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인재상: 찬란함보다 내 몫을 사랑한 호롱불이기를

대학 졸업을 앞둔 내가 미래의 나에게

by 재현


수림재단 설립자인 동교(東喬) 김희수 전 이사장의 교육 이념을 받들어 대학 재학 중에 성취한 공적을 통하여 장차 사회의 등불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인재를 발굴하여 그 공적을 치하하고 격려함으로써 많은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도록 한다.


2025년 12월, 대학 캠퍼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계절. 쌓아온 시간들의 의미를 되새기던 무렵. 수림재단에서 선발하는 동교인재상의 시상식에 참여하고 왔습니다.


태양과 같은 찬란한 빛은 아니더라도 호롱불 같이 작은 빛으로 사회의 어두운 한 구석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 1992.02.21 중대신문 졸업식 치사 중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주체적인 자유와 책임을 알게 해 준 시간들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여러 시행착오와 부끄러운 성정 또한 많이 깨달을 수 있던 시간일 겁니다.


이 상의 의미는, 정작 찬란함을 쫓아 앞만 보고 나아갈 때마다 많은 걸 놓치곤 했던 나를 용서하고, 이제는 작을지라도 성숙한, 평온하고 따뜻하게 비출 수 있는 호롱불이 되길 바라는 다짐을 담았습니다.







인재상의 주요 공적으로 연구 성과를 기술했습니다. 저는 교수가 되기를 희망해 왔습니다. 자아가 너무 강한 저는 내 분야에 몰입해 얻는 시야와 높은 자율성에 큰 의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른 시기부터 관심 분야의 연구실을 찾은 저는, 2학년에 처음 논문을 썼고 4학년 무렵엔 국제 학회인 UIST에 1 저자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학부생으로서 이례적으로 세계적인 학회의 논문 리뷰어로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 이면에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회적으로 대우받고 싶은 욕망과 허영심도 있었습니다. 대학 내내 바라왔던 찬란한 빛은 학문적 성취와 내적인 즐거움보단, 그것이 가져다주게 될 지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박사 진학을 목표로 2년 가량 연구를 해오면서 보상을 바라야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늘 쫓기는 듯한 마음으로 이것이 얼마나 내 시야를 좁게 하는지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박사 과정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할 길인걸 짐작했음에도 교수란 직함은 찬란해 보였고 미국 유학이란 타이틀, 또 오랜 연구 생활로 인한 관성과 매몰비용으로 이를 인정하고 떨치려 하지 못했습니다.





동교인재상의 다른 주요 공적으로는 대학교 3학년 때 의과대학, 디자인, 생물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을 모아 자체적으로 팀을 이끌어, 아동 ADHD의 증상을 AI로 정량화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제작한 경험을 기술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 전국 규모 대회에서 최종 2등을 수상하고, 세계 최고 권위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학회인 CHI의 국제 대회 본선에 진출해 조지아텍, UCLA, 상하이교통대 등 세계 대학들과 경쟁하여 결승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누구의 지시나 과제가 아닌, 스스로 창작한 프로젝트를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던 경험은 분명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경험 중 하나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대회 수상과 성취감만으론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었습니다. 연구적 프로토타입 수준이었고,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상용화로는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가장 무게를 두었던 당시의 저는 그 과정에 담겨있을 가치들은 간과했고, 이를 깊게 돌아보고 남겨두려 하지 않았던 것에 아쉬움을 느끼곤 합니다.




연구를 하며 스스로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전 다채로운 삶과 세상을 관찰할 때 행복을 느끼던 사람이었습니다. 연구는 그런 제 본성을 가로막는 길이자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인식했습니다. 연구를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는, 노력이라는 명분 아래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헛된 것은 아니었을지 되물었습니다. 마지막 학기는 이제 눈앞에 다가온 갑작스런 현실을 준비하고 책임져야 하는 시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혼란스럽고 지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제 졸업 논문의 지도 교수는 올해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님이셨습니다. 그간 연구와 학회에서 발표를 했던 경험들이 자연스레 공감대를 만들고 교수님과 저를 편하고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이로 만들어줬습니다. 교수님은 저를 시내로 데리고 나가 식사를 대접해주시기도 하고 카페에서도 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교수님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좋아하는 분야를 향한 낭만이 정말 많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분이 교수가 되는 것임을 느끼고 맘 편히 미련을 내려놓았습니다.


교수라는 직위보다도, 그런 태도가 본받고 싶었고 함께 이야기 나눈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연구라는 경험이 만들어준 인연이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무렵, 제가 만들었던 ADHD 아동을 위한 게임 프로젝트의 논문 자료가 멀리 인디애나 대학교 박사 과정 학생의 연구에 인용이 된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남긴 흔적이 세상 어딘가에 작게나마 닿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 편이 뭉클했습니다. 재미있게도, 그 박사 과정 학생이 제 링크드인으로 친구 신청을 보내왔습니다. ADHD, 자폐증 등 신경다양성을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분이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영감을 줬다는 생각, 그리고 학회에 발표되어 많은 이들이 접하게 된다는 것 자체로 이미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학교의 마지막 학기에, 저는 그간의 경험과 앞서 말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주요 공적으로 기술하며 제12회 동교인재상에 선발될 수 있었습니다.



2025.12.5 제12회 동교인재상 시상식



시상식에 참여하며 제가 수상보다 더 값지게 느낀 것은, 사회로 나아가는 마지막 시기에 인생에 있어 좋은 영감을 주고 본받고 싶은 분들과 그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 인연이었습니다. 이곳에 모인 한 분 한 분 걸어온 길이 정말 인상깊고 대단한 사람들이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대학 시절 걸어온 길에 담긴 의미에 대한 확신과, 또 미래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기를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명확한 대답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의미 있는 만남과 계기는 언제나 우연이 아닌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믿기에, 내가 지나온 모든 노력은 어느 하나도 무의미하지 않은 셈입니다.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며 받은 이 동교인재상 또한 그 증명입니다.


나는 미래의 내가 찬란함에 팔려 쫓기듯 사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꺼지지 않는 호롱불처럼 작을지언정 의미 있는 일을 고민하면서도,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가진채 살아가고 있길 바랍니다. 이 상은 그런 삶을 살아갈 제게 보내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부족한 점도 헤쳐나갈 일들도 많겠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 모든 것에 친절할 수 있기를. 인생의 가장 우선으로 삼기를. 지금까지 쌓은 과정들을 차분히 돌아보며 내가 마땅히 하고자 하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 그 자리를 값있게 여기며, 나에게 가장 가치있는 방향으로 쌓아 나가고 싶습니다.


많은 응원이 되었던 카이스트 홍** 교수님, 경희대 이**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