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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인배 Feb 05. 2024

완벽주의의 이면

나에게는 채찍이 아니라, 인정이 필요했다.

'완벽주의자'를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기를 원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사람. 하지만 이건 한 줄로 요약할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스스로 "나는 완벽주의자다."라고 말할 때, 인생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이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살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옳은 겁니다], 캐서린 모건 세플러 지음 中

 

어린 시절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현대미술가가 되고 싶었던 학창 시절에는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낼까, 나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에만 집중했다.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 그저 어떤 작품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나에게 완벽주의 기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대학생 때, 대외 프로젝트와 인턴십 등을 하면서였다.

부족하다고 느껴지거나, 애매하게 마무리 되는 경우는 성에 차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만족스럽게 해내겠다는 다짐은 점점 '완벽하게 해야지'로 바뀌면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즈음에는 내 산출물에 어느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만족을 모르고 달리는 나에게 박수쳐주던 이들, 끌어주던 이들, 밀어주던 이들의 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성장할 수는 없었다. 성장이 둔화되는 시점이 되면 어김없이 불안해졌다.

'나 왜 여기서 더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지?'


문제는 그렇게까지 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Goal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회사 동기들에게 종종 듣던 말이 있었다.

너는 그래서 대체 뭐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까지 하는데?



그냥 '잘해야지', '작년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지'.라는 막연한 표현으로 누구도 정의할 수 없는 (스스로도 정의하지 못한) "완벽한 기획자인 나"를 쫒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스스로 느꼈던 완벽주의자의 이면은 2가지였다.


1. 완벽주의자는 사실 실패가 두렵다.

완벽주의자들은 대부분 자기의 성공을 위해 분발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실패를 피하는 게 목적인 경우가 많다.
-[그럭저럭 살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옳은 겁니다], 캐서린 모건 세플러 지음 中

성장을 쫒았다고 하지만, 사실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더불어, 실수와 실패를 줄이는 것을 성장으로 인지하기도 했다.

무엇이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실패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비난 받거나, 쓸모 없고 싶지 않아서 완벽을 추구해왔을 뿐이었다.


2.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강박과 불안마저 이용한다.

강박과 불안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나는 이제 그 감정을 일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면 나는 불안에 잠을 못이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스스로를 너무 잘 알았다. 어떻게든 해내야 편안해지는 나를.

속으로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일은 해결이 되니까.

내가 무리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해결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되었든 일을 해결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불안과 강박으로 일을 몰아쳐 해낼 스스로를 믿고(?) 과중하게 업무 계획을 짰다.

이상적인 업무 프로세스, 안정적인 일정을 위해서....


그렇다면, 나는 완벽주의를 벗어나야 하는 걸까?

그것은 아니었다.

완벽주의는 분명 나의 커리어에 동력이 되어주었다. 

문제는 스스로를 정서적으로 학대해왔다는 것이었다.


1. 실수에서 교훈을 얻으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스스로를 보듬어야 했다.

어떤 실수든 스스로를 크게 자책했다. 실수에 대해서 스스로를 책망하느라, 실수가 주는 교훈은 돌아볼 새가 없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을 하고 문제를 복기는 했어도 스스로를 보듬어주진 못했다.

나 스스로가 나에게 가장 냉정하고 엄한 자비없는 대상이었다.

실수가 괴로워 스스로를 상처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줘야 했다.


2. 스스로의 성과를 기뻐해줬어야 했다.

좋은 평가를 받아도, 승진을 해도 언제나 부족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좋은 평가의 칭찬보다 이어지는 피드백이 더 신경쓰였고, 승진을 해도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책임감에 기쁨은 뒷전이었다.

스스로 이뤄낸 성과에 대해서 기뻐하고 뿌듯함을 느껴도 되었을 텐데, 나는 그저 그 다음 스텝에서 내가 해야할 일, 내가 보강해야할 것들만 생각했다.


스스로를 아끼지 않았고 채찍질만 해오던 나이니, 나 혼자만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좌절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것 같다.


나에게는 채찍이 아니라, 인정이 필요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했다.

그 과정의 이름은 '회복'이었다.


스스로를 상처 입혀온 나에겐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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