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대신 낙선사례

아빠는 네가 자랑스러워, 고마워.

by 류재민

전교 학생회 임원 선거(부회장)에 출마했던 딸이 낙선했습니다. 경쟁률도 치열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나 봅니다. 후보자 등록 서류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고, 선거 벽보를 직접 만들고, 이틀간 아침 선거운동을 하고, 마지막 정견 발표까지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또 개표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요. 학교에선 당선자 외에 후보별 득표수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딸은 2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에 무슨 일이 내 맘처럼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딸은 내년에 전교 학생회장에 나갈 거라고 합니다. 낙선에도 서운한 내색하지 않은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합니다.


딸의 선거운동 준비부터 개표까지 약 2주일 동안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공부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선거’와 ‘출마’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와 ‘정치’를 간접적으로 배울 계기가 되었을 테니까요. 공약 발굴과 선거운동을 하는 과정에선 유권자의 신뢰를 얻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깨달았겠죠. 그 모든 과정이 새로운 공부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공부란, 교실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을 겁니다. 단체생활을 통해 공동체와 연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리더십을 기르며, 실패했어도 패인을 분석하고 다음을 준비할 자신감을 기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미래 세대가 배워야 할 ‘공부’ 아닐까요?


치열하게 싸우고, 좌절도 하고, 눈물도 흘려봐야 나중에 성공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그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딸에게 낙선 인사를 해보는 게 어떨까 제안해 봤습니다. 등굣길에 낙선사례가 적힌 팻말을 들고 인사를 하면, 전교생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학교 차원에서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내년 선거를 위한 일종의 ‘사전 선거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딸의 학교에서 선거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교 임원에 출마한 후보의 어머니가 동료 어머니들과 떡볶이집에서 밀실 회동을 통해 딸의 당선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고, 당선까지 됐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경쟁 후보자 측이 학교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재선거가 치러졌답니다. 이후부터 사전, 사후 선거운동이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로 성공의 지름길로 인도하는 게 정말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길일까요? 그런 아이들이 커서 어떻게 공정과 상식,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치열하게 싸우고, 좌절도 하고, 눈물도 흘려봐야 나중에 성공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그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의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는 것도 어쩌면 그런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거나, 학습화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그러니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는 민주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대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부모 세대와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딸, 괜찮아. 너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웠으니까. 아빠는 그런 네가 자랑스러워. 그리고, 고마워. 네가 내 딸이라서.


추신: 마음으로 딸을 응원하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께 글로나마 사례를 전합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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