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헬스장 수건을 쓰지 않았다

인간이 이렇게 간사한 동물이거늘

by 류재민

저는 퇴근 후에 건강 관리를 위해 헬스장을 다닙니다.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 찾습니다. 운동화와 헬스 장갑, 헤어밴드에 아미노산을 탄 음료까지 구색을 갖춰 갑니다.


운동복은 헬스장에서 대여해 주는데요. 저는 제 운동복을 입고 다닙니다. 공용 운동복은 왠지 찝찝하기 때문입니다. 세탁을 한다고 해도 위생적으로 청결하지 못하다는 선입견 탓인지 1년 남짓 다니면서 공용 운동복을 써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수건은 헬스장에 비치된 공용을 사용합니다. 왜냐고요? 제가 갖고 다니는 운동 가방에 수건까지 들어갈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운동복은 찝찝하고 위생적으로 청결하지 못해 공용을 쓰지 않는다면서? 겨우 가방에 넣을 공간이 없어서 공용을 쓴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그런데 샤워는 또 집에 와서 합니다. 공용 수건으로 몸을 닦기는 또 찝찝하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수건은 그렇게 됐습니다.

오늘 헬스장에서 생긴 일입니다. 수건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요? 혹시 ‘원숭이 두창’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미국은 이 원숭이 두창 확산 때문에 아주 난리라고 합니다.


지난 5월 중순 첫 원숭이 두창 감염자가 나온 이후 벌써 미국 전역에는 집계된 확진자만 6천600명이 넘었습니다. 감염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미 정부는 그동안 백신을 55만 명 분량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등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백악관은 오늘(5일) 원숭이 두창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2022년 8월 5일, SBS 뉴스 <미국, ‘원숭이 두창’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 중

무심결에 들고 나온 공용 수건을 쓰지 않고 한쪽에 걸쳐 뒀습니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습니다. 원숭이 두창이 땀과의 접촉은 물론, 수건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특히 땀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고 공용수건을 사용하는 헬스시설에서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 소식을 접하고 갑자기 께름칙해졌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용 수건을 써 온 저로서는 혼비백산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집에 있는 수건을 가져 가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더랬죠. 하지만 김유신의 말도 아니고, 수건만 쏙 빼놓고 간 것 아니겠어요. 흑흑.


별수 없이 공용 수건을 집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건을 보는 내내 원숭이 두창이 떠올라 쓸 수가 없었습니다. 공용 수건을 머리에 쓰고 다니는 사람을 봐도,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을 봐도, 목에 친친 감고 다니는 사람을 봐도 제 눈에는 원숭이 두창만 어른거렸습니다.

소름 돋고 끔찍할 정도였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건을 목에 걸고 잘만 운동했던 저였는데 말이죠. 원효대사가 마셨다는 해골 물도 아니고 참나. 결국 제가 무심결에 들고 나온 수건은 난간 한쪽에 아무렇게나 걸쳐 놓았습니다.


문제는 땀이 나면서 발생했습니다. 비도 오고, 날씨도 습한 환경에서 1시간 넘도록 운동했더니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등골이며 가슴이며, 팔뚝이며. 마스크를 쓴 콧잔등이며, 입 주변이며, 스멀스멀 샘솟더니 송골송골 맺히다가 주룩주룩 쏟아졌습니다. 아, 이걸 어떻게 할까요? 이 비상상황을 어떻게 탈출하면 좋을까요?


오늘만 그냥 수건을 쓸까, 백번 천 번 유혹에 흔들렸습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합니다. 그래도 겨우겨우 참고 참았습니다. 끝내 못 참을 지경에 이르면 옷으로 쓱쓱 닦았습니다. 옷은, 제 것이니까요. 흐흐흐.

이 땀은 어쩔.

원숭이 두창만 탓할 건 아닐 겁니다. 코로나도 그렇고 원숭이 두창도 그렇고 피한다고 안 걸리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바이러스를 떠나 공용 시설에서 위생관리는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해지려고 간 헬스장에서 건강을 잃고 오면 곤란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내일부터 꼭꼭 제 수건을 가지고 다닐 겁니다. 여러분도 바이러스 조심하세요. 쿨럭. (웬 기침? 혹시?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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