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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Zorba Feb 22. 2019

주말아빠, 아빠앓이를 하며 아이들이 배운 것

(19) 첫째의 둘째사이_엄마

 

 아이들이 한동안 아빠 없이 지냈다. 시작은 두 달 반 이었다. 월급의사로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이 개원을 결심해서다. 네 가족이 살던 곳에서 무려 네 시간이나 떨어진 서울에서 새로운 일터를 꾸리게 된 것. 매일 먼 거리를 오갈 수 없는 형편이니 남편은 당분간 서울살이를 하고, '주말아빠'가 되기로 했다. 남편이 서울로 떠나, 개업을 준비하고 적응하는 동안, 딸들은 엄마와 함께 지냈다. 아이들은 주말에 혹은 2주에 한 번 아빠를 만났다.    


 자매는 보통 밤 아홉 시부터 아침 일곱 시 까지가 취침시간 이었는데, 자정 혹은 새벽 두 시나, 세 시 두 아이가 번갈아 가며 일어나 서로를 깨우곤 했다. 아빠가 있을 땐 없던 일이다. 통잠을 시작했던 둘째는 아빠가 없고 부터는 밤사이 많게는 일곱, 여덟 번 깨기도 했다. 아빠의 빈자리를 아이들도 몸으로 느끼나 보다. 특히 아빠사랑이 각별했던 첫째는, 자다 깼을 때, 엄마가 동생에게 가 있으면 그 서운한 마음이 더 폭발적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렇게 달래줄 이가 엄마 한 사람 밖에 없는 상황에서 둘이 함께 우는 난감한 날이 잦았다. 6개월, 23개월이던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는 잠을 못 이룰 만큼 컸나 보다. 첫째는 특히 아빠 사랑을 많이 받아오던 터여서, 나 모르게 아빠앓이를 하며 많은 시간을 견뎌 온 눈치다. 어린이집에서 느닷없이 아빠를 찾으며 울기도 했다고 하니. 선생님이 수업자료로 가족사진을 예쁘게 인쇄해서 주니, 첫째는 “고맙습니다.”하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냉장고 벽에 붙여놓은 그 사진만 보면 “고맙습니다.” 하며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은 숨기거나 덮어 놓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견디다 못한 첫째의 그런 마음은, 잠이 쏟아질 때, 혹은 아플 때 더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녀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이다. 엄마가 둘 중 더 어린 둘째를 먼저 진정시키기 위해, 우유를 먹이고, 업어 재워야 한다는 것을 첫째는 안다. 알지만 서운한 것이다. 첫째는 엄마를 잃은 듯 서럽게 “아빠!” 하고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러면 둘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집이 쩌렁쩌렁 울리게 울었다. 그러다보면 엄마인 나도 난감한 마음에 눈물이 나곤 했다. 셋이 그렇게 자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한 날이 많았다.


 나는 남편에게 혹은 친정엄마에게 최대한 나의 괴로움을 표현함으로써, 그 힘듦을 해소했다. “아이들이 너무 안 잔다”고 남편에게 하소연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거짓말같이 금방 잠들었다. 배출하면 좀 나아지는 마음이 있다. 물론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 힘듦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건 사실이다. 공감이 그런 것이니까. 나 혼자 이런 어려움을 견뎌내고 있는 것 보다는 누군가 알아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어, 아이들에게 조금 더 부드러워지나 보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풀린 엄마 품에서 아이들도 곧장 잠드나 보다.         




계속되는 아빠앓이

 남편이 다니던 병원을 그만 두고, 짐을 꾸려 서울로 떠나고, 친정 부모님께서 오셔서 당분간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시기로 했다. 하지만, 두 아이를 봐주러 오시기 위해 꾸린 짐가방을 차에 싣고, 아버지는 병원으로 향하셔야 했다. 우리 집으로 오시기 전날 아버지는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가셨다. 한 달 반 동안의 입원생활. 원인을 바로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급히 심장수술을 받으셨다. 계획은 틀어지라고 있는 법인가 보다.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을 연습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서울로 이사하면 어차피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기 어려우니,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예행연습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가 건강하게 회복되시는 게 우선이었다.    


 그 사이 시어머니도 왔다갔다 하셨고, 이래저래 돕는 인력들이 시시때때로 있었지만, 엄마의 몫은 여전히 고스란히 거기에 있었다. 투정일수도 있다. 하지만 형편이 넉넉해서 24시간 아이를 돌봐주는 입주도우미를 두고 있다 해도, 본질적으로 엄마 몫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시절을 돌아보면 새벽녘 아빠앓이를 하는 두 딸의 마음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 그때 우리 딸들에게 필요한 엄마 역할이었던 것 같다.     


 떨어져 있는 동안 남편은 잠들기 전에 아이들과 매일 영상통화를 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정신없이 바빴던 남편은 한 번 잠이 들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새벽에 깨어나 서러운 마음에 “아빠. 통화!”를 외치던 첫째에게 통화 연결이 어려움을 알리는 것 역시 고역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빠 목소리를 녹음해 들려주기도 했다. 첫째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녹음기를 들고, 침상에 누워 아빠 목소리를 듣곤 했다. 당시에 그 시간은 첫째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주말아빠 생활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섯 시에 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던 남편, 거기에 육아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의가 충만했던 남편 덕에 나는 용기 내어 둘째를 낳았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두 딸과 내가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남편은 열 시를 전후해 귀가한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아빠는 여전히 주말아빠다. 평일에는 거의 아침에만 잠깐 아빠를 만나는 셈이므로. 늦은 시간, 아빠를 기다리다 아이들은 잠든다.

 

 두 아이에게 잠이 몰려올 때 어려움은 여전하다. 뒤로는 첫째를 업고, 앞으로는 둘째를 안고 재우는 날이 잦다. 첫째가 새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동안에는 고단해서 오후 늦게까지 안 씻겠다고 버텼다. 그러다 둘째가 잠투정을 시작할 즈음, 첫째는 응가를 한 후, 목욕하겠다고 목욕탕에 난입해 징징대곤 했다. 그러면 둘째를 업고, 첫째를 씻기기도 했다. 


 조금 적응이 되자, 첫째는 잘 시간이 되면 스스로 잠자리에 눕는다. 하지만 여전히 “아빠 사진.” , 혹은 영상통화를 해달라는 의미로 “아빠 통화.”라고 하거나, “아빠 아빠!”를 외치다 잠들기 일쑤다. 아이들의 마음에서 아빠만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누가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 아빠만 그런 건 아닐 테다. 육아에서 주양육자는 아이들에개 그렇게 큰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 둘 다 엄마가 아닌 다른 이가 재울 때는 더 많은 품이 든다. 특히 둘째는 더 심하게 울다 잠들거나, 잠들기 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그래서 첫째를 재우다 문 밖에서 들리는 둘째의 서러운 울음소리는 말 그대로 맴찢이다. 

 

 야근이 잦은 아빠 대신, 자주 자신을 돌봐주시는 시터 선생님의 남편을 더 좋아하게 됐다는 친구네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아이는 사랑이 많은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그러니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아이가 온전히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나이로 자라기까지는 손이 정말 많이 간다. 그런 상황에서 엄마 혹은 아빠가 혼자 육아하기에는 여전히 벅찬 상황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집이든 주양육자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상황에 맞딱드렸을 때, 혹은 혼자서 둘 이상의 아이를 돌보기 힘든 상황이 왔을 때, 아이들에게 이를 이해시키고 그 빈자리를 채울 방법을 찾는 시간이 뒤따른다. 양육자 본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마음이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며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첫째가 “아빠 좋아!” 라고 했다. 엄마 독사진을 보여주자, “엄마!” 했다. 아빠는 좋고, 엄마는 그냥 엄마라고 하는 것이다. 아빠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은 장차 누군가를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와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을 통해 ‘그리움’을 배우고, 또한 그리운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과 보지 못 할 때 마음의 어려움도 알게 된 것이리라.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견뎌내야 하는 자기 몫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희미하게나마 배우고 있을 것이라고, 이 시간을 긍정해 본다.     


 그 사이 아이들은 또 무럭무럭 자랐다. 이제 9개월과 27개월인 두 딸. 아빠는 여전히 늦은 퇴근을 하고, 외할아버지는 수술 후유증으로 때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신다. 하지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라는 노래로, “할아버지 빨리 나으세요!” 라는 첫째의 메시지는 영상으로 담겨져 거꾸로 어른들을 응원한다. 둘째는 외할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흥을 다해 몸을 신나게 흔든다. 이 또한 아빠와 외할아버지를 힘나게 하리라. 작고 작은 이 아이들의 몸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이제는 도리어 어른들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이 놀랍다. 고단한 시간이 남기는 추억 또한 진함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시간을 하릴없이 흘려보내기 보다 더 잘 보내기 위한 고민은 그래서 계속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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