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May 08. 2023

모든 것에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죽을 만큼 노력하면 죽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말인즉슨, 한 번도 죽을 만큼 노력해 본 적이 없다는 것. 맹세코 살아있는 사람 모두는 그렇게 살고 있다.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죽든 말든 노력해 본 적은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건축사무소에서 현상(경쟁을 해 수주하는 프로젝트)을 할 때였다. 다른 현상보다 2배는 더 길고 2배는 더 힘든 현상이었다. 경쟁자가 일본, 독일, 호주, 프랑스 등의 내로라하는 건축사무소라니 보잘것없는 우리 팀은 열심히 일해야 했다. 마감 주는 노동 시간이라는 것이 하늘을 찌른다. 주 52시간제도를 가증스럽게 비웃기라도 하듯 주 110시간을 일했다.

새벽 4시에 퇴근해 아침 10시에 출근했다. 현지 업체와 새벽 5시까지 통화하다 퇴근했다. 하루는 아침 10시에 퇴근해 저녁 6시에 출근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 결국 현상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수주는 하지 못했다. 뿌듯하긴 했지만 허망하고 허무했다. 두 달 동안 매일 같이 야근해 받은 여섯 날의 휴가에 나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죽을 듯 말듯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뭐지?

죽을 만큼 노력해야 행복한 결과를 얻으니까?

과연 나는 행복한가?

단연코 이 현상만큼 노력해 본 적 없고, 단연코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을 만큼의 노력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노력을 오랫동안 켜켜이 쌓으면 큰 노력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취업 전 대학원에 다닐 때 했던 설계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그땐 행복하게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다. 오히려 교수님이 밤새우지 말라고 훈계를 두기도 했으니. 한 학년 동안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정말 끈질기고 꾸준하게 했었다. 아침 10시에 친구 아드리아나와 스튜디오에 출근해 저녁 6시까지 각자 프로젝트를 했다. 해가 진 6시, 쿨하게 아드리아나와 인사하고 집에 가 저녁을 먹고 또 프로젝트를 했다. 그리고 반복, 반복, 반복. 적어도 9개월은 그렇게 살았다. 매일 같은 루틴을 지키며 살았고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적당히 사용했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일하거나 교회를 가기도 했고 맥주 한잔을 하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밤을 새우지 않고 초조하고 조급하게 프로젝트를 하지 않아서 행복했다. 딱 적당했고 나는 할 만큼, 할 수 있을 만큼만 했다. 균형이었다. 다행히 학년말에 받은 최종 결과도 좋았다. 높은 점수에 긍정적인 교수님 반응과 딱히 쓸데는 없지만 작은 상도 받았다.


나의 일상은 죽음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행복할 수 있었다.

나는 행복했다.



요즘에도 노력하느라 힘들다. 힘이 드니까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말해본다. 이젠 힘들지 않으면 노력 같지 않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고, 편집 디자인 프리랜서 일을 하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쓰고 인·적성을 준비한다. 거기에 가족 행사가 몰려 매주 주말은 안성에 내려간다. 본가에 내려온 아들에게 엄마는 묻는다. “아들, 요즘 잘하고 있지? 열심히 하면 됐어.” 아들은 대답한다. “열심히 하고 있지. 열심히는 하는데 결과가 잘 안 나오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하고 성심성의를 다해야 한다. 결과는 좋지 못할 수 있고, 그렇다고 그럴 크나큰 의미도 이유도 없다.


가끔은 삶의 짓누름이 목까지 차올라 벅찰 때가 있다. 그럴 땐 놓고 싶다. 일도 놓고 싶고, 현생도 놓고 싶다. 그냥 어디론가 떠나가 버리거나 떠내려가 버리고 싶은 기분. 화를 내보고 징징거려 보기도 하지만 이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주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이폰의 ‘Do not work’라고 적힌 방해금지 모드를 켜놓고 친구에게 부탁해 서울 밖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카페에 갔다. 카페 마당 너머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마당 잔디밭에는 고양이가 뒹굴었다. 돈도 잘 못 벌지만, 음료랑 베이커리에 2만 원 넘게 썼다. 잔디밭에 앉아 흐르는 물을 보았다. 그저 흘러가는 물이라 그저 흘려보냈다. 곤두서있던 어깨와 목 근육은 조금 풀어진 것 같다. 꽉 깨물고 있던 턱의 힘도 뺐다. 오랜만에 해야 할 일들을 잊어버리니 잃어버렸던 숨을 찾은 듯했다.


내가 필요했던 건 죽을 만큼의 노력으로 얻는 행복한 결과가 아니라, 약간의 공간을 내어 숨을 쉬는 행복이었다. 이제야 숨이 쉬어졌다.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 중 ‘애쓰지 않더라도 행복하고 싶어’라는 가사가 있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해지려고 더 노력해야 할까? 

힘들게 노력하고 숨 가쁘게 살면 결국 행복해 닿을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그 노력이 나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을까? 

좋은 결과만, 큰 성과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


애쓰지 않고 행복하고 싶다. 애쓰지 않아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노력의 결실이 불행이라면 노력하지 않겠다.

노력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고통받겠다.

결국 노력의 방향도 행복이기에,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


- 2023.05.01. 노동절, 벅찬 노력으로 행복하지 않음을 느낀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