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공간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
비가 오니 런던이 생각났는지, 베이크드 빈을 마트에서 사와서 계란 후라이랑 같이 먹었다. 무엇보다 가장 기쁜 일은 집 바로 옆 도서관과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사온지 1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왠지 모르게 도서관에 한번도 가지 않다가 꼭 읽고 싶은 책이 도서관에 있길래 회원증도 받고 책도 대여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참 나를 설레게 한다. 욕심내 많이 빌려와도 다 읽지도 못할때가 많은데.
어릴 때 부모님 모두 바쁘셨고 나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컴퓨터도 한대 있었지만 나보다 힘센 오빠 차지였다. 나는 내 방 침대에 혼자 엎드려 동화책을 읽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따분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점차 나는 혼자 책읽는 것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침대 맡 큰 창문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바깥 햇빛이 구름에 가리다가 나타났다가 하면 책에 비치는 햇빛과 구름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혼자 방에서 슬픈 책을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당시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아직 버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어릴 때부터 나는 죽음에 관심이 많았나보다. 어딘가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슬퍼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또 나처럼 맞벌이 부모를 가진 아이들 이야기가 담긴 동화를 좋아했다. 동물 이야기도. <모모>, <아홉살 인생>,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같은 책은 내 가치관에 크고 작게 영향을 주었다.
최근 회사 프로젝트도 마무리되어 가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 읽을 시간도 많아졌다. 작년부터 고전 문학을 조금씩 읽어보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를 비롯한 러시아 작가들을 좋아하고, 제인 오스틴을 비롯해 영국 여류 작가들도 관심이 생겼다. 소설과 시는 중, 고등학교때 억지로 필독 도서 리스트 중에 골라 읽고 독서감상문을 써야만 하는 기억이 있어 좋아하지 않았다. 내 자유 의지로 관심있고 공감이 되는 책을 골라 읽는 것과 남이 시키는 대로 읽고 감상해야 하는 것 사이에 큰 갭이 있다고 느낀다.
고전의 놀라움과 매력은 여행에 빗댈수 있다. 여행은 동시간 지구 반대편의 공간을 체험하는 것인데, 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 시대와 공간을 살던 사람들의 사고방식, 생각, 태도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의 자만, 우울감, 속물 의식, 종교관 같이 친구와도 쉽사리 하지 않는 대화 주제를 고전 문학은 날카롭게 포착하고 나랑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물론 텍스트로 경험하는 것과 영상이나 실제 몸으로 체험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텍스트에서 나타내는 미세한 감정 표현을 영상에서 표정과 제스쳐 연기로 구현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일하다보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른스럽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은 효율성을 가장 우선시하는데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은 효율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지내다보면 사적인 영역에서도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에 게을러지게 된다. 문학 작품은 내가 외면하려고 하는 자만심, 우울함, 죄책감 같은 감정을 여과없이 표현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부끄러워하던 감정을 건드려 주고, 그러면 내 감정을 지켜보고 별거 아니네 하고 덜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