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

‘폴리널리스트’ 리스트를 보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by 류재민

페이스북 기능 중 하나는 과거에 게시한 글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1년 전, 2년 전, 3년 전 오늘의 기분과 감정은 이랬구나, 돌이켜 볼 수 있다는 건데요. 1년 전 오늘 포스팅을 보면서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명제를 고민해 봤습니다.

1년 전 오늘 국회 기자실 부스를 옮기면서 든 단상을 올렸더군요. 국회 본관에 있던 기자실이 새롭게 지어진 소통관으로 이전하면서 짐을 정리하던 날이었는데요. 무언가를 정리한다는 건,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는 걸 몇 안 되는 사물을 정리하며 깨달았습니다. 정리는 끝인 동시에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요.


기자를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염증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비단 기자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면 이직할까, 아니면 아예 이 바닥을 떠나 다른 일을 구해볼까, 하는 생각에 미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내가 어디를 가겠어, 하고 체념하나요? 아니면 과감히 결단을 내리는 편인가요?


기자로 활동하다 정치권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있는데요. 주로 선거철을 전후해 빈번하게 이루어집니다. 현실 정치에 뜻이 있다면 몰라도 ‘자리’를 위해 떠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 바람직하지 않은 건, 정치권에 몸담거나 ‘어공’으로 있다가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누가 ‘기자’로 보겠습니까. 덩달아 현업에서 일하는 기자들마저 신뢰가 하락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날 때는 확실히 정리할 겁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게.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6일 지역 언론과 기자들의 뼈를 때리는 발표를 했는데요. ‘폴리널리스트 천국, 영전 아닌 부끄러움 알아야’라는 제목의 보고서입니다. 폴리널리스트란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의 합성어인데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를 버리고 정관계에 진출한 언론인을 일컫습니다.

민언연이 이날 19명의 폴리널리스트 실명을 공개했습니다. 저와 같이 근무했던 기자도 있고, 취재 현장과 출입처에서 오가며 마주쳤던 기자도 있고, 방송 뉴스로 접했던 기자도 있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민단체도 기자의 취재 영역이고, 감시의 대상일진대, 거꾸로 기자가 그들에게 지적과 훈계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으니.


민언연이 이들 정치권으로 이동한 언론인들, 즉 폴리널리스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권언유착을 통한 비판과 감시 기능 약화 및 언론 보도에 대한 신뢰도 추락이 핵심이다.(중략) 민언연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언론사 스스로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민언연은 "KBS나 조선일보는 자체 윤리강령에 퇴직 후 최소 6개월이라는 시간을 두고 이직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런 점은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으며, 기득권을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도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2022년 7월 26일, 디트뉴스24 <민언연이 발표한 대전충남 '폴리널리스트' 19명은 누구> 중 관련기사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729072

‘생계형 직장인’과 ‘저널리스트’라는 갈림길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언론단체에서 제기하는 비판은 기자들 스스로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제가 지난 4월 브런치에 쓴 <선거판 얼씬거리는 ‘두 얼굴’의 기자들>과 같은 맥락입니다. https://brunch.co.kr/@jaeminwow/262


“기자는 한번 정치권이나 선거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랬답니다. 직접 출마하든, 어느 후보의 참모로 가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옆집 마실 갔다 오는 양, 산책하러 갔다 오는 양, 너무나 쉽고 편하게 돌아와 다시 기자 행세를 합니다. 그들이 쓰는 ‘기사’는 과연 공정할까요?

혹자는 제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자네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뒷감당을 어쩌려고 비판하느냐.”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저는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면 또다시 물을지 모릅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느냐.”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빼도 박도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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