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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Aug 14. 2023

집사의서평#87 기록하는 태도

기록에 감정을 더해


들어가는 말


 일기. 하루의 기록이다. 여전히 일기를 즐겨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일절 안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온갖 미디어의 발달에 더 이상 텍스트는 유의미한 전달수단이 아니다. 학업을 위한 서적 외에는 책을 접하는 인구는 너무나 적다. 한국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4.5권(1권 대로 알고 있었는데, 왜 올랐지? 아마 투자서 때문이겠지.)밖에 되질 않는다. 한 권을 읽는데 평균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봤을 때, 텍스트를 읽는데 쓰는 시간이 연간 9시간. 1년이 총 8760시간이니 겨우 0.1%의 시간을 글을 읽는데 쓴다. 평생의 0.1%.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는 것은 어떠할까 생각해 보면 조금 마음이 헛헛하다. 21년 기준, 하루에도 200여 권의 책이 출판되지만 그런 글들이 얼마나 독자들에게 가서 닿을까.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문장을 독자에게 꾹꾹 눌러써 보내보지만, 가 닿지 못할 수도 있음은 상당히 헛헛한 일 아닌가.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여전히 쓰고 있다. 그것이 가서 닿지 못할 문장이 되더라도, 최소한 그것을 쓴 나 스스로는 그 문장을 넘어 조금 더 나 스스로에게 다가갈 것이라 믿기에.



어려운 에세이


 개인적으로 에세이는 참 어렵다. 읽기가 어렵다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 대부분 서평이 소설 쪽으로 편중된 이유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에세이는 서평을 쓰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에세이라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문장은 '수필은 청자연적이다.'라는 문장이다. 수필과 에세이가 큰 맥락에서 보면 동류이므로 같다고 보자면, 에세이 역시 청자연적이다. 균일하고 동일한 삶에서 조금이나마 다름을 아름답게 빚어내는 일. 다른 의미에서 그렇게 조금은 비틀어진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어 다른 이에게 글로 전하는 용기. 그리고 뜨거운 가마를 견뎌낸 인내로 청아하게 빛나는 자아.

 하지만 요즘 내게 '에세이'는 'SNS'와 동음이의어로 느껴진다. 물론 나 역시 책 홍보와 글감 저장용으로 인스타를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쓰디쓴 약처럼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삼키는 형식이다. (그래서 요즘은 매우 소홀해져 버렸다.) 내 감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나오는 에세이에 대해 선입견이 강하다.

 그럼에도 어떤 인연이 닿아 고마운 기회가 찾아왔고, 문장 하나하나에 빛을 담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문장보다 먼저 닿았기에 서평을 적게 되었다.



기록 + 시간 = 감정


 앞선 작가의 작품인 '유리젠가'를 통해 느낀 인간 본연에 대한 고찰이나 깊은 고민은 조금 옅어졌다. 아무래도 작가 본인의 자전적 에세이인지라 그렇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내가 에세이를 어려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나 스스로를 드러내기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 공포감과 이율배반에, 다른 작가의 에세이마저도 마치 '거짓'인 듯 예단해 버린다. 하지만 작가가 기록해 놓은 면면을 보면 상당히 담담하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볼 때. 지나간 우리의 삶의 단면을 기록을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솔직함이다. 인간 본연? 고찰? 고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스로는 오로지 스스로만 알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나를 그대로 기록해 내는 것.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너무 어려운 일.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까. 조금은 불우할 수 있었을 유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사정에 따라 IT기업에서 일하는 현실. 아팠던 동생. 미로에 빠진 조모. 본인의 길을 잊은 엄마. 가장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고 있는 아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하는 문우. 혹은 늦은 나이에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순정으로 공부를 하는 동기.

 너무 가까워 나와 구별하기 힘든 가족부터, 적당히 가까워 살펴보다 보면 잴 수도 있을 지인과 혹은, 길을 가다 주운 쪽지에서만 추측할 수 있는 전혀 모르는 사람까지. 요즘 흔한 에세이와 비교해 보자면 조미료를 깜빡하고 넣지 않은 요리처럼 심심할 정도로 담백하다. 하지만 왠지 이런 담백함이 조금은 가슴 뻐근하기도 하다.

 담담히 털어놓은 유년시절 셋방살이의 아픔. 아픈 동생에 대한 사랑. 말이 어눌했던 친구에 대한 배려. 길에서 주운 쪽지를 지나치지 않은 염려. 지하철에서 초면인 사람에게 마카롱을 건네는 다정함. 이런 작가의 모습이 온통 페이지에 범벅되어 잔잔한 파문으로 문장들을 흔들고 있었다.

 

 단순히 기록만 한다면, 그것은 역사나 다름없다. 개개인의 역사는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그런 문장들에 아무도 감동받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가 마음으로 적은 기록들은 시간이 흐르면, 여러 감정들이 더해져 문장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을 긍정의 방향으로, 빛의 방향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것 아닐까.





본 서평은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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