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지인 부친상에 다녀오다가

by 류재민

가수 심수봉 님의 명곡 중에 ‘그때 그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 참가곡이었는데요. (제가 태어나던 해였네요) 자작곡으로 경연에 참여했지만, 입상은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979년 벌어진 ‘그때 그 사건’을 계기로 금지곡이 되었는데, 그 계기로 유명해진 노래입니다.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여러분은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있습니까? 이쁜이, 꽃분이부터 영희와 철수 등 추억의 연인이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은 딱히 없습니다. 제 아내가 유일한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은 이게 아니니 돌 던지기 없기!)


지인 부친의 부고를 듣고 대전에 다녀왔습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 때문에 갈까, 말까 솔직히 고민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애경사는 축소됐고, 계좌로 경조사비를 보내는 게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직접 다녀오기로 맘먹고 나선 길입니다.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아내가 KTX 역까지 운전해 데려다줬습니다.


30분 만에 서대전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기사분께서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누가 돌아가셨대요?”라고 묻더군요. 저는 말없이 비 오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가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자식들 고생하지 말라고 자정 무렵에 돌아가셨다네요. 내일이 발인이래요.”


“그렇군요.” 기사 분께서는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저를 흘깃 보며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제 아버지는 오일장을 치렀는데..”라고 말을 흐렸고, 기사 분은 “어쩌다 오일장을 치렀대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추석 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임종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실 때만이라도 보고 싶은 분들 인사라도 받고 가시라고요.” 그제야 기사 분은 “아이고, 이런!”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기사 분의 아버지 이야기로 옮겨갔습니다.


“내 나이 30대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땐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결혼해서 새끼를 낳고, 이제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사무치게 그립네요. 30년이 넘었는데도 그리운데, 손님께선 오죽하겠습니까.”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도 비는 세차게, 때론 가늘게 내렸습니다. 조문을 마칠 때까지 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식사 테이블에서 먼저 온 조문객을 맞고 있었습니다. 저를 본 지인은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어떻게 오셨느냐”며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기차 타고 택시 타고 왔지요”라고 인사하며 함께 자리에 앉았습니다. 돌아가신 지인의 부친은 올해 86세라고 했습니다. 요양병원에 들어간 지 1년가량 됐지만 정정했는데, 별안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간병인도 주무시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니. 주무시듯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4남매는 모두 임종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 아버지나, 30년 전 돌아가신 택시 기사의 부친이나, 지병을 앓다 돌아가신 그의 부친이나 부모를 잃은 심정은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모친상이나 장인 장모상 빈소를 찾을 때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데요. 부친상 조문을 다닐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오늘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더 그리웠나 봅니다. 환갑이 넘은 택시 기사는 “30년이 지나도 그립다”는데, 저는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으니. 아버지 4주기가 한 달 열흘 남았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나와 다시 택시를 탔습니다. 고마워하는 상주를 보니, 오길 잘했습니다. 기차역으로 향하는 차 안 라디오에서 심수봉 님의 ‘그때 그 사람’이 흘러나왔습니다. 제 아버지도 언제나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말이 없으시겠죠. 그래도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빕니다. 어쩌다 한 번쯤은 제 생각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비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렸습니다.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 번쯤은 생각해 줄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

심수봉이 부릅니다. '그때 그 사람' https://youtu.be/BqtRO_Pmyxg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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