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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21. 2017

흩어진 사람들, 지어진 기억들

문정현 감독의 다큐멘타리 '이산자'가 말하는 국가와 사람들

역사는 개인의 삶으로 구현될 때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온갖 주의(ism)로 점철된 거대한 몸짓의 역사가 놓치는 부분을 개인의 삶은 말하곤 한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 문정현은 아마도 이러한 개인의 삶에 천착해 온 사람일 것이다. 한반도 분단 역사의 시간을 가족과 개인의 삶으로 서술했던 그의 두 번째 장편 '할매꽃'을 시작으로 그의 다큐멘터리엔 늘 사람이 있었다. 현대사의 파란 속에서 국경을 넘어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편지란 매개체로 전달했던 '경계', 붕괴란 키워드로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오고갔던 '붕괴' 등. 그의 신작이 나왔다. 제목은 '이산자'.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탈북자, 이산가족, 위안부 할머니, 재일 조선인 등 영화가 소환하는 이들은 이러한데 이들의 시간은 모두 분단과 일제 강점기란 역사와 닿아있다. 듣기만 해도 고난한 이 질곡의 역사를 감독은 따라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 속에서.


영화는 재일 조선인 김인만의 여정을 토대로 살을 더해간다. 일본 이름을 써야만 했던 시대, 그러니까 외부의 압력으로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멀어져야 했던 시대를 그려낸다. 조선말보다 일본말이 더 익숙해져 버린 2세, 3세 들의 문제도 거론된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감독은 답하지 않는다. 다만 재일 조선인들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이어서 이야기는 소위 다문화 가정으로 불리는 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들의 답답한 심정에 마음이 뭉클했다. 자신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들, 차별과 멸시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이는 영화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도 연관된다. 자신의 국적을, 핏줄을 설명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굴곡진 삶 한 가운데서 울고있다. 영화는 이 눈물을 그저 보여준다.  


차별의 이면에는 댠결이 있다. 영화는 일본의 우익 단체들, 혐한 시위, 국가주의의 민낯을 바라본다. 이들이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법 조항을 고치려 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욱일 승천기를 들려는 이유를 생각케 한다. 단결의 이면에는 차별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는 역사의 상처다. 영화는 이 가냘픈 상처의 삶을 할머니의 육성으로 소환한다. 말하지 못했던 시간이 그려지고 말하지 못했던 아픔이 드러난다.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 잊지 않는다는 것, 이는 어쩌면 가장 가녀리지만 힘이 있는 저항의 행동이 아닐까. 할머니들이 그렇게 말한다. 수많은 역사 속 굴곡의 삶을 지나 영화가 다다르는 곳은 국가란 개념이다. 동시에 수많은 역사의 피해자들, 그러니까 이산자들을 낳은 모체다. 존재를 국가로 규정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고, 그 곁에는 흩어진 사람들, 이산자들이 살고있다. 동남 아시아에서 왔다는 한 여자의 말이 와닿았다. '다문화 가족'이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그저 우리와 똑같은 또 한 명의 사람일 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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