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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Zorba Dec 09. 2017

프롤로그

(1) 첫째와 둘째 사이_엄마

‘정신과 의사? 말마다, 당신 무의식이 어쩌네, 하며 피곤하게 굴 텐데...괜찮겠어?’ 

‘한 마디도 안 지고 따박따박...복잡한 문과 여자? 같이 살 수 있겠어?’ 


 결혼 전,  두 사람의 결혼 상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연애 시절, 여자는 소설의 주인공들을 헤아리는 전지적 작가의 세심함으로, 남자에게 자주 감동을 주었다. 남자 또한, 여자의 내면을 잘 헤아려주는 Good listener였다. 동갑내기 친구였던 둘은, 장거리 커플로 만난 지 2년 만에 부부가 됐다. 장거리 커플이 갖는 거리감만큼이나, 둘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부분도 많았을 터. 여기에 동갑 커플이 갖는 전투력까지 가세해, ‘말싸움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두 사람의 ‘2인 단체생활’은 녹록지 않게 시작됐다. 


“아이라도 생기면, 덜 싸울 텐데...”

부부는 내심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기다리는 아이는 금세 찾아오지 않았다.     


“남의 가문에 시집을 왔으면, 애 낳을 생각을 해야지.” 


 결혼 2년 차로 접어들 무렵, 평소 며느리를 예뻐하시던 시아버지의 취중 진담 전화에 나는 그만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되도록 빨리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자. 그렇게 난임병원으로 걸음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임신은 그때마다 실패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아니, 몸보다 마음이 더 지옥이었다. 부부싸움은 계속되었다. 나는 예민했고, 남편 또한 지쳐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임신이란 걸 할까. 온통 그 생각으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임신 테스트기는 계속 한 줄. 다른 사람은 다 돼도, 난 결코 안 될 것 같았다. 난임 병원에 내가 출입하다니, 그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어떤 말도 나에게는 모두 가시가 되었다.     


 ‘대한민국 최강 부부 파이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이도 싸웠다. 그런 부부싸움도 끝은 있었다. 부부는 ‘싸우면서’ 역설적으로 ‘싸우지 않는 법’을 터득해 갔다. 싸우지 않고 원망과 포기로 침묵하기보다, 우리 부부는 열렬히 싸우는 쪽을 추천 드린다. 전문가들은 싸움 이후가 중요하다고들 했다. 의미 있는 대화로 부부관계의 새역사를 만들어간다면, ‘좋은 싸움’이 되는 것이다. 너무 지쳐 싸울 힘도 모두 소진해서였을까. 가사노동의 분업 등 평화가 찾아든 가정에는 3년 2개월 만에 드디어 첫 아이 임신 소식이 날아들었다.      


 드디어 꿈에서도 못 보던 ‘임테기 두 줄’을 보았다. 소위 삼신할배라 불리는 명의도 찾아갔고, 호르몬을 위해 일찍 잠들었고, 열심히 운동했고, 커피도 끊었고, 좋다는 영양제들도 칼같이 챙겨 먹었다. 겨우 3년의 임신준비로 힘들었다고 하기에는 훨씬 어렵게 임신하신 분들, 여전히 난임으로 고생 중인 분들도 너무나 많으시기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하지만 ‘임신이 언젠가 되겠지’하고 기다리다 지쳐가기 시작한 커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 시라도 신체나이가 젊을 때, 더 적극적으로 임신을 위한 방법을 찾아보고, 철저히 따라 보라’는 것이다. 후회가 없을 만큼 최선을 다 해보는 것이 스스로의 마음에 더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신이 안 되는 이유를 찾기보다, ‘임신 성공을 위한 history를 스스로 만들라’는 쪽으로 추천 드리고 싶다. 


 그리고 어차피 될 임신이니, 노여워하며 시간을 보내지 말자. 사실, 언제 성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 끝을 안다면 모든 것은 견딜만해 진다. 자신감을 갖고, 더 기쁘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좋은 끝은 반드시 온다. 남의 시선에도 자유로워지기로 하자. 당당하자. 결혼도, 임신도 어려운 시대에, 아이를 갖겠다는 의지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아닌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조금씩만 마음을 바꿔보자, 마음 먹었다.


 첫째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임신에 좋다는 각양의 좋은 음식에, 좋다는 영양제를 죄다 챙겨 먹은 덕일까. 임신을 위해 오랜 준비를 한 선물일까. 나는 출산 후 몸도 빨리 회복되었고, 아이 역시 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후염을 한 번 앓은 것을 빼고는 건강하게 자랐다. 정말 감사하다.

    

 엄마가 웃어주면, 화답해주듯 'heavenly smile' 을 선사하는 딸을 보노라면 육아의 고단함도 이내 잊혀진다. 조금은 늦게 첫 아이를 낳은 덕으로, 먼저 육아를 경험한 선배들로부터 듣는 육아 팁도 풍성했다. 50일에서 100일 사이가 힘들다. 아니다, 12개월까지가 가장 힘들다. 진짜 육아는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들의 체험담은 생생하면서도 다양하다. 아이의 타고난 성향부터 산모 본인의 건강상태, 배우자 등 육아를 돕는 사람과의 관계 등 그 배경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각자 스토리는 달라도 메시지는 같았다. 그때 그렇게 “힘들어하지만 말고, 그 시간을 더욱 즐길걸 그랬다”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아쉬운 것 투성이인 게 어디 육아뿐일까. 

 그 소중한 팁을 알고 나니, 늦깎이 첫 아이 엄마는 견디는 게 훨씬 수월했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면, 그 기다림이 고통을 가중시키지만, 이 시간이 잠시 뿐이라고 생각하면 견딜만해지고, 즐겨볼 용의도 생긴다. 하물며, 보석보다 귀한 내 딸과 보내는 짧디짧은 시간이라 생각하면, 이 시간을 죽지 못해 견딜 이유는 더더욱 없어진다. 그렇게 첫 아이가 10개월이 될 무렵, 우리는 둘째 아이를 갖기로 했다. 이를 위해 5개월까지만 모유수유를 했다. 단유를 하자, 월경이 아주 정확하게 28일 주기로 돌아왔다. 몸이 임신 했던 일을 기억하고, 다시 임신하기 좋은 몸으로 바뀐 것 같다. 그렇게해서 다음 해 봄에 둘째가 우리 곁에 온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기록을 시작하며


 결혼 5주년을 맞이한 지금,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본다.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을 하고, 부부가 서로 맞춰가고,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배우자 가족들과의 이질감을 극복해 가고, 또 아이를 어렵게 갖고, 기른다는 것. 지극히 내 위주였던 개인의 삶에서, 단체생활의 일상으로 나아간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불협화음 가운데, 가까스로 자연스러움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각자는 얼마나 고군분투 해왔는가를 생각했다. 부부의 평범한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한 모퉁이를 터닝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부부가 용기내어 함께 기록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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