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 신간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고 있습니다. 이제 사십 페이지 읽었는데요. 유년 시절과 성장기, 성인이 되고 난 이후 아버지를 대하는 딸의 시선이 애잔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소설이지만, 마치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처럼 대목대목 묘사가 생생합니다.
책을 읽다가 저도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제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을 하셨습니다. 위로 누나 셋에 막내로 태어났는데요. 처음부터 외아들은 아니었습니다. 위로 먼저 태어난 형이 두 분 계셨는데, 어릴 적 병치레를 하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갓난아이 때 돌아가셨나 두 분 다 족보에 이름이 없습니다. 조부께서 일부러 안 적었나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시절에는 돌림병에 걸려 죽는 아이들이 많아 출생신고를 몇 년 늦게 하던 때였으니 호적 신고 전 사망했다면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따름입니다.
엉겁결에 장남이 된 아버지. 고등학교까지 나와 공무원이 되고 나서 방위병으로 입대를 하셨지요. 방위병 시절 어머니와 결혼해 삼 남매를 연년생으로 낳고 기르셨습니다. 저를 낳았을 때 나이가 스물두 살 쯤이었으니, 처자식 먹여 살리는데 청춘을 바친 셈입니다.
아버지란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저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보니 알겠습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무겁고, 외롭고, 쓸쓸했을지. 아버지는 말씀이 워낙 없으셨습니다. 보수적이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대화’나 ‘소통’이 부재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릴 적 제 눈에 아버지는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물론,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사춘기 시절에도 아버지와 살갑게 대화해 본 기억이 없을 정도입니다.
술에 취해 들어와 어머니와 투닥 투탁하면 무서워서 이불속에 들어가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가슴 졸였던 어린 심장들. 그래서 아버지에게 향하는 길이 멀었던 모양입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할 잔소리가 있으면 도시의 나에게 전화를 했다. 술 좀 드시지 말라고 해라, 찻길이 위험한 게 오토바이 좀 타고 다니지 말라고 해라, 며칠째 장을 앓고 있으니 시내의 국악원에는 당분간 나가시지 말라고 해라......나는 엄마의 주문대로 곧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뭐라 뭐라 하면 아버지는 힘없이 그러냐, 알았다, 했다. -신경숙 「아버지에게 갔었어」 中
6년 전 정년 퇴임식 때, 퇴임 가족 대표로 아버지께 쓴 손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입니다.
공직 생활 40년 마감하던 날, 그런 아버지께 손편지를 써 동료 퇴직자 가족들 앞에서 읊었습니다. 가만히 서서 제 편지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나마 그날 아버지께 ‘사랑합니다’는 말을 했기에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평생 한으로 남아 사무쳤을 겁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먼 곳으로 여행을떠나셨거든요.
책을 더 읽어봐야 작가가 말하려는 ‘아버지’의 마지막이 어떤지 알 것 같습니다. 이 땅의 모든 ‘익명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글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저 역시 이 땅의 모든 아버지를 응원합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이 책을 샀는지도 모릅니다. 조만간 아버지에게 가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