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쫀드기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청소년문학을 즐기지는 않는다. 내게도 분명 그러한 시절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지금 돌아봤을 때 부끄러움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해 온갖 의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티를 내는 것이라며 억지로 감추는 시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절은 온통 부끄러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순수와 당위로 의도 없이 만들어진 미스터리. 책 표지에 적힌 문구인데, 어불성설인 것이,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들어진 미스터리라는 것은, 결국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쌓여 우연히도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당최 무슨 일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순수한 당위는 절대 꼬일 수 없다. 순수한 당위는 기본적으로 진실에 가까울 수 밖에 없으니까.
그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를 작가의 길에 끌어들인 소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만한 소설이다. 하지만 최근 TV예능에서 어릴 적 먹은 쫀드기의 맛을 찾는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후에 똑같은 쫀드기를 기적적으로 찾아내준다고 해서 그 때 그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도 지금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면, 내가 나의 청소년기를 부끄러워하듯 다른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고교2년 생인 미유키가 임신 중절 중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학교에 돈다. 유력 건축회사 사장인 아버지 겐지로는 임신을 시킨 자가 학생일거라 생각하고 복수를 위해 뒷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였던 나이토의 도시락이 경매로 넘어가고, 그 도시락을 먹은 야규가 비소중독으로 입원을 하게 된다. 즉, 나이토가 누군가에게 독살을 당할 뻔 했던 것.
그러던 중 야규의 누나인 마사코와 불륜관계였던 가메이가 야규의 집 마루 밑에서 시체로 발견 되고, 마사코 역시 완전히 잠긴 다락방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처음에는 미유키의 장례식장에 나타나 가짜경찰 행세를 하던 요시노와 임신중절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던 형사 노무라는, 일련의 사건들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들또래의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임신중절과 비소중독, 가메이 살인사건과 마사코의 밀실살인까지. 70년 대 일본 청소년들의 세태와 어른들의 사고방식 차이를 극명히 서술하며 일련의 사건이 비뚤어진 청소년들의 정의감에 발현임이 밝혀진다.
난 고전의 가치를 매우 높게 해석한다. 아무리 현대에 와서 재해석된다고해도 벌써 수많은 실험과 개조와 발전과 변형과 변태를 거친 현대의 작품들과 고전의 차이는 마치 인력거와 스포츠카의 차이와 비슷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무리 어린 시절의 그 재료와 그 공법으로 그 시절의 쫀드기를 재현해낸다고 해도, 내가 어릴 때 먹었던 그 쫀드기의 맛을 그대로 구현해낼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쫀드기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쫀드기를 먹고 감상하는 내 자신이 이미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7살의 나는 이미 없다. 그리고,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때와 변함이 없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쫀드기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크게 감동이나 재미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존경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만큼 정교하고 치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빼어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사건의 인과관계나 범행의 목적의식 등도 너무 빈약해서 어느정도는 그저 요즘 어린 것들의 행태에 대해 그저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 오래된 작품이고, 이 작품이 70년대를 그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구시대와 신세대 간의 사상차이나 생각의 차이, 세대갈등에 대해 추리소설답지 않게 디테일한 감성으로 풀어낸 부분은 매우 빼어났다고 생각한다. 또한, 식상한 소재라고는 해도 가족애의 발현으로 범인 검거에 혼선을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범인이 비뚤어진 정의감의 발현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 역시(지금은 흔하지만, 그리고 그때도 흔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되므로) 좋았다. 특히 청소년기의 젊은이들이, 아직 미성숙한 그들만의 잣대로 정의를 그리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세태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를 준 것과 그들에 대한 이해를 구세대에게 갈구하는 듯한 모습이 정녕 '청소년문학'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형사의 시점에서 추리를 해나가다 마지막엔 진술들로만 사건의 해결을 풀어내는 것도 꽤나 신선한 전개였다.(만, 긍정적인 면은 아니다. 결국 마지막에 우루루 진실을 쏟아내는 것은, 이야기 내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지 못했다는 것의 방증이니까.)
만약, 내가 그 시절에, 지금까지 읽었던 수많은 소설들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나 역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을까. (하지만 역시 난 추리소설은 도저히 못 쓸 듯 하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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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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