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서평 #18 재능의 불시착

일단은, 착륙은 했으니까.

by 히르군


20220115_232159.jpg



들어가는 말


현대소설 혹은 현실주의라고 불려야 할 작품들은 여러모로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경계까지 논할 수준은 아니기에 가타부타 말은 못 하겠지만, 요즘 젊은 작가분들의 현실주의 소설을 보고 있자면, 이런 것이 바로 '초'현실주의 아닌가 싶다.

일전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작품에서 느낀 그 감정. 그리고, 이게 소설인지 혹은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사연인지 의심스러우리만큼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들. 우리의 현실과 너무 가까워서, 에세이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소설들.

요즘 이런 소설이 꽤나 많은 것을 보면서, 특히나 이런 소설의 작가가 젊은 세대에,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서 꽤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

요즘 시대가, 현실이,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사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일단은, 착륙은 했으니까.


소설은 여덟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통보'한 막내 사원의 법률 대리인이 회사로 방문하면서, 막내에 대한 관습적 '괴롭힘'에 대해 모든 직원이 고뇌하는 이야기. 혹은 정말 천직이라 여겼던 일이, 자본주의와 사회질서라는 명목 하에 치를 떠는 일이 되어버리는 경우. 회사 내에서 무능력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 걸으며 모두의 배척을 받지만 '악'하지 않은 사람과 애견인 천만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네 회사의 자세 등. 모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정말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꽤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여기서 '흥미'롭다는 사실은 약간 특이한 측면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소설 속에서 내가 흥미를 가진 쪽은 다름 아닌 '추리'와 '유추'였다. 과연 이러한 상황이 내 회사에도 생긴다면. 내 옆 직원이 이런 상황이라면. 혹은,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난 어떻게 할 것인가. 난, 작가가 비판하려는 그 대상과 다른 행동을 할까? 아니면 작가의 희망에 따르는 사람과 비슷한 양상을 띌까.

한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인 '준'은 약간 특이한 재능을 갖고 있다. 저울 없이 대략의 무게를 맞추는 능력과 어디에서든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 소설에서 언급되다시피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재능'이라고 부르지 않을 능력이다. 그저 우리가 회사의 부속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재능은, 이미 사회가 재단해서 정형화한 다음 수치화까지 마친 상태니까. 그 외의 그 어떠한 능력도 회사에 필요하지 않다.

주인공은 그런 현실에 꽤나 실망한다. 자신의 쓸데없는 능력을 무시한다. 보잘것없다며. 외모나 공부나 운동 그 어떤 '유용한 재능'이 없는 본인의 삶에 무력하다. 우연찮게 참여한 봉사활동에서 전설의 개발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는다. '아직 자신은 불시착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미 우리는 착륙하지 않았나. 이미 어딘가에서, 각자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가 현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은 곳으로 떠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는 후회나 무기력은 버려야 한다. 재발진. 그것 외에는 떠날 기회는 없다.

'불시착'이라는 단어는 어찌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라는 의미이지, 실패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패라는 것은 추락이다. 어쨌든 우리는 착륙은 했잖은가.



연료를 채우자. 재발진을 위해.


자꾸 비교를 하게 되지만,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소설과 그 궤를 같이하는 소설이다. 만약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면, 충분히 흥미롭게 볼 수 있을 책이다. 혹은 '유리 젠가'를 재밌게 읽었다면, 이 역시도 비슷하다.

젊은 작가분들의 현실 소설은 꽤나 날카롭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 세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혹은 해주고 싶은 이야기, 또는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아 따뜻하기도 하다. 아무래도 인터뷰를 수없이 되풀이하지 않는 한, 그 소재가 조금 국한되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삶 역시 대부분 크게 본다면 비슷비슷하지 않겠는가. 나 개인의 삶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이야기지만 지구 밖에서 보면 그저 지구인의 삶이니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그저 '희망적인 앞 날'은 아닐 것이다. 현실의 상황과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의 여러 이야기를, 특히 불시착했다고 주저앉지 않고 다시 날아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우리에게 힘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연료를 채우자. 재발진을 위해. 결국, 다시 불시착하더라도. 아직 젊으니까. 날아오를 수 있을 때, 재발진 하자. 마지막에 추락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이, 젊음 아니겠는가.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개인 인스타 : https://instagram.com/jeakwangyun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집사의서평 #17 공정한 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