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출마를 선언했다
후보자만 12명, 일단 로또보다 확률은 높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전교 학생회 임원 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전교 부회장입니다. 전교 회장은 6학년만 자격이 주어지고, 5학년은 부회장 선거만 나갈 수 있습니다. 딸은 반에서 자기가 유일한 출마자라고 합니다.
문제는 부회장 후보자만 12명이라는 겁니다. 컷오프(예비경선)나 결선 같은 건 없습니다. 다득표자가 최종 당선입니다. 어려운 승부긴 하지만, 로또보다는 확률이 높습니다. 어떤 선거든 전략과 전술이 철저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확실히 갖춰진 상태여야 요행도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전교 학생회 임원선거 공고문입니다.밤늦도록 딸과 전략회의를 했습니다. 딸이 다니는 학교의 5학년은 총 9개 반입니다. 거기서 12명이 출마했다는 건, 2명 이상이 출마한 반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당선 확률은 좀 더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같은 반 표가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집토끼만 확실히 잡아도 10대 1, 아니 8대 1까지 경쟁률은 줄어듭니다.
“그런데 변수가 있어.” “뭔데?”
“너희 반 친구들이 다 널 찍을 거란 보장은 없다는 거지.”
“음, 그건 다른 반 후보들도 마찬가지야.”
“그렇지. 그러니까 너희 반 집토끼만은 확실히 잡아야 해.”
다음은 유권자를 공략할 ‘공약’입니다. 공약이 참신해야 집토끼를 확실히 묶어두는 동시에 산토끼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학교장이나 교육장에 건의해 기본소득을 지원하겠다”거나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대폭 늘리겠다”라는 허무맹랑한 공약은 낙선의 지름길입니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공약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딸은 이미 몇 개의 쌈박한 알찬 공약을 준비해 두었더라고요. 뭐냐고요? 음, 그건 비밀입니다. 혹시 상대 후보 측에서 이 글을 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당선의 영예를 안으면 공개하겠습니다.
정치부 기자로 살면서 올해는 대선과 지방선거만 끝나면 편하겠지 싶었는데요. 그보다 더 큰 선거가 찾아올 줄이야. 사실, 딸의 이번 출마는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1학기 학급 회장 선거에 나갔다가 1표 차이로 떨어졌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실망이 컸겠습니까. 하지만 낙담은 잠시, 2학기 때 전교 임원 선거에 나가겠다고 마음을 다잡더라고요. 더 큰 도전을 선언한 셈이죠. 설마설마했는데, 결국 딸은 ‘당찬 결단’을 내렸습니다.
나중에 커서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지, 벌써부터 선거를 즐기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나 아내나 학창 시절 학급 임원을 꽤 했더라고요.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나 봅니다. 부모의 DNA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는 시간입니다.
딸의 선거운동을 돕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과를 떠나 그런 과정을 통해 ‘연대’와 ‘협동’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후보 등록을 위해 신청서를 쓰고, 추천장을 받고, 공약서를 쓰고, 벽보용 사진을 준비하는 딸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습니다. 행여 낙선하면 그 충격을 어떻게 이겨낼지. 부모로서 당연한 걱정이지만, 크게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후회 없이 겨뤘다면 져도 이긴 거라고, 격려해 주려고 합니다.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거니까요. 미련이 남는다면, 내년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해도 되니까요.
내일 후보자 등록을 마치면 15일 선거 벽보와 선거 용품 제작에 들어가고 18일 선거 벽보를 부착합니다. 20일과 21일 이틀간 아침 선거운동도 합니다. 딸의 선거운동을 돕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과를 떠나 그런 과정을 통해 ‘연대’와 ‘협동’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한 표의 소중함도 깨닫기 바랍니다.
투표일은 22일입니다. 투표 직전 합동 소견 발표 시간이 있는데요. 끝까지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지지 호소’까지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열흘 뒤 당선증을 받고 웃는 딸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욕심일까요? 아, 선거란 무엇인가. 아무튼 우리 딸 ‘필승’입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