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을 사람 없어 투표하기 싫다는 여러분에게

내가 안 찍어도 될 놈은 되고, 내 삶은 빈곤해질 수 있다

by 류재민

우리 동네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이제 한 달 남았습니다. 이 밤이 지나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는군요. 여러분은 누굴 뽑을지 결정하셨나요? 뭐라고요? 누가 출마했는지도 모른다고요? 선거나 투표에는 1도 관심 없다고요? 신경 쓰기 싫다고요? 그냥 집에서 쉬든, 어디 놀러 다녀올까 생각이라고요?


아, 그러면 곤란합니다. 선거일은 그냥 쉬고, 놀러 가라고 빨간날로 정한 게 아닙니다. 유권자로서 소중한 권리인 ‘참정권’을 행사하라는 뜻에서 임시 공휴일로 지정한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투표는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해도 덜 하고, 화를 내도 덜 할 테니까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만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지방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모두 내 통장 계좌에서 나간 돈으로 품삯을 받습니다. 그러니 피땀 흘려 벌어 낸 돈(세금)을 받아 일할 후보를 선택하는데 무관심해서 되겠습니까.


일단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 내 삶의 만족도를 한 뼘이라도 높이거나 넓힐만한 사람에게 투표하세요. 일을 얼마나 제대로 하는지, 허튼짓은 하지 않는지는 기자인 제가 잘 감시하겠습니다.


네? 4년 전에도 투표했는데 영 시원치 않다고요? 아, 그러면 잘 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싹 다 갈아엎을 기회가 왔으니까요. 우리의 소중한 표를 받아먹고, 내가 낸 세금도 월급으로 받아먹고, 일을 게을리하고 무능했다고 판단하면 인정사정 볼 것 없습니다. 싹둑, 잘라버리면 됩니다.


6월 1일은 우리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일입니다.

지역주민의 머슴이니, 일꾼이니 사탕발림은 신나게 하고, 당선되고 나면 자기들이 잘나서 된 줄 압니다. 어깨와 목에 깁스를 잔뜩 하고 다니는 시장님, 군수님, 시의원님, 도의원님들이 차고 넘칩니다. 아 참, 교육감님도 계시네요. 어르신들 손을 따듯하게 어루만지고, 아이들을 얼싸안으며, 청년들과 하이파이브를 할 때는 언제고 말이죠. 고개를 숙일 줄도 모르는 인간들 의원님들로 '3단 병신 변신'합니다.


그래서 선거일에 투표 대신 놀러 갈 생각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유권자로서 권리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참정권은 지난날 수없이 많은 투쟁과 피를 흘리면서 얻은 결과물이자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정치하는 놈들’은 만날 싸움만 합니다. 어제도 싸우더니 오늘도 싸웁니다. 뉴스만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치고받는 장면만 나옵니다. 꼴 보기도 싫고, 찍어주기도 싫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찍지 않더라도 권력은 누군가에 의해 선출되고, 그 선출된 힘은 권력을 남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내 삶이 와르르 무너지거나 빈곤해질 수도 있죠. 권력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분연히 일어나 권력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대신하게끔 부리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나사가 풀리는 걸 막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나와 내 가족, 이웃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 말한다. “난 권위도 싫고 권력도 싫고 권좌도 싫고 권세도 싫고 권력욕도 싫고 권력자도 싫어. 나는 그 ‘권’ 자 들어가는 것들은 다 싫어. 사람은 다 평등해. 서로를 사랑해야 해.” 이 얼마나 아름답고 달콤한 말인가. 달콤한 나머지 이빨이 썩을 것 같다. 아마 그는 권능도 싫고 권한도 싫고 권한대행도 싫을 것이다. 그뿐인가. 어쩌면 권익도 싫고 권리도 싫고 권리장전도 싫고 권고도 싫고 권고사직은 당연히 싫고 권투도 싫고 권투선수도 싫고 권불십년(權不十年)도 싫고 권선징악도 싫고 권장 사항도 권역 외상센터도 싫을지 모른다. 권력이 싫다는 말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권태로운 말이다. 김영민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54쪽

나와 내 가족, 이웃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도록 찬찬히 따져보고 찍읍시다.

지난 주말 시골 밭에 가 보니, 일주일 전 준 풀약에 풀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쇠스랑을 사다 밭을 갈았습니다. 쓸모없는 잡풀을 걷어냈습니다. 고랑을 평평하게 고른 다음, 양옆에 물이 빠지도록 수로를 냈습니다. 잡풀이 올라오지 못하게 비닐까지 씌웠죠.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동입니까. 이제 무얼 심을지 선택만 남았습니다. 밭갈이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갈아엎을 건 이 밭만이 아닌 듯싶다’ 무성한 잡초를 갈아엎고, 내 삶에 필요한 일꾼을 뽑을 시간이 다가옵니다. 왜 밭갈이 앞에 ‘표(票)’가 떠오른 걸까요? 직업병인가 봅니다.


*이미지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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