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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대생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

by 재빵

나는 전형적인 한국의 이과 커리큘럼을 따라 자라왔기 때문에 글쓰기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였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대입'에 글쓰기가 평가요소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핑계였다. 당시에는 '수리 논술'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던 시기였지만, 정말 딱 맛만 보고 끝났으며 실제 대입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학에서 교양 및 졸업 필수 과목으로 글쓰기 수업 몇 개를 들었지만, 훈련이 충분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교양 수업에서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평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과제 리포트 같은 글을 쓸 때면 늘 평가자를 지나치게 의식했던 것 같다. 솔직함과 진솔함이 결여되었다. 지금도 오래된 클라우드 계정 어디엔가 저장되어있는 리포트를 꺼내 읽어보면 낯 뜨거워지기도 한다.


아마 제대로 된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은 대학원 때 논문을 쓰면서 였던 것 같다. 논문은 영어로 써야 했기 때문에 '글쓰기' 외적으로 언어 자체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다. 문장을 쓰면서 이 글이 문법에 과연 맞는 것인지, 글을 더 써나가지 못하는 것이 어휘 문제인지 그만큼 내 생각이 구체화되지 않아서인지 스스로에게도 모호했다. 그러나 돌아봤을 때, 글쓰기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글을 쓰고 고치고 고치고 하다 보면 처음에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글도 곧 적어도 내 눈에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온다. 내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그런 것 같다. 처음부터 계획하여서 체계적으로 쓴다기보다는 머릿속 어딘가엔가 맴돌곤 했던 막연한 단편적 생각들을 끄집어서 다듬고 정리하면서 글을 써 나간다. 글을 쓰는 순간 자체에는 '몰라, 이 글의 결론이 어디로 날 것인지'라고 생각하지만, 글을 완성할 때쯤이면 "히야, 내가 이런 글도 썼네" 하고 나름 대로의 자부심도 생긴다.


사실 내가 쓰는 글을 다른 이가 짬 내어서 읽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 내 리포트를 채점했던 교수도, 혹은 나의 논문을 읽어볼 독자도 나의 글을 읽기 위해 책상에 각을 잡고 앉아, 한 문장 한 문장 공을 들여 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글쓰기는 독자보다는 나 자신과의 치열한 대화인 것 같다.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생각(그것이 논리적이든 감상적이든)을 알게 된다. 내가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다. 이것은 테크니컬 한 글을 써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이다.


어떤 점에서 글쓰기는 코딩과 유사하다. 내가 연구를 하는 동안 많은 시간을 쓰는 구간은 코딩이다. 각종 수학적 이론들을 과학적 계산 (Scientific Computing)에 적용하다 보면 이론과 현실 세계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수학은 실제적이지 않으며 추상적이다. 이것은 수학이 갖는 장점인데, 왜냐하면 추상적인 세계에서 서술된 이론은 일반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미분 방정식 (ordinary differential equation)에 관련된 수학적 아이디어는 추상적이지만,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경험하는 물체의 거동을 일반화하여 서술하는 "뉴턴의 제2법칙, F=m(d^s / d t^2)"을 푸는 기반이 된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예시이다. 하지만 코딩을 하는 과정에서는 추상화되어있는 개념을 현실 세계로 끌어내리기 위해서 하얀 모니터 화면을 하나 띄워 놓고,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컴퓨터의 언어로 번역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코딩은 곧 추상과 실제 사이의 Gap을 메꾸는 과정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연구 아이디어를 쓰는 프로포절과 1년 여의 연구 활동과 결과를 요약하여 그 함의를 서술해나가는 논문 역시 기존에 추상적으로 구상하였던 내용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치에 맞게 서술해 나가는 것이다. (설령, 글에 대한 개괄적은 개요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추상적인 것이다.) 이 과정이 내가 하는 연구 활동의 중심이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의 능력이 꽤 많이 연구 능력 자체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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