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NORESQU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RESQUE Sep 18. 2017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 빛나는

어둠과 빛, 죽음과 생 사이의 어딘 가로의 사라짐 말이다.

거리와 하늘의 풍경, 지나가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들이 영화를 시작한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빛나는'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의 의미의 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바로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영화 가이드 해설을 통해서다. 오디오 가이드는 의외로 광범위해서 많은 것들을 상상케 하고, 말로 포착했을 때 비로서 감지되는 감각이란 게 세상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영화는 그걸 시종일관 시현한다. 미사코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영화 가이드를 하는 여자다. 나카모리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사진 작가다. 둘은 오디오 가이드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데 미사코의 가이드가 나카모리는 마음에 들지 않다. 마사코의 주관이 영화를 몰고가고 있기 때문이다. 매번 시비를 거는 나카모리 역시 미사코에 마음에 들 리가 없다. 그렇게 둘은 서로 불편한 관계로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남자와 말로서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려 애쓰는 여자의 만남. 영화는 이 이 항의 관계, 나아가 그 둘을 넘어선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 '안고 있어도 보고싶고, 애써서 다가가도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것,'  


극 중엔 영화가 한 편 등장한다. 미사코가 오디오 가이드를 하는 작품인데 그 주인공의 캐릭터가 나카모리와 오버랩된다. 나카모리는 말한다. 저녁 노을을 찾아, 찾아, 찾아 다녔다고. 극중 영화 속 남자는 말한다. 끝이 없어, 끝이 없어, 끝이 없어라고. 노을은 아름답다. 하지만 어김없이 지고만다. 끝이 없을 정도로 찾아 다녔지만 다가오는 건 사라짐이다. 영화는 생과 죽음, 그 둘을 넘어선 무엇, 빛과 어둠, 그 둘을 넘어선 무엇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에선 영화 속 영화의 대사를 빌려 수 차례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생과 죽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아스라한 경계, 그 어느 지점의 어느 순간일 것이다. 미사코의 아빠는 실종된 걸로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 실종이 사라짐의 다른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둠과 빛, 죽음과 생 사이의 어딘 가로의 사라짐 말이다.


영화 속 영화의 마지막 신을 두고 미사코는 고민에 빠진다. 자신의 가이드가 '지금 상태라면 방해일 뿐이라'는 말에 움츠러들었고, 무엇이 잘못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보기를 원했는지, 무엇을 위해 모랫길을 묵묵히 힘겹게 걸었는지를 그녀는 알아야 한다. 그 무엇이 놓인 자리에 도달해야 한다. 영화는 이렇게 조금씩 마사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 순간을 만들어 간다. 눈을 감고 있으면 소리가 더 잘 들리듯, 말을 제거했을 때 보이는 것이란 게 분명 있다. 영화는 시각과 청각 못지 않게 촉각도 비중있게 다루는데 미사코가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올리는 장면을 보면 만짐의 감각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가장 가까운 감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영화는 만질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묘사, 아니 다가감이라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20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