사색할 틈도 남겨주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고, 그곳엔 책상 너머 교수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남성과 바닥에 무릎꿇고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사과를 하는 학생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있다. 그리고 그 남성의 얼굴을 향해 갑작스레 치고 들어오는 돌발적인 클로즈업. 호러, 스릴러 장르물에서나 긴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작동하는 어떤 위급함의 순간이 별안간 그곳에 떨어진다.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일까. 심지어 영화는 ‘5개월 후’란 자막을 남기고 그곳을 떠나버린다.
단 한 가지 떠올려 볼 수 있는 건, 바로 앞 이야기의 메이코가 카즈아키와의 관계를 츠무기에게 털어놓는 '상상'을 하던 순간, 그러니까 관계의 파국이 현실이 되려던 찰나 메이코의 표정(감정) 역시 이와 비슷한 위급함, 갑작스러움, 혹은 당혹함이거나 공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츠무기와 화목한 점심을 보내던 카페, 창 밖에 우연히 지나가던 카즈아키, 즉 메이코와 한바탕 크게 싸우고 난 뒤의 카즈아키가 카페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고, 이내 메이코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고백해버리는 장면을, 영화는 ‘그건 메이코의 상상이었다’식으로 연출한다. 바로 이어지는 ‘현실의 상황’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상상이 현실로 착각되는 약간의 시간이 그렇게 흐른다. 그런데 그 갭, 상상과 현실 사이 차이가 아무런 이음매 없이 연결되어 있다. 마치 홍상수가 꿈을 영화 속 현실에 데려왔던 것처럼,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마법처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꼭 현실 지근거리에 상상이, 픽션이 숨어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무릎꿇고 고개 숙여 사과를 하던 장면 역시 그 학생, 사사키(카이 쇼마)의 상상이었을까. 5개월 후 사과의 원인이 이유가 되어 유급을 당한 그는 TV 속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를 보며 ‘내가 저 뉴스를 읽고 있었을텐데’라고 TV 속 아나운서가 된 자신을 상상한다. 아니 엄밀히 말해 TV속 화면엔 그의 상상 속 현실이 재생되고 있다. 우연과 상상, 그리고 현실. 하마구치 감독은 영화 속 상상과 우연을 영화 속 현실과 다른 방식으로 연출할 맘이 아마 별로 없고, 세가와 교수의 ‘문을 열어둔 채로 놔두세요’란 말은 어쩌면 그 사이의 경계를 향한 요청이 아니었을까. 그의 영화를 차지하는 수많은 대화, 그리고 질문과 답은 경계의 주변을 살피는 우연이거나 상상, 현실을 종종 벗어나는 가장 자유로운 말처럼도 들린다.
“우연도 상상도 현실과 픽션의 경계선 같은 곳에 있는 거라 생각해요. 다만 우연은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확실히 있는 것, 즉 경계선의 ‘있다’쪽에, 그리고 상상은 ‘없다’ 쪽에 있다 정도의 차이랄까요. 생각하면 할 수록 둘은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헀는데, 사사키의 친구 나오(모리 카츠키)의 작전 수행에 의해 발생한 약간의 시간을 제외하면, 이야기 속 세가와 교수의 방문은 단 한 차례도 닫히지 않았다.
매우 단조로운 분류, 정리이지만, ‘우연과 상상’은 우연-상상-그리고 우연&상상의 구도로 나눠 보아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우연이란 그 정밀함에 있어 다양한 종류가 있고, 늘 지나온 뒤에 깨우치는 탓에 사소한 만남이거나 사건도 우연이라면 우연일 수 있지만, 그렇게 우연이 지배하는 이 영화에서 각각의 스토리를 움직이는 건 차례로 우연, 상상, 그리고 우연과 상상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 ‘한 번 더’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가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앞의 두 이야기에서도 메이코의 기억 속 2년 전 헤어진 남자거나 사사키와 나오 사이에 가로놓인 5개월과 5년 후와 같이 ‘이후’의 시간이 암시되어 있지만, 여기선 처음부터 ‘그 후’가 시작이다. 나츠코(우라베 후사코)는 동창을 만나기 위해 20년 만에 도쿄를 떠나 센다이에 도착한다. 하마구치 영화적 고향, 센다이. 311 대지진의 아픔이 남아있는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이는 달리 말하면 앞의 두 이야기가 갑작스런 줌업과 시간적 비약으로 그곳에 도착한 우연, 혹은 상상을 외면했던 자리, 바로 그곳에서 이 영화가 어쩌면 시작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3장의 제목은 ‘다시 한 번.’ 이건 분명 우연도 상상도 아닌, 의지가 더해진 말이다.
그런데 여기엔, 무엇 하나가 빠져있다. 나츠코는 동창회에 도착했지만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먼저 인사를 해준 친구의 이름도 틀리게 기억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날, 역의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다 동창회에서 보지 못한, 가장 만나고 싶었던 누군가를 우연히 만났지만, 그것도 어쩌면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우연도 상상도 어쩌면 착각이 만들어낸 기억일지 모른다는 사실. 영화는 초반 알 수 없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발생, 모든 단말기로부터 정보가 유출돼 혼돈에 빠진 세계가 다시 우편과 전화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었다고 시간적 배경을 알려주는데, 그렇게 보다 더 착각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나츠코는 만나고 싶었던 그녀의 집까지 함께 가 차를 마시고 양갱까지 먹지만 둘은 아직 이름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게 오인된 우연의 시간이 어쩌다 시작해버렸다.
그런데 ‘한 번 더.’ 영화는 이렇게 우연의 실패가 드러난 순간, 전과 달리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묘한 액션을 취한다. ‘그런데 이거 좀 아깝지 않아?’ 나츠코가 동창이라 믿었던 아야가 ‘그럼 내가 그 동창을 해보겠다’고 제안하는 순간, 영화는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시계(視界) 속에 빠져든다. 나츠코의 상상 속 동창이자 파트너를 연기하는 아야와, 아야의 연기 속 동창을 마주하는 나츠코. 이런 우연의 롤플레잉을 우린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우연도 상상도 착각도 아닌, 그저 이상하게 아름다운 타인과의 진실된 만남이, 그런 우연의 이야기가 어쩌다, 그곳에 태어나버렸다.
결과적으로 3장 ‘한 번 더’의 주인공 나츠코와 아야는 결국 남남, 타인이다. 1장 츠무기의 말을 빌려보면 ‘처음 보는 사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둘의 대화는 어색하면서도 20년 세월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고, 우연이 착각임을 알고도 이어지는 말들은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사이의 이상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아야가 나츠코에게 ‘지금 행복해’라 물었을 때 그녀는 질문자로 연기를 하고있지만, 그 질문엔 나츠코가 상상했던, 내가 아닌 누군가의 존재가 뒤섞여있다. 그리고 그건 곧 나츠코로 인해 드러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질문을 한다는 것, 그렇게 마음을 연다는 것. 일본어로 적어보면 聞く와開く. 참으로 닮아있는 두 글자. 하마구치는 자신에게 영화는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라 이야기했는데, 그건 곧 상대의 마음을 열어가는 길목의 시간이라 바꿔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고보면 2장에서 세가와 교수는 늘 ‘문은 열어둔 채로’라고 말했다.
여기서 확실한 건 무엇 하나 없다. 결국 상상은 상상이고 말았던 메이코는 이야기의 마지막 전 남친과 츠무기가 만난 카페에서 나와 길을 가다 뒤돌아 사진을 찍는다. 영화의 시작 그녀는 사진을 찍는 쪽이 아닌 렌즈 너머 찍히는 대상으로 존재했다. 경계의 ‘없다’와 ‘있다’ 중 ‘없다.’ 그리고 세가와 교수와 나오 사이의 농밀한, 소설을 낭독하며 만들어진 서로가 서로를 긍정하고 존중했던 비밀스러운 순간은 레코딩 파일이 세가와가 아닌 사가와 씨에게 전달되며 둘 만의 비밀이 아닌 만천하에 공개된 뉴스가 되어버렸다. 우연한 공감이 아닌 우연의 실패. 하지만 마지막 편에서 영화는 이미 끝날 수도 있었을 관계를, 질문과 제안으로 지속하며 열어놓은 문을 향해 한발 더 내딛는다. 나츠코의 파트너를 통해, 아야의 기억 속 친구를 경유해 구멍 난 오늘을 서로 맞대며 타인과 타인으로 끌어안는다. 우연도 상상도 아닌 현실의 포옹이 그곳에 그렇게 이뤄진다.
그리고 ‘한 번 더.’ 역에서 헤어진 뒤 아야는 메이코의 유턴에 응답이라도 하듯 달려가 나츠코를 붙잡고, 기억나지 않았던 고교 시절 친구의 이름을 기억해내 그녀에게 이야기한다. 오직 그 만을 위해 있는 힘껏 달린다. 어쩌면 둘의 착각을 완성해줄 마지막 퍼즐. 그의 이름 노조미(望み). 하마구치는 ‘해피아워’의 제목에 대해 쥰 역의 카와무라 리와 씨가 실제 이야기했던 대사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이야기했는데, 우연과 상상을 넘나들던 둘 사이의 기묘한 시간이 불러온 이름이 어쩌면 노조미, 바람이었을까. ‘한 번 더.’ 이 다 못한 말의 속뜻은 분명 너와 나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마법보다 더 마법같은. 우연한 '바람'이 그곳에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