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뽀뽀

이 땅의 모든 아빠와 아들 ‘파이팅!’

by 류재민

저에겐 초1 아들이 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코로나19에 등교일이 며칠 안 됩니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날이 많은데요. 두 살 터울 누나가 ‘절친’입니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둘이서 싸우지 않고 잘 놉니다. ‘쿵짝’이 아주 잘 맞습니다.


열 살 딸아이는 서서히 사춘기가 오나 봅니다. 혼자 목욕하고, 엄마가 마무리를 해줍니다. 저는 이제 10대가 된 딸에 뽀뽀하기 어렵습니다. 딸이 변덕처럼 달려와 안기면 몰라도요. 더운 날 속옷 바람으로 집에 있지도 못합니다. 개구쟁이인 아들이 그나마 만만한데요. 학교에 들어간 뒤부터 아들 역시 ‘아빠 뽀뽀’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을 피하거나, 도망갑니다.


아들이 외치는 “놉(Nope)”에 한두 번 서운한 게 아닙니다. 더 서운한 건 녀석이 ‘엄마 뽀뽀’는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제 앞에서 대놓고 ‘입 뽀뽀’를 합니다. 도발에 가까운 행동을 보란 듯이 합니다.


“왜 아빠 뽀뽀는 싫고, 엄마 뽀뽀는 좋은 건데?”하고 물으면, “내 맘이에요”라거나 “엄마는 엄마니까”라고 합니다. 엄마는 뽀뽀할 마음이 있지만, 아빠에겐 그럴 마음이 없다는 뜻인가 봅니다.
“너, 애기였을 때, 아빠가 만날 물고 빨고 했어. 똥 기저귀도 다 갈았어. 알아?”라고 하면, 아들은 “모르는데요”하고 홱 내뺍니다. 8살 아들에게도 자아가 생긴 걸까요?


그런 아들이 뽀뽀를 자청할 때가 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거나, 놀이를 하고 싶은데 누나가 놀아주지 않을 때입니다. 한마디로, 자기가 아쉬울 때 뽀뽀를 ‘협상의 조건’이나 ‘거래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치사하지만, 뽀뽀 한 번이 아쉬운 아빠입니다.

문제의 아빠와 아들입니다.

휴일을 맞아 집 근처에 있는 호수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아들이 킥보드를 타고 저더러 잡아보라고 합니다. 잡으면 뽀뽀를 해주겠다고 포상을 걸면서요. 호기를 놓칠 순 없지요. 지름길을 가로질러 몰래 숨었다가 녀석을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반대쪽으로 와서 잡는 건 반칙”이라며 뾰로통합니다. 심판을 맡은 엄마는 “그건 아빠의 전략”이라며 500년 만에 제 손을 들었습니다. 아들은 분을 못 이겼는지 눈에 물이 가득 차올랐고, 울먹이며 판정의 부당함을 토로했습니다.


저는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항상 네가 이길 순 없어. 앞으로 네가 지는 날이 엄청 많을 거야. 졌을 땐, 진 걸 인정할 줄도 알아야지.” 아들은 냉랭한 표정으로 저만치 떨어져 걸어갑니다. 아내가 나지막이 말합니다. “이렇게 같이 뛰고 놀 날도 얼마 안 남았어.”


제 아버지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조용했고, 과묵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가족과 ‘대화’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런 아버지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욕 하거나 손찌검을 한 적도 없는데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콩알만 하던 녀석이 어느새 커 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닙니다. 머지않아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날이 오겠지요.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까진 녀석이 기댈 언덕과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서쪽 하늘, 그 배경이 되고 싶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 모두 파이팅하세요. 드라마 <저스티스>, <이태원 클라쓰>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벤 폴즈’의 Still Fighting It(스틸 파이팅 잇) 띄워 드립니다.


유튜브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rQ5QBCR9zG0&app=desk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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