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 가끔 하늘을 보자

천천히 걷기

by 류재민

날이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찬기가 느껴집니다. 낮에 부는 바람도 시원함을 넘어 썰렁합니다. 무심코 올려본 하늘이 높고 파랗습니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입니다. 태양을 등지고 반대편 하늘을 보다 옛날 영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1990년에 제작했으니 꼭 30년 전이네요. 10대 시절에 본 하이틴 영화로 기억하는데요. 영화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제목은 강산이 세 번 변해도 기억에 또렷합니다. 그래서 영화든, 책이든, 기사든, 노래든 제목을 잘 지어야 하나 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보는 걸 잊었습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니 하늘을 보는 잠깐의 여유도 잊고 살고 있습니다. 또 언제부터는 미세먼지 때문에 파란 하늘을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주 못하니 그마저 쉽지 않습니다.


하늘을 보고 걸으면 빨리 걷기 힘듭니다.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칠 수 있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걸어도 재수가 없으면 벽에 부딪치거나 맨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전방에 지형지물 확인은 필수입니다.

오늘 낮에 찍은 가을 하늘입니다.

천천히 걸으면요. 바람결에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 머리가 맑아지는 청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구름이 지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 ‘첫사랑 K’가 떠오릅니다.


천천히 걷다 보면요.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단풍을 볼 수 있습니다. 개울물 흐르는 것도 보고, 개울 속 물고기도 보이고, 오리들도 보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도 세심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지, 슬픈지, 화가 나 있는지, 급한 일이 있는지, 불편한 곳이 있는지. 빨리 걸으면 놓칠 수 있는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방금 전까지 화가 나 있었다면, 금방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베트남의 고승 ‘틱 낫한’ 스님은 ≪화(Anger)≫라는 책에서 ‘빨리 걷고 빨리 말하는 것 등이 공격적 화라면, 천천히 걷고 호흡을 지켜보는 것 등은 그 화를 없애는 강력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반복하는 생활에서 어떤 위대한 것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생활이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새로워야 하고, 또 오늘보다 내일은 한 걸음 앞서야 되는 것이다. 여기에 훌륭한 삶의 보람이 있고 인간 성장이 있는 것이다. 저 하늘의 태양을 보아라. 흐린 날에도 제 갈 길은 꾸준히 가고 있는 그 위대한 모습을!
법정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중에서.

길가의 초목은 태양의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합니다. 물관과 체관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아주 가끔씩은 하늘을 보면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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