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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인배 Jan 29. 2024

변화해야만 하는 시점

내가 다시 사랑할 일상을 찾고 싶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나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자, 나의 불안의 원인에 대해 좀 더 궁금해졌다.


일을 해나가면서, 언젠가부터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기간 내에 일이 안 끝나면 어떻게 하지

오픈하고 버그를 발견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놓친 게 있으면 안 되는데...


이런 불안함을 기반으로 나는 좀 더 꼼꼼해졌고, 실수를 줄여나갔다.

그래서 불안함은 나에게는 일을 성공시키는 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에 끌려다녔을 뿐, 다루는 방법은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불안함 감정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으로 예상되는 나쁜 예측/문제들을 해결하기 바빴다.

다행이자 불행이었던 것은 일을 해오는 10여 년 간은 그 문제들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였다는 것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리자, 나의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했고 또, 나를 채찍질했다.

'너는 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냐'며...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며 일을 끌고 왔던 것이다.


그렇게 크게 마음을 다치고, 아픈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동안 일은 내 삶에 전부였지만, 앞으로도 그렇게만 살 수 없었으니까.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고자 시작한 일로 인해, 내 삶의 색채가 불안으로 물드는 것은 너무 괴로웠으니까.


일을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드디어 왜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일이 나를 갉아먹는 독약이 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일에 수반되는 이 불안과 우울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내 일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


맞닥뜨린 어려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1. 사업이 진행을 위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다. 그래도 진행이 안된다.

거의 2년째, C레벨로 제안서를 올리던 중이었다.

상무님이 가져오는 CEO의 피드백은 대부분 호평이었다. 그럼에도 사업은 진행이 더디었다.

라이선스가 필요한 사업이었고, 그 라이선스를 직접 확보하긴 부담스러워 여러 다른 협력사들과 미팅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최종 단계에서 협력사를 선정할 시점이 되면, CEO 제외 C레벨들이 번갈아가며 퇴짜를 놨다.

말할 수 없는 대외비적인 사유는 넘치고 넘쳤다.

그렇게 원인도 모른 채 엎어지는 경험을 반복했다.

제안서도 분명 부족했을 것이다. 아니 제안서가 문제일까 싶었다. 그래서 보완하고 보완해 나갔다.

하지만 외부적인 진행 불가 사유는 나만의, 우리 조직의 힘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스스로가 나의 역량 부족을 탓하며, 채찍질해 왔다.


2. 신규 입사자들의 온보딩이 실패했다.

신규 도메인에 진출하기 위해, 해당 도메인의 경험이 있는 경력자들을 채용했다. (내가 한 것은 아니고, 임원단에서...)

다만, 개개인의 역량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나니, 그들의 성향이 맞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이 하나의 결과물을을 도출하기까지에는 잡음이 많았으며 서로 싸우기 바빴다.

그 과정에서 기존 조직 내로의 온보딩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기획팀장으로서 비전을 통한 동기 부여를 제시하지 못하였음을 자책했다.

내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내가 통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음에도, 조직의 협동에 내가 기여해야 한다고 스스로 과한 책임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3.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업무양을 넘어서고 있었다.

주간으로 있는 CEO 보고 문서, 다른 조직들과의 협업 미팅, 지속적인 서비스 프로토타이핑 관리, 팀원들에게 다 분배할 수 없는 기획서들, 나아가 외부사와의 미팅을 위한 제휴 문서들...

히스토리를 가장 많이 알아서, 내부 기술 이해도가 제일 높아서.

그렇게 하나둘씩 챙겨 오던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나의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져갔고, 더불어 해결되는 단계는 없이 새로이 추가되는 단계들에 몸과 마음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냉정히 판단해 보면 나 혼자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이 더딤에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불안에 몰고 갔다.


뭐를 놓쳤을까?

뭐를 더 해야 좋을까?

어떻게 하면 통할까?


내 앞에 있는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나는 충분히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실패야. 안 되겠다. 그만하자."

누군가가 그렇게 결론 내려주기를 바라왔던 것 같다.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프로젝트는 더 이상은 못하겠다.
이 도메인은 우리가 덤벼들만한 것은 아니었던 거 같아.


인정하기로 했다.

이 이상을 하는 것은 무리다.

나의 한계를 알고, 이제 나를 보듬어줘야 할 때였다.


그럼 이다음은 뭘까?


내가 다시 사랑할 일상을 찾고 싶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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