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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인배 Jan 08. 2024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나에 대한 책임감은 왜그렇게 없었던 걸까?

"선생님, 저 휴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진료실에 앉아, 의사 선생님 뒤편으로 보이는 여러 정신 건강 의학 서적의 제목을 눈에 담으며 나직이 내뱉었다.


"휴직이요? 그거도 좋은 생각인데요. 지금 당장 추천할 수는 없겠네요."

찬성표를 내어줄 줄 알았던 의사 선생님이 단호하게 반대표를 냈다.

"쉬는 거 너무 좋고, 필요하죠. 휴직하신다고 하면 당연히 진단서는 끊어드릴 수 있어요. 근데,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하신다고 하면 더 가라앉고 우울해질 거예요. 휴직하고 뭘 하겠다는 계획이 있다면 찬성입니다."


충동적으로 현재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신 걸까?

계획대로 안 되는 거에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번엔 계획을 또 세워야 한다네...

뭘 하겠다는 생각이 늘 있던 나였는데,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졌을까


쉬어야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안된다고 하셨다.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그 시점에 나는 무기력증이 심했다.

일을 하지 않는 주말이면, 하루 종일 누워만 있다가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이미 '집 밖에 카페라도 나가셔야 한다'라고 행동 처방을 받은 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래서, 계획 없이 휴직을 했다간 무기력에 더 심하게 빠질 것이라는 말에 동의했다.


모든 처음 겪는 넘어짐은 두렵다.

자전거를 배울 때도, 운전을 배울 때도

넘어질까 봐 두려워해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나는 이상을 쫓는 사람이었고, 운 좋게 그 이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넘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큰 패인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을 온전히 나의 실력으로 이루어 낸 것이라 착각했다.


일을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무엇을 해야 하는 가'와 '나는 왜 일하는 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내 자부심이었고, 오만이었다.


목표와 방향성이 없다니? 그런 한심한 이야기가 있어?


한번도 꺽여보지 않았기에, 흔들림만으로도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나는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늘 일을 사랑하고, 자신 있고, 목표를 위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과신했다.


누구든 목표를 상실할 수 있는 것을, 길을 잃을 수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부터 필요했다.

그래야 내가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당장 인정 해야했다.

나는 지금 맡은 프로젝트가 힘들고, 지금 협업하는 사람들이 싫다고.


억지로 싫은 것에 의미를 만들어 부여하고, 내가 해야하는 일을 거부하지 않으려는 잘못된 책임감이 문제였다.

나에 대한 책임감은 왜그렇게 없었던 걸까?


이상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상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무리해서 남들을 설득하고 동기부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상적인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 힘든 일을 힘들지 않다고 우기지 않아도 되었다.

이상적인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 나만의 힘으로 안되는 일을 못해낸다고 나의 힘 없음을 자책하지 않아도 되었다.


팀장이기 이전에, 기획자이기 이전에, 직장인이기 이전에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스스로 너무 쏟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병원에 다닌지 3-4개월이 지나고...

나는 드디어, '나를 돌보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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