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떻게 하면 쉴 수 있는 건데?
나에겐 지금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쉬어보자!
회사에 친한 동료들, 주변에 친한 친구들에게 난 쉴 거다! 정신적, 육체적 회복이 필요하다! 외쳤지만 휴가 가는 거 말고 뭘 어떻게 해야 쉴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장기 휴가를 내는 것은 일을 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를 스스로 인정하고 보듬으려면 여유가 필요했다. 여유를 어떻게 만들지?
단순한 결론에 이르렀다. 일단 주말을 잘 쉬어보자!
일을 안 하면, 그럼 그게 쉬는 건가?
성과나 산출물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럼 회복이 되는 건가?
이제는 병원 진료 시간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시점이었다.
그동안의 병원 진료는 나의 분노와 허탈감, 무기력함, 우울함에 대한 호소를 하는 시간이었다.
분명 그 시간에서도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떤 지, 저렇게 해보는 것은 어떤 지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 같은데 깨달음이 없었던 환자에게는 와닿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해야 나의 이런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의사 선생님에게 다시 물었다.
일과 나를 조금 떨어뜨리는 시간을 가지세요.
새로운 공간에 나가보는 것도 좋고,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좋아요.
일단 주말에 절대 집에 누워만 계시면 안 돼요. 움직이세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편은 주말마다 부지런히 나를 깨워 물어보았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래?"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며 직장인으로 받는 근로소득의 의지도 불태워보고,
카페에 앉아서 수다 떨면서 주변 소식, 회사에서 화나는 이야기도 해보고(이것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자꾸만 해야 하는 일이 생각나고,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조급증이 올라왔다.), 책도 읽어봤다.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고 구매하며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와 관심사가 존재하는 지도 마주했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내가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토요일 오전이 되면 주말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고민했다.
다양히 움직이면서 내가 회복할 수 있도록 리프레시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사실 그러나, 그건 또 그때뿐이었다.
문득문득 해야 하는 일, 풀리지 않은 일,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잠시 미루어둔 것뿐이었다.
나의 강박과 불안이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고, 그냥 잠시 미루어둔 것뿐이었다.
잠에 들기 전에 걱정과 고민을 되새기고, 잠에서 눈을 뜰 때 괴로웠다.
"아, 가기 싫어"
출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짜증이 올라오고 우울했다.
쉼을 통해서, 회복을 통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자 했다. 그리고 그 여유가 나의 강박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쉼"으로는 강박과 불안을 미루어둘 수는 있었지만,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내가 쉬는 동안에도 일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여러 문제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쉬는 것"조차 잘 해내는 것에 집중하였다.
쉰다라는 행동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쉬기 위한 액션들을 했을 뿐이었다.
나의 마음이 이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면, 그 정도도 충분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그보다 큰 것이었나 보다.
주말의 휴식 시간은 그저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였다.
그리고 도피는 늘 그렇듯, 그 끝은 부정적인 감정이 채근하며 쫓아왔다.
할 일을 미뤄두었다는 죄책감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무력감이 더 크게 돌아올 뿐이었다.
이건 뭔가 방법이 잘못되었네.
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져야 할 일이었다.
그래야 진짜 쉴 수 있었던 것을 몰랐다. 채근하듯이 "자! 이제 쉬었으니, 나아져라!"하고 있었다.
채근하지 않고, 너그럽게 나의 못난 모습을 이해해줘야 할 일이었다.
일하기 싫은 나, 일을 못하는 나,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나.
이 모든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겐 필요했다.
스스로 "이상적인 모습의 완벽한 나"를 쫓아내기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믿었던 것 같다.
이 시기만 버티면, 진짜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내가 될 수 있다고.
이게 무슨 이겨내야 하는 시련도 아닌데 왜 자꾸 스스로에게 퀘스트를 줄까.
나에게 부족한 것은 '자기 객관화'였던 거 아닐까?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스스로의 능력과 인내심, 사회성을 너무 높게 측정하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그것이 나의 목을 조이는 것이 아닐까?
이 "주말에 쉬는 행위" 끝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제삼자로서 바라보기"를 해보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