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것
이직을 준비하면서, 이 회사를 떠난다면 잃을 것들이 자연스레 생각났다.
나의 평가, 직책, 동료...
10년이라는 사회생활 중 절반의 시간을 보낸 회사였다.
힘들다, 괴롭다 하면서도 이직을 다짐하지 못했던 것은 이직했을 때 잃을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1. 팀장이라는 직책
직장생활 8년 차에 작지 않은 규모의 회사에서 팀장직을 달면서 나름 내가 쌓아온 것들에 애착이 있었던 것 같다.
직책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팀장 발령'이라는 것은 나의 노력에 대한 하나의 인정 지표 같은 것이었다.
직장생활을 함께 시작한 첫 회사의 입사 동기들도 하나둘씩 어디서 팀장이 되었더라, 실장이 되었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던 시기였다. 마치 직책을 달아야 앞서 나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스카우트가 아닌, 직접 찾아가며 지원하는 이직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었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내려놓기', 그 자체가 왠지 내가 실패한 기분, 내가 뒤쳐진 기분을 갖게 했다.
2. 내가 이곳에서 쌓아 올린 좋은 평가
직장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좋은 평가는 그 자체로 중요한 자산이다.
그 평가는 나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그것이 내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힘이 된다.
이전 회차의 글에서도 기록했듯이, 직장 생활 내에서 늘 좋은 평가를 유지하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긴 시간 쌓아온 이곳에서의 평가, 그 히스토리는 아까웠다.
내가 어떻게 쌓아 올렸는데... 내 저녁, 주말을 갈아 넣은 평가였다.
조금 부진한 때에도 나를 마냥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않을, 보장된 면죄권을 하나 쥐고 있던 것이었다.
이직한다는 것은 이제 그 권리를 다 내려놓고, 다시 0부터 나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점은 진료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우려하는 지점이었다.
내가 또다시 타인의 시선만이 아닌, 스스로에게까지 나를 증명하려고 무리할까 봐.
나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남의 평가가 어떻듯 스스로에게 또 챌린지를 부여할 텐데, 주변의 인정마저 없으면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그리고 사실 그 지점은 나도 확답할 수 없었다.
내가 또 나를 몰아붙이지 않을까?
3. 합을 맞춰왔던 동료들
결과물을 위해 함께 발맞춰왔던 동료들과의 시간은 너무 아쉽고... 아까웠다.
이제 함께 일하려면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좀 알게 되었는데, 이제 서로 신뢰가 쌓인 것 같은데.
진행되지 않는 프로젝트를 붙들고, 어떻게든 진행이 될 거라고 주변을 다독이며 버티고 있었던 이유는 동료들과 쌓아온 시간, 조직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이런 관계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쌓을 수 있을까?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100% 만족하는 최고의 조합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로 맞춰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관계를 놓치는 것도 새삼 아쉬웠다.
회사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애정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직을 해도 다시 또 밖에서 얼굴 보면 되지, 뭐' 생각하면서도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서 지낸 시간들이 다 헛 것은 아니었나 보다.
4. 팀원들에 대한 의리
내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내가 제일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팀장이 된 이후로는 줄곧 팀원들의 성장과 멘털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업무가 잘 풀리지 못하는 때도 있었고, 의욕이 꺾이는 시점도 있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취할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지를 독려했다.
모르겠다. 그것이 그들에게 최선이었을지는.
신규 사업을 준비하는 혼란한 과정에서 기획팀으로서 프로덕트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고자 그들에게 강하게 요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너무 높은 기준을 내세워 그들을 압박하지 않고자 1 on1도 자주 나누었다.
서툴지만, 내가 배워온 범위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서포트하고자 했다.
나는 그들에게 열심히 해보자고, 우리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왔는데, 이대로 나가면 나는 팀원들을 저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고민의 끝에는 결국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의 앞으로의 평생을 좌우할 것들이었다.
기존 조직 내에서 준비해오던 신사업의 프로덕트 담당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1년을 넘게 진행했다. 내가 실제 프로덕트를 만지지 못한 것도(물론 만진다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년이 넘어갔다.
서비스 기획자에서 PM/PO의 업무까지 확장해 온 나는 한 번도 프로덕트에서 멀어진 적이 없었다. 늘 무언가를 새로 기획하고 운영하고 분석했다.
초반에는 새로운 프로덕트를 고민하고 있기에 그런 불안이 덜했지만, 사업의 시작이 점점 늦어지면서 프로덕트의 콘셉트만 여러 번 고치던 참이었다.
실제 시장의 피드백도, 사용자의 반응도 확인해보지 못한 채로 도메인 전문가의 의견과 사업 검토 측면에서의 피드백 만으로 상위 기획을 n번째 고쳐나가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사용자가 원하는 프로덕트가 맞을까? 나는 지금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나?
어느샌가 이게 아닌데, 이 방향이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어긋남이 내 안에서 느껴졌다.
사실 그 모든 것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시장에 나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용자의 반응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회사 안에서는 이 사업은 진행될 수 없다'라고.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제 내 커리어가 걱정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나의 1-2년이 공백으로 날아간다고.
(사실 이것도 불안이고, 강박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와 산출물이 없다면 그 기간은 무의미하다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커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면서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바쁘기는 했다.
마음을 다스릴 여유 없이 달리면서 희망과 기대가 없는 나날은 나를 좀먹고 있었다.
나의 커리어와 일상생활, 정신 건강을 위해서.
이제는 내가 애정하던 이 조직과 이별할 때라고 생각했다.
지키고자 한 것은 다 타인의 시선과 생각이었지만 지켜야 할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를 지키고자, 내가 지키고자 한 것들을 버리고 떠나기로 했다.
이대로면 내가 지키고자 한 것들도, 지켜야 할 것도 지키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