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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인배 Oct 22. 2024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법

'나'에게 조언하기

나를 제삼자로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흔히 남에게 (마치 나는 아무 문제없고 잘난 듯이) 하던 상황에 대한 분석과 조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아니라, 내 친구가 이 상황을 토로했으면.
그러면 나는 그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줄까?


확실한 것은 "이거 다 네가 이겨내야 하는 시련이야." 따위의 말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모든 사연을 들은 후에 잘난 듯이 말했겠지.


너무 힘들면 도망쳐도 돼.
그거 네 잘못도 아닌데 왜 네가 다 끌어안고 있는 건데?
억지로 버티다가 너만 망가져. 어리석게 굴지 말고 관둬.


남에게는 참 너그러울 일이었다.

바로 해줄 수 있는 위로와 조언이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는 절대 해주지 못할 말이었다.

남과 내가 뭐 얼마나 대단히 차이가 난다고,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완벽주의자는 이렇게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티며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려왔다.

"왜 너는 이걸 제대로 처리 못하냐"라고.


새삼 남에게 잘난 듯이 하던 조언들이 다 창피했다.

스스로는 실천에도 못 옮길 거면서, 쿨하기는 혼자 다 했네...

'나'의 상황을 제삼자라고 생각하니 강박에서 벗어날 새로운 방법이 보였다.


그냥 그만하자.
이건 내가 해서, 아니 누구라도 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야.


'멈추기'였다.

남 얘기라고 듣고 봐도 답이 없는 상황을 계속 끌고 나가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과신이었다.

무엇이든 될 때까지 붙들고 나아가던 나였어서, 내가 스스로 멈춰본 적이 없어서 그만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사실 바라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제 그만하자고 해줄 때까지.

'이건 더 이상 해서 될 일도, 될 관계도 아니라'고.

'이 프로젝트도, 이 협업 관계도 이제 그만하라'라고 누군가 말해주길 간절히 바란 내가 있었다.

스스로 멈출 수 없어서, 멈춰 줄 '누군가'를 기다렸다.

제발 멈추고 싶다고 바라는 속마음을 마주했다.

그러나 그 속마음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억눌렀다. 포기한 것 같아 보이기 싫어서.


이제는 내가 그 '누군가'가 될 차례였다.

이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들은 더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못 이어간다.

나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나에게 내가 마침표를 주기로 했다.


그동안의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은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회사를 옮기는 것'으로 해결될 것은 아니라고 하셨었다.

새로운 환경으로 강박과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이것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자고 하셨었다.


매우 공감하는 바였다.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아온 내가 한순간에 바뀔 리 없었다.

언제든 내가 나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오면, 내가 욕심나는 Task를 손에 쥐게 되면 나는 나에게 또 챌린징을 주고 성장의 기회라며 스스로를 몰아붙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은 다스리는 훈련을 하기에 현실이 너무 하드코어 하여 자신이 없었다.

내가 나를 다스리는 시점보다 외부 요인의 침투가 더 빨랐다.

그래서 우선은 끊어내기를 먼저 하기로 했다.

강박과 불안이 극에 달한 내가 아직은 이 모든 것을 다스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선생님, 저는 그냥 이직을 하려고요.


이제 이 모든 것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하자마자 회사에 저 이거 이제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멋있게 외칠 수는 없었다.

나는 현실에 존재하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한 달 한 달의 고정 수입인 월급이 소중한.

지금 겪는 이 모든 상황과 경험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진행할 것은 이직 준비였다.


돌아온 2주 만의 진료에서 내 결심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걱정하셨다.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렸을 때, 불안감이 강하게 올라올 수 있다고 말씀 주셨다.

그리고 이직이라는 과정이 순탄할지 더 불안해하지 않을지 잘 마음을 살펴야 한다고 하셨다.

회사를 옮겼을 때, 나를 증명하고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게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당장에 너무 괴롭다면 피하는 것도 괜찮다. 끊어내도 괜찮다고 응원해 주시었다.

이직이라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진료와 처방된 약과 함께 잘 다스려보자는 다짐으로 '끊어내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이직을 결심하고 준비하면서, 현 회사에서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일과 사람들은 곧 사라질 것이 되었다. (이직하겠다고 결심만 했을 뿐이지만.)

당장 없어지고 해결되지 않아도, 내가 곧 이와 상관없는 사람이 될 거라는 다짐은 꽤나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


이제 나는 여기서 이들에게 나를 더 증명하고, 이들을 다 융합시키지 않아도 돼.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완벽한 조직과 완벽한 프로덕트(어쩌면 완벽한 기획서였을까)를 만들어보겠다는 스스로의 챌린지가 당연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도록 귀를 막게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직으로 관심사를 돌리자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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