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성적이며,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도시 이미지를 가진 여성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는 ‘차도녀’라고 하면,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제가 생각한 ‘차도녀’ 이미지를 확 바꿔 놓은 배우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의 주연 배우 ‘서현진’입니다.
그녀의 극 중 직업은 유명 로펌의 변호사입니다. 독선적이면서 승부욕 넘치는 캐릭터인데요. 한마디로 ‘네 가지’ 없는 스타일이죠. 그런 배우가 갑자기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냐고요? 일단 예쁩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여주인공은 대부분 예쁩니다. 제가 말하는 ‘예쁨’은 외모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배역 소화력을 뜻합니다.
SBS 금토드라마 <왜 오수재인가> 홈페이지.독한 년, 미친년, 재수 없는 년, 싸가지 없는 년...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개의치 않는다. 약한 년 소리를 들을 바엔 미친년 소리를 듣는 게 나은 세상, 오로지 성공을 위해 달려온 시간들, TK로펌 최태국 회장에게 철저히 충성했고 독하게 일어섰다. -<왜 오수재인가> 등장인물 소개 중
악역을 맡은 배우들은 실생활에서 난처한 상황을 당하기 일쑤라고 합니다. 어르신들로부터 욕을 먹고, 악담어린 기사 댓글이 달리고, 협박 문자를 받고. 극과 현실을 혼동한 분들의 어처구니없는 반응이지만,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방증인 셈이죠.
제가 서현진이라는 배우에 끌린 건 연기력 중에서도 바로 ‘딕션(diction)’에 있습니다. ‘딕션(diction)’이 뭐냐고요? 쉽게 말해서 ‘발음’입니다. 가수든, 배우든 딕션이 중요한 이유는 ‘전달력’에 있습니다. 발음이 정확한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가사를 몰라도 금방 쉽게 전달됩니다.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사람 귀에 거슬리거나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면 ‘정확하고 분명하게’ 대사를 전달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끔 보면, 무슨 소리인지 통 알아듣지 못하게 웅얼거리는 배우들이 있는데요. 아무리 미모가 빼어난 배우라고 할지라도 ‘딕션’이 받쳐주지 않으면 전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얼굴만 보고 영화나 드라마를 계속 볼 관객이나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보면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기사를 써야 합니다. 두루뭉술, 괴발개발 써 놓으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독자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기자만 아는’ 기사가 아니라, ‘독자 편에서’ 써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기사이고, 기자입니다. 그렇기 위해선 배우도, 가수도, 기자도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극 중 오수재가 재판에 패한 뒤 한 말처럼요. “힘을 기르고 내용을 갖춰야 해. 너도, 나도. 주변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어제 드라마가 끝난 뒤 아내에게 고백했습니다.
“여보, 실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
아내는 당황한 듯한 모습을 감추고 태연하게 대꾸했습니다. “누군데?”
제가 “서현진”이라고 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습니다.
(두 번의 ‘듯’은 전적으로 제가 느낀 감정입니다.)
그러더니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나도 요즘 이준기가 좋아졌어.”
이준기가 딕션이 좋았나?? 어쨌든 저는 오늘 밤도 ‘오수재’가 아닌, ‘서현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