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무 살이 되는 해는 쓸쓸했다. 대입 수시 원서 지원 결과는 처참했고, 정시 지원 전략을 세우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나의 수능점수는 처참하기만 했다. 친구들은 하나 둘 원하는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하였지만, 나는 이미 울고 불고 지쳐서 그 겨울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야 하나를 당일까지 혼자서 고민하다가 늦게나마 참석하여 앉아 있다가 온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나의 재수를 반대하였다. 그래서 혼자 동네 도서관을 다니면서 하릴없이 책상에 앉아 빈 종이에 새해 다짐을 끄적 끄적하면서 나의 20대는 시작되었다. 그때의 나에게 '성공'이란 꽤나 단기적이며 구체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는 일이었고, 나는 이를 악물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때에 나는 몇 권의 자기 계발서를 읽었는데 그중에 아직도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한 구절이 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내용은 이러하다.
한국 젊은이들은 스무 살이 되는 그 겨울에 강렬한 경험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성공과 성취감을 맛보는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좌절감과 함께 이십 대를 시작하게 된다. 수많은 동년배들의 성공과 실패가 이처럼 한 순간 안에 극명하게 나눌 수 순간이 또 있을까. 그러나 진짜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스물부터이다. 10대에는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그저 정해진 커리큘럼을 따라 '인생'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본인이 노력한 만큼 비교적 꽤나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스무 살에 느끼는 대입의 성공 혹은 실패가 마치 뒤집을 수 없는 큰 격차로 다가온다. 그러나 성인이 된 우리에게는 아직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놓여있다. 지금 앞에서 출발한다고 해서 반드시 항상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인이 된 후에는 오늘 하루 내가 어떤 일을 할지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며 노력만큼이나 선택이 당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글은 더 공격적이고 야망가 득하게 인생의 성공을 추구하는 글이었던 것 같다. 막연히 인생의 성공을 추구하자는 자기 계발서에는 신물이 나지만, 그럼에도 공감이 가는 점이 하나 있다. 10대 시절 우리는 많은 고민거리들을 유예하기 바빴지만, 성인이 된 후엔 스스로가 어떻게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지가 맹목적인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나는 인생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믿었다. 그리고 본인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부딪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동안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사람이었고, 일단 부딪히고 보는 성격이었다. 몇몇 회사에서 인턴도 해보고 언어교환, 배낭여행, 교환학생, 공모전,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았다. 해가 지날수록 이력서를 작성해보면 제법 빼곡하게 빈칸을 채울 수 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을 진득하게 오래 해보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나의 활동들은 깊이가 없고 피상적이었고,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진실로 느끼고 배운 것이 없었다. 빼곡한 이력서와는 다르게 나의 마음속은 공허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대학원 유학을 준비하여 2016년에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소한 연구 문제 하나만을 보고 살아왔다. 나의 연구 주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 영역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인기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더라도 그 분야가 미래에도 인기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굳이 세태를 좇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문제라도 오랜 기간 홀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면, 연구자로서 나만의 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달 전에 나는 나의 연구를 포기해야 했다. 연구를 진행하는 내내 내적 갈등도 있었고, 지도 교수와의 관계나 펀딩과 같은 외적 요인도 있었지만, 두 가지 요인이 헝클어져 어느 게 먼저였는지 알 수도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나에게 '실패'를 분석하여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수 있다는 말은 공허했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인지.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삶이라는 것은 내가 치열하게 고민한 만큼 풀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계획이 망가진 위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 우리는 종종 주위 선배들과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나의 현재 상황을 관찰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선택을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 더 옳다는 것은 현시점에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뿐더러 미래에도 여전히 옳은 방향이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 일이 헝클어져 (사소할지라고 하더라도) 작은 실패를 한번 경험해 보았을 때, 나는 우직하게 다시 도전해서 결국 그것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내가 충분히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주변의 선배 및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마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의 의견에 집중한다. 마치 그의 조언이 가장 현명한 조언인것냥 들린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한 길만을 묵묵히 좇아 나아간 사람이 그 길에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라는 사고의 관성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갑자기 큰 병에 걸린다거나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끈기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던 이가 오히려 기회비용을 털어내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더 행복하게 살 수 도 있다. 결국 삶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더 방황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고 싶은 데, 무엇을 시도해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스무 살과 마찬가지로 서른 살도 혼란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