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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Aug 21. 2017

[나라 요시토모에겐 이런 밤도 있다]

해와 달, 하늘과 땅, 그리고 어둠과 밝음의 사이, 그 어디쯤

-조금 전 올렸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한 버전-


노려보는 듯한 눈매, 불만을 한 가득 품고 있는 것 같은 얼굴. 소녀는 왜 화가 났을까. 소녀는 왜 토라졌을까.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냉소적이고 씨니컬하며 꽤나 날이 서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의 모든 작품들이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둥그스런 얼굴과 도톰한 콧망울, 그리고 동그란 눈동자까지. 그의 소녀는 화가 나있지 않다. 일본의 아오모리 현에 있는 도요타 미술관에서 나라 요시토모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목은 'for better or worse',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결혼식 서약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는 이 제목은 그의 소녀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노려보고 있는 듯하지만 사랑스럽고 불만을 한 보따리 터뜨릴 것 같지만 안쓰러운 느낌.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은 해와 달, 하늘과 땅, 그리고 어둠과 밝음의 사이, 그 어디쯤이다.  


나라 요시토모는 1952년 아오모리 현 히로사키 시에서 태어났다. 펑크 록과 록, 그리고 포크 음악에 도취된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당시의 음악적 경험이 그에겐 커다란 자산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자신이 수집한 3324장의 레코드 재킷을 선보인다. “고등학교시절 럭비 부였던 제게 미술은 외국 음악이나 레코드 재킷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저의 선생님이었고 그걸로 미술을 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미술을 접한 건 공부로써가 아니었다. 미군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가사를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보았고, 그렇게 글을 이미지로 변환하는 훈련을 자연스레 해왔다. “제가 미술을 미대에서 배운 것은 맞지만 저의 피가 되어있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고, 그 다른 것이 저의 개성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요시토모는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1년만에 중퇴했다. 그리고 아오모리 현립 예술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독일에 건너가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며 독일의 미술가 A.R. 펭크에게 사사받았다. A.R. 펭크는 1970년대 신 표현주의를 선도한 독일의 미술가다. 이후엔 2000년까지 케른 지역을 거점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은 그가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한 1987년부터 올해인 2017년까지 30년 동안 작업한 것들의 모음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속 그림으로도 유명한 그의 소녀 캐릭터가 성장하는 것처럼 그의 그림도 변화해왔다. 특히 후반부에 들어서는 소녀가 눈을 감고 있는 작품이 다수 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며드는 어둠과 함께 정적의 감운이 온몸을 둘러싼다. 그러니까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에는 귀여움과 밝음 한 켠에 어두움과 아픔이 분명 자리잡고 있다. 노려보는 소녀의 그것 못지않게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다.


아오모리 미술관에 있는 커다란 강아지 조각 ‘아오모리 개’ 역시 눈을 감고 있다.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Voyage of the Moon(Resting Moon/Voyage of the Moon)은 나라 요시토모에게 이런 밤의 세계도 있음을 보여주는 유머러스하지만 고독한 작품이다. “옛날을 뒤돌아보면 결혼하며 서약을 하는 부부처럼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그리고 아직 헤어지지 않았고요. 30년이라면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제작은 항상 제 곁에 있었습니다.” 30년, 소녀가 자라나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다. 나라 요시토모는 이 30년이란 시점에 잠시 마침표를 찍었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서약하기 위함이 아닐까. 나라 요시토모는 여전히 그림을 그린다.

인터뷰, 사진 출처 https://casabrutus.com/art/51689
사진 저작권 표기 © Yoshitomo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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