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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28. 2017

나는 좋아요에 반대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SNS가 그런 권력의 장이 되어버렸다

좋아요가 싫어서 미치겠다. 좋아요가 좋아서 미치겠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에는 맥주 발명한 사람 노벨상 줘야된다는 말이 나오는데, 좋아요 발명한 사람 낯짝이나 한 번 보고싶다. 이렇게 사람 맘을 짜증나게 하는 게 또 있나 싶다. 처음엔 내가 잘 못 썼으니, 공감할 만한 구석이 없었나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별 거 아닌 문장, 심지어 단어 몇개에도 좋아요가 수십개씩 달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게 아니다,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건 인맥 놀이다. 친구가 많은 사람, 유명한 사람의 말은 좋아요가 무조건적으로 붙기 마련이다. 물론 이를 두고 사람의 이름값,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좋아요가 덕지덕지 붙는 글들을 보면 꼭 그렇게 영향력을 품고있는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페이스북의 좋아요 시스템은 좋아요 수가 많을 수록 노출 빈도를 높인다. 그러니 좋아요 가뭄인 계정엔 평생 좋아요 풍년이 될 리 만무하다.

  

그렇다. 안하면 된다.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이치다. 과한 반응, 과도한 해석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표현하는 동물이다. 보여주고 싶은 본능이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페이스북은, 트위터는, SNS는 어찌됐든 구현한다. 하지만 동시에 SNS는 영향력의 빈부격차, 이름값의 빈부격차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즉각적인 느낌, 조금의 생각도 없이 수 초만에 좋아요를 눌러버리는 순간의 미디어가 사람을 괴롭힌다. 내 글에 대한, 내 사진에 대한, 나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나에 대한 평가가,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 살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SNS가 그런 권력의 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SNS를 하고 있다 보면 내가 이렇게 팔랑귀였나 싶을 때가 있다. 하등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지 않은 게 좋아요고, 전혀 필요 없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지만 있으면 좋은 게 좋아요다. 그러니까 나는 좋아요에 반대한다. 타인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상황에 반대한다. 나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지금도 수도 없이 많은 좋아요가 눌러지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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