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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Sep 03. 2017

우리의 20세기

우리의 삶이 중구난방의 서사 속에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표식, 그런 이야기

솔직히 예고편에 혹해서 보았는데 엔딩 직전까지 뭐 이런 영화가 있나 싶다가 마지막 애잔함에 취했다. 그래서 적어본 몇 글자. -우리의 20세기.


하나같이 구구절절하다. 영화는 산타바바라에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싱글맘의 서사부터 읊으며 시작한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는 무려 다섯 차례나 인물을 바꿔가며 반복된다. 이야기의 층위도, 성격도, 방향도 제각각이라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영화가 종반에 이르기까지 아리송하다. 다만 한 가지 (그나마) 선명하게 다가오는 게 있는데 여기엔 세대의 충돌이 있고, 시대의 지나감과 다가옴이 있으며, 그 속엔 (지미 카터의 연설을 인용하면서까지 강조하는) 자존심의 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마이크 밀스의 영화 '우리의 20세기'(원제는 '20세기 여성들'이다)를 자존심의 위기를 맞은 55세 싱글맘의 이야기로 읽었다. 구구절절 다가오는 나머지 네 사람의 서사가 그녀에겐 위협이고 위기라고 정리하자 그나마 영화의 맥락이 잡혀갔다. 그녀의 이름은 도로시아다. 70년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름의 그녀는 지나가고 있는 시대의 한 자락일 뿐이며 수 많은 조각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녀가 몇 십년째 살고 있는 저택은 지금 붕괴 직전에 있고 그래서 보수가 한창이다. 마치 그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영화에서 주요 줄거리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전무하다. 다섯 명의 이야기가 거의 비등하게 다뤄지고 있고 포인트로 찝어낼 수 있는 건 도로시아가 골치를 썩이는 아들 제이미를 위해 함께 사는 입주민 애비와 제이미의 친구 줄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 정도이다. 다만 영화의 초반부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이 있었는데, 영화는 지나간 시대를 애도한다. 그나마 건강에 덜 나쁘다는 이유로 줄로 피워대는 살렘 담배와 편하고 튼튼하다는 이유로 고집하는 버켄 스탁 샌들. 도로시아의 지금을 지탱해주는 건 고작 이 정도의 물건들일 뿐이다. 아니,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음악, 음악이다. 음악이 그녀를 위로한다. 아들 제이미와 말다툼을 하고 돌아서는 그녀의 등뒤로 감싸 안듯 울려퍼지는 70년대 재즈 선율은 도로시아를, 나아가 지나간 시대를 달래려는 애씀의 자락이다. 영화는 산만하다. 동시에 난잡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우리의 삶이 어떤 하나의 줄기로 수렴되지 않고, 중구난방의 서사 속에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표식 같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로시아와 제이미가 진정으로 자신의 안과 밖을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희미하게나마 스쳐 지나갔다. 21세기는 이렇게 20세기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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