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 이어서 쓰는 84번째 습작
'시를 쓴다.'라는 표현은 무겁다. 말하는 순간, 내가 관련 전문지식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 같고 등단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을 만든다. 일상 속에서는 나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이 써지며 내 기존의 말, 행동에 대한 에너지를 잡아먹어버린다. 그렇기에 쉽게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기 시작한 것은 글 읽는 것은 좋은데 한 호흡으로 읽지 않으면 작가가 내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전달이 중간에 끊기게 되고 짧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이는 '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좋아하다 보니 '시'라는 것을 흉내 내 본다.
사실 나는 '시'를 쓴다는 것보다 '쓰다'라는 행위를 더 좋아하는데 목적과 부합하는 것이 시이다. 말은 휘발되기에 우리의 좋은 말들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하였고 그런 남아있는 글은 5년 전, 10년 전 것도 남아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원래 인스타에 올렸는데 어느 날, 직장 동료가 인스타를 발견하였고 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좀 더 솔직한 나의 표현을 하기 위해 이번, 처음으로 브런치를 활용해보려 한다. 주로 글로 남기고 싶은 것은 내가 얻은 시상의 시작과 시이다.
시 제목 : 소중한
어느날 불현듯
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시시콜콜한 대화 가운데
한가지 질문이 들어온다.
저번에 만났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그말을 듣고 바로 대답한다.
아임 파인 땡큐 앤유 같은 사람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약속을 마친 후 집으로 가는 길
대화 속 오간 단어를 곱씹는다.
다른 사람을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듯 어렵고 무심한듯 신경쓰이는 일이더라
사람의 가치를 단어로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기에 다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누구나 어느 소중한 순간의 아이이자
자식이고 부모이며 형제였을 것이다.
이번 시를 써야겠다고 온 지점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을 표현할 때의 자연스러움이다. 시를 적다 보면 행동을 조금 잘게 잘라서 그 순간을 찾게 되는데 그 지점이 위와 같은 순간이다. 인간이 언어에 잡아 먹인 것인지, 사회적인 대화 속에서 단어라는 울타리에 사람이 제한된 것은 아닌지, 여러 의문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같은 순간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다르기에 시에 대한 생각이나 시상을 느꼈던 순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궁금하기도 하다.
비록 몇 명의 사람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시로 새로운 물음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면 내 시가 유의미한 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 글이 부디 좋은 사색의 시작점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의 어투를 '-다'로 일치시켰기에 의견을 비추는 데에 말의 거리감이 너무 짧았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